발행일: 2026-08-29 21:14 (토) 08.29 (토)
이란이 만든 ‘허가된 바다’의 경제학

이란이 만든 ‘허가된 바다’의 경제학

닫힌 해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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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삽화이다.(일러스트=박태현 작가)

프랑스 선주 소유 컨테이너선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고 일본 해운사 관련 선박들 역시 제한적이나마 항로를 지나갔다.

표면적으로 보면 봉쇄는 뚫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장면은 오히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정말 해협은 다시 열리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통과를 허락하는 것인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 이후 이란이 쥔 호르무즈 해협은 단순한 해상 통로가 아니다. 이제 이곳은 군사적 봉쇄와 개방의 이분법을 넘어 통과의 여부를 선택하는 ‘관리된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실제로 일부 서방 연계 선박은 안전 항로를 따라 이동하며 통과를 허용받았고 인도적 물자와 특정 목적지를 향한 선박에는 예외가 적용되고 있다.

이는 해협이 다시 열렸다는 신호가 아니다. 오히려 누가 지나갈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권한이 이란에 집중됐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결국 지금 호르무즈를 흐르는 것은 원유만이 아니다. 각국의 이해관계, 물류, 그리고 협상이 함께 지나가고 있다.

봉쇄는 없었다-선택된 항로만 열렸다

지나는 배와 멈춘 배: 해협의 이중 현실

호르무즈 해협은 멈추지 않았다. 다만, 모두에게 열려 있지도 않았다. 프랑스 선주 소유의 컨테이너선과 일본 해운사 관련 선박이 해협을 통과했다는 사실은 겉으로 보면 봉쇄의 균열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장면을 단순한 ‘통과’로 해석하는 순간, 사태의 본질은 흐려진다. 실제로 같은 시점, 상당수 선박은 여전히 해협 진입을 보류하거나 우회 항로를 검토하고 있다.

보험료는 급등했고 선사들은 항로 결정을 미루고 있다. 즉, 바다는 열려 있지만 흐름은 끊겨 있다. 이란은 인도적 물자, 생필품, 사료 등을 실은 선박에 통과를 허용했고 이라크로 향하는 선박은 제약 대상에서 제외했다.

반면, 미국 및 이스라엘과 직접적으로 연계된 것으로 간주하는 선박은 사실상 차단 대상이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호르무즈 해협은 하나의 공간이지만, 두 개의 현실로 나뉘어 있다. 지나는 배와 멈춘 배, 허용된 항로와 차단된 바다가 동시에 존재한다.

이미지 삽화이다.(일러스트=박태현 작가)
이미지 삽화이다.(일러스트=박태현 작가)

항로가 아니라 ‘허가’가 기준이 된 순간

이 변화의 핵심은 지리적 통제가 아니라 정치적 선별이다. 과거 호르무즈 해협은 국제법과 해상 질서에 따라 ‘통과의 자유’가 보장된 공간이었다.

선박은 국적과 관계없이 항로를 따라 지나갈 수 있었고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더라도 이 원칙 자체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이란은 특정 선박이 자국 영해를 통과할 수 있도록 ‘안전 항로’를 설정하고 그 경로를 따르는 선박에 통과를 허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선박의 국적, 화물, 목적지, 심지어는 정치적 연계성까지 고려된다.

일부 선박이 자국 연계를 강조하거나 목적지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비적대성’을 드러낸 정황은 통과가 단순한 항해가 아니라 일종의 승인 절차임을 보여준다.

이는 더 이상 바다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어느 경로로 이동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권한이 특정 국가에 집중되면서 호르무즈 해협은 물리적 통로에서 정치적 관문으로 변했다.

항로는 존재하지만, 그 위를 지나갈 수 있는지는 더 이상 자동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결국 지금 해협을 통과하는 것은 선박이 아니라 ‘조건’이다.

해협은 무기다: 이란이 쥔 유일한 지렛대

전쟁에서 밀려도, 바다에서는 이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적 압박 속에서 이란은 전면전의 주도권을 쥐지 못했다. 공중전력과 정밀 타격 능력, 정보전에서의 격차는 명확하다. 그러나 전장은 하나가 아니다.

이란은 자신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공간, 즉 바다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단순한 방어가 아니라 구조를 바꾸는 전략으로 이어졌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해상 물동량의 핵심 통로다. 하루 수천만 배럴이 오가는 이 좁은 수로는 군사력이 아니라 위치만으로도 세계 경제를 흔들 수 있는 공간이다.

이란은 이 지점을 ‘봉쇄’가 아니라 ‘통제’함으로써, 총과 미사일이 아닌 흐름 자체를 장악했다. 이 전략의 본질은 간단하다. 상대의 군사력을 정면으로 상대하지 않고 그 군사력이 지켜야 할 경제적 기반을 흔드는 것이다.

미국이 중동에서 군사적으로 우위를 유지하더라도 유가 급등과 에너지 공급 불안이 발생하는 순간 그 비용은 동맹국과 시장 전체로 확산한다. 이란은 바로 그 균열 지점을 겨냥하고 있다.

결국 이란은 전쟁에서 밀리면서도 동시에 다른 전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전쟁은 공중에서 벌어졌지만, 승부는 바다에서 흔들리고 있다.

강경파가 웃는 이유: 통제는 곧 협상력

이러한 상황은 이란 내부 권력 구조에도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통제는 단순한 군사 조치가 아니다. 이는 이란이 미국과의 협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실질적 레버리지이다.

