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도 ‘대통령 면책’으로 지우지 못했다…입막음 사건이 그은 선, 대통령은 언제 ‘개인’이 되는가
- 이미지 삽화이다.(일러스트=박경식 작가) [트럼프 대통령이 ‘스토미 대니얼스 입막음 돈 사건’을 연방법원으로 옮겨 유죄판결을 뒤집으려 했지만 다시 막혔다.
- 연방대법원은 대통령의 공식행위에 광범위한 면책을 인정했지만 이번 사건의 핵심은 개인적·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행위라는 판단이 유지됐다.
- 앞으로의 쟁점도 대통령이라는 신분이 아니라 어떤 행동이 공적 권한 행사이고 어떤 행동이 개인의 선택인지 경계를 어디에 긋느냐에 달려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에게 유죄판결을 안긴 이른바 ‘스토미 대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에게 유죄판결을 안긴 이른바 ‘스토미 대니얼스 입막음 돈 사건’을 뉴욕주 법원에서 연방법원으로 옮기려 했지만 다시 실패했다.
뉴욕 남부 연방지방법원의 앨빈 헬러스타인 판사는 28일 트럼프가 신청한 두 번째 사건 이송 통지서 제출 허가를 기각했다.
트럼프 측이 제시한 근거가 충분히 새롭지 않고 이미 끝난 주 형사재판을 뒤늦게 연방법원으로 옮길 정당한 사유도 입증하지 못했다는 판단이다.
트럼프는 2024년 5월 뉴욕주 배심원단으로부터 기업장부 위조 34개 혐의 모두에 대해 유죄평결을 받았다.
사건은 2016년 대선을 앞두고 성인영화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에게 성관계 주장을 공개하지 않는 대가로 13만달러를 지급하고 이후 이를 법률비용 등으로 처리하면서 장부를 허위 작성했다는 혐의에서 출발했다.
2025년 1월 법원은 대통령 취임을 앞둔 상황을 고려해 징역이나 벌금 없이 ‘무조건 면제형(unconditional discharge)’을 선고했다.
형벌은 없지만 유죄판결 자체는 남았다. 트럼프가 계속 싸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가 없애려는 것은 형벌보다 ‘미국 대통령 최초의 형사 유죄판결’이라는 기록 자체에 가깝다.
대법원이 열어준 면책의 문…그러나 대통령이라는 신분 전체를 보호한 것은 아니다
트럼프 측의 가장 강력한 법적 근거는 2024년 7월 연방대법원의 ‘트럼프 대 미국(Trump v. United States)’ 판결이었다.
연방대법원은 대통령이 헌법상 핵심 권한을 행사한 공식행위에는 절대적 면책을 인정하고 그 밖의 공식행위에도 최소한 일정한 면책이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반면 대통령의 비공식적·사적 행위에는 형사면책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중요한 것은 면책이 대통령이라는 사람에게 붙는 특권이 아니라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면서 한 행위에 적용되는 원칙이라는 점이다.
대법원은 또 비공식적 범죄를 다루는 재판에서 면책 대상인 공식행위를 유죄입증의 증거로 사용하는 문제에도 제한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트럼프 측은 바로 이 부분을 파고들었다. 뉴욕 재판에서 백악관 시절 보좌관이었던 호프 힉스의 증언과 대통령 재임 중 작성된 일부 소셜미디어 게시물 등이 배심원에게 제시됐기 때문이다.
이 게시물 등 때문에 대법원 판결 이후에는 기존 재판 자체를 다시 봐야 한다는 논리였다. 제2 연방항소법원도 이 주장을 완전히 배척하지 않았다.
항소법원은 헬러스타인 판사가 이전 이송 요청을 기각하면서 대법원 판결이 새롭게 제기한 공식행위와 증거사용 문제를 충분히 검토했는지 다시 따져보라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이번 결정은 바로 그 재검토의 결과다.
연방법원이 다시 그은 선…‘입막음 돈’은 대통령의 일이 아니었다
헬러스타인 판사의 결론은 다시 같았다. 사건의 핵심은 대통령의 공적 권한이 아니라 트럼프 개인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행위라는 것이다.
2016년 대선을 앞두고 대니얼스의 주장을 공개하지 못하도록 돈을 지급하고 그 지급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혐의는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 행사와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특히 문제의 지급은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 발생했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은 대통령 면책의 경계를 비교적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트럼프가 이후 대통령이 됐고 재판 과정에서 대통령 재임 시기의 일부 증거가 사용됐다는 사실만으로 사건 전체가 대통령의 공식행위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언제나 같은 질문이다. 그 행동이 미국 대통령이라는 직무 때문에 필요한 일이었는가, 아니면 트럼프 개인이나 후보자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한 일이었는가.
이번 법원의 답은 후자였다. 이 원칙이 무너지면 대통령이 재임 중 수행한 개인사업이나 가족 문제, 선거운동과 사적인 거래까지 대통령의 신분을 이유로 형사책임에서 벗어나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이번 결정은 대통령 면책을 부정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법원이 인정한 강력한 대통령 면책의 바깥 경계가 어디인지를 보여준 것에 가깝다.

이번 사건에는 면책과 별개의 절차 문제가 있다. 미 연방법은 주 형사사건을 연방법원으로 이송하려면 통상 기소 이후 일정한 기간 안에 신청하도록 하고 있다.
재판이 끝난 뒤 이송하려면 예외적인 정당한 이유가 필요하다. 트럼프 사건은 이미 배심원 유죄평결이 나왔고 1심 선고까지 끝났다.
뉴욕주 법원 내 항소절차도 별도로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트럼프가 요구하는 것은 새로운 재판을 연방법원에서 시작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미 끝난 주 형사재판의 관할을 사후적으로 바꿔 기존 유죄판결의 토대 자체를 흔들겠다는 것이다.
헬러스타인은 트럼프 측이 새롭게 제시한 면책 논거가 뒤늦은 이송을 정당화할 만큼 새롭거나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 문제는 대통령 면책을 넘어 미국 연방제의 기본구조와도 연결된다.
주 법원이 주 형법에 따라 기소하고 배심원 평결과 선고까지 마친 사건을 피고인이 불리한 결과가 나온 뒤 연방법원으로 옮길 수 있다면 주 사법권의 독립성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특히 대통령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런 예외가 쉽게 허용된다면 연방법원이 사실상 주 형사재판의 사후심사기관처럼 작동할 위험도 생긴다.
그래서 이번 사건에서 법원이 지키려는 선은 두 개다. 하나는 공적 행위와 사적 행위의 경계, 다른 하나는 연방 사법권과 주 사법권의 경계다.
법적 싸움은 계속된다…다음 승부는 ‘공식행위 증거’가 판결을 흔들었느냐다
이번 결정으로 트럼프의 법적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다. 트럼프 측은 연방법원 이송 문제를 다시 항고할 수 있고 뉴욕주 법원에서도 유죄판결 자체에 대한 항소를 계속할 수 있다.
앞으로 가장 중요한 쟁점 가운데 하나는 대통령 재임 중 이루어진 일부 행위가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됐다는 점이다.
연방대법원의 2024년 판결은 대통령의 공식행위 자체를 형사처벌하는 문제뿐 아니라 공식행위를 비공식 범죄의 증거로 사용하는 것에도 제약이 있을 수 있다고 봤다.
따라서 트럼프 측은 호프 힉스의 증언이나 대통령 시절의 게시물 등 일부 증거가 면책 대상인 공식행위와 관련돼 있었다.
배심원의 유죄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고 계속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넘어야 할 단계가 있다.
일부 증거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유죄판결 전체가 자동으로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증거가 실제로 공식행위에 해당하는지, 잘못 사용됐다면 배심원의 판단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쳤는지까지 따져야 한다.
결국 향후 재판에서는 공식행위와 사적행위를 구분하는 문제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잘못 사용된 공식행위 증거가 전체 재판을 뒤집을 만큼 중대했는지가 핵심이 될 수 있다.
트럼프가 뉴욕주 최고법원까지 항소한 뒤 연방 헌법 문제가 남는다면 장기적으로 연방대법원의 판단을 다시 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통령 면책의 진짜 경계는 ‘누가 했느냐’가 아니라 ‘무슨 자격으로 했느냐’다
스토미 대니얼스 사건을 둘러싼 정치적 평가는 앞으로도 갈릴 것이다.
트럼프와 지지층은 사건을 정치적 기소라고 주장해왔고 반대편에서는 일반 시민과 마찬가지로 대통령도 형사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번 연방법원의 결정에서 더 중요한 것은 정치적 평가가 아니다. 법원이 다시 확인한 것은 대통령 면책이 대통령 개인 전체를 보호하는 방패는 아니라는 원칙이다.
2024년 연방대법원은 대통령이 국가를 통치하면서 행사하는 공식 권한에는 매우 강한 면책을 인정했다.
그만큼 대통령이 정치적 보복이나 형사기소의 두려움 없이 헌법상 권한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그 논리는 대통령의 사적인 사업이나 가족 문제, 선거운동과 개인적 이해관계까지 자동으로 보호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통령 면책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누가 행동했는가”가 아니라 “어떤 자격으로 행동했는가”다.
같은 사람이 같은 날 한 행동이라도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을 행사했다면 강력한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개인이나 선거 후보자로 행동했다면 일반적인 형사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트럼프의 입막음 사건은 바로 이 경계 위에 놓여 있다. 이번 법원은 그 선을 개인행위 쪽에 그었다.
트럼프에게는 여전히 항소할 권리가 있고 공식행위 증거가 재판에 미친 영향도 더 다툴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결정이 남긴 원칙은 분명하다.
대통령에게는 강력한 면책이 있지만, 대통령이라는 신분 자체가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미국 대통령도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하지 않을 때는 결국 한 명의 개인으로 법 앞에 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