핵 문제, 제재 완화, 군사적 긴장 완화 등 주요 의제에서 이란은 오랜 기간 방어적인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해협 통제 이후 상황은 역전됐다. 이제 이란은 “무엇을 얻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수혜자는 강경파다. 온건파가 주장해 온 외교적 해법은 반복적으로 교착 상태에 빠졌지만, 해협 통제라는 직접적 압박 수단은 즉각적인 효과를 만들어 냈다.

일부 선박은 협상 혹은 조율을 거쳐 통과했고 국제사회는 군사적 대응 대신 외교적 해결을 모색하고 있다. 이는 이란 내부에서 하나의 메시지로 작동한다.

“강하게 나갈수록 상대는 협상에 나온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구조는 역설적이다. 전쟁은 확전을 향해 가고 있지만, 협상은 동시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해협이 열리지 않는 한, 미국과 이란 사이의 간극은 좁혀지기 어렵다.

그리고 그 간극이 유지되는 한, 해협은 계속해서 이란의 손에 남는다. 결국 지금 이란이 쥐고 있는 것은 단순한 해상 통로가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벌고, 압박을 유지하며 협상의 조건을 바꾸는 힘이다.

이미지 삽화이다.(일러스트=박태현 작가)
이미지 삽화이다.(일러스트=박태현 작가)

세계는 협상하고 있다: 항행의 자유는 사라졌다

서방도 협상한다: 무력 대신 통과권 거래

프랑스와 일본 관련 선박의 통과는 단순한 해상 이동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신호다. 공식적으로는 누구도 이란과의 협상을 인정하지 않는다.

프랑스는 침묵했고 일본 정부는 관여를 부인했다. 그러나 결과는 부인할 수 없다. 특정 선박은 통과했고 다른 선박은 여전히 멈춰 있다.

이 차이는 어디서 발생하는가. 바로 ‘조건’이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군사력보다 더 현실적인 기준이 작동하고 있다.

어떤 선박이 적대적 이해관계에 속하는지 어떤 화물이 실려 있는지 어떤 경로를 따르는지에 따라 통과 여부가 갈린다. 이는 사실상 비공식 협상 혹은 사전 조율 없이는 설명하기 어려운 구조다.

국제사회 역시 이를 알고 있다. 미국과 서방은 항행의 자유를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해협을 군사력으로 강제 개방하지 않고 있다. 대신 제한적 호송, 외교적 압박, 개별 선박 단위의 조율이라는 우회적 방식이 작동하고 있다.

이는 하나의 현실을 드러낸다. 지금 바다에서는 “자유롭게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지나갈 수 있도록 허용받는 것”이 기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호르무즈 해협은 국제법의 공간에서 벗어나 협상과 승인으로 운영되는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가장 위험한 곳은 한국이다: 에너지 수입국의 함정

이 변화는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다.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 특히 한국과 같은 산업 구조를 가진 나라들이다.

한국은 원유와 LNG의 상당 부분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 물량의 핵심 통로가 바로 호르무즈 해협이다. 이 경로가 불안정해지는 순간, 문제는 단순한 공급 차질을 넘어 비용의 문제로 확대된다.

운임 상승, 보험료 급등, 우회 항로 사용에 따른 물류 지연은 결국 산업 전반의 비용 구조를 흔든다. 정유, 석유화학, 발전, 물류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으며 그 부담은 기업을 넘어 소비자에게까지 전가된다.

더 큰 문제는 불확실성이다. 해협이 완전히 닫힌 것도 완전히 열린 것도 아닌 상태는 기업과 정부 모두에게 최악의 환경이다. 예측 불가능 상황에서 의사결정은 비용을 더욱 키운다.

결국 지금의 호르무즈 해협은 단순한 지정학적 긴장의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경제의 비용 구조를 결정짓는 보이지 않는 변수이며 동시에 글로벌 공급망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시험대다.

그리고 이 구조가 지속되는 한 가장 큰 부담은 바다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국가들이 떠안게 된다. 지금 흔들리는 것은 해협이 아니라 그 위에 올라선 세계 경제다.

해협은 다시 열리지 않는다, 대신 ‘관리’된다

호르무즈 해협은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변화는 일시적인 봉쇄나 국지적 충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바다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과거에는 국제법과 해상 질서가 ‘통과의 자유’를 보장했다면 이제는 특정 국가의 전략과 판단이 그 자유를 대신하고 있다. 이란은 해협을 닫지 않았다. 대신, 누구를 통과시킬지를 결정하는 권한을 쥐었다.

그리고 그 권한은 단순한 군사적 우위가 아니라, 경제와 외교를 동시에 흔드는 구조적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 미국과 서방은 여전히 항행의 자유를 말하지만, 현실에서는 개별 선박 단위의 통과를 용인하고 있다.

이는 힘의 공백이 아니라, 통제 방식의 변화다. 바다는 더 이상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간이 아니라 협상과 승인으로 운영되는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변화는 끝나지 않는다.

앞으로 호르무즈 해협은 전면 개방과 전면 봉쇄 사이를 오가는 공간이 아니라 국가별·화물별·상황별로 통과 조건이 달라지는 ‘관리된 해역’으로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 과정에서 비용은 상승하고 위험은 구조화되며, 글로벌 공급망은 더 취약해진다. 결국 이 사태의 본질은 명확하다. 이란은 전쟁에서 밀렸지만, 패배하지 않았다.

미국은 우위를 점했지만, 완전히 통제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세계는 하나의 새로운 질서를 마주하고 있다. 지금 호르무즈를 지나가는 것은 단순한 선박이 아니다.

그 위를 흐르는 것은 각국이 감당해야 할 협상과 비용, 그리고 불확실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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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용 기자
admin@aju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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