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6-09-14 08:35 (월) 09.14 (월)
공공기관 본사 하나에 지역이 들썩인다…‘유치 경쟁’ 넘어 산업 …

공공기관 본사 하나에 지역이 들썩인다…‘유치 경쟁’ 넘어 산업 생태계 따져야

3줄 요약
  • 에너지·발전·LH 재편 놓고 지역마다 “우리가 최적지”…균형발전 효과 높일 객관적 입지 기준이 관건
  • 대구는 공급망, 울산은 산업 생태계 강조…발전공기업·LH까지 본사 사수와 유치 경쟁 확산
  • 과거 혁신도시 효과는 인구·고용 증가와 한계 동시에 확인…정부의 투명한 평가체계 요구 커져

공공기관 통합에 불붙은 ‘본사 유치전’…균형발전인가 또 다른 제로섬인가

정부의 공공기관 재편 움직임을 계기로 대구·울산·충남·경남 진주·전남 나주 등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본사 유치전’이 달아오르고 있다. 한국가스공사와 한국석유공사의 통합, 발전공기업 5개사 재편, 한국토지주택공사(LH) 분리 논의가 맞물리면서다. 공공기관 본사는 수천 명의 고용뿐 아니라 협력기업과 소비, 세수, 인구 유입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지방정부에는 단순한 청사 위치 이상의 문제다. 그러나 각 지역의 정치적 경쟁만으로 입지가 결정될 경우 공공기관 운영 효율과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두 목표가 모두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1 공공기관 입지 경쟁의 갈림길.png

첨부된 2026년 9월 보도자료들을 보면 경쟁의 중심에는 한국가스공사와 한국석유공사를 합치는 가칭 ‘에너지자원공사’가 있다. 대구는 한국가스공사를, 울산은 한국석유공사를 각각 품고 있어 어느 지역에 통합 본사가 들어서느냐에 따라 한쪽은 기존 본사 기능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

두 도시가 내세우는 논리는 다르다. 울산은 정유·석유화학 산업과 항만, 석유비축시설을 비롯해 수소·풍력 등 미래 에너지 산업까지 연결할 수 있는 ‘산업 집적 효과’를 강조한다. 이는 과거 혁신도시 조성 당시 울산을 에너지 산업 클러스터로 발전시키려 했던 정책 방향과도 연결된다. OECD 역시 울산의 기존 자동차·조선·석유화학 제조업 기반에 에너지 관련 공공기관을 이전해 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구상을 한국 혁신도시 정책 사례로 소개한 바 있다.

1-2 통합 에너지공사 유치 경쟁 인포그래픽.png

대구는 한국가스공사의 조직 규모와 전국 공급망 관리 기능을 앞세운다. 첨부 자료에는 2025년 기준 가스공사 직원이 4,305명, 매출이 약 35조 원으로, 석유공사의 직원 1,456명과 약 3조 원 매출보다 규모가 큰 것으로 제시돼 있다. 다만 집계 시점과 기준에 따라 숫자는 달라질 수 있다. 가스공사 공식 홈페이지에는 2025년 1월 기준 정원이 4,111명, 2024년 별도재무제표 기준 매출액은 37조 원으로 공시돼 있다.

공급망의 규모도 상당하다. 한국가스공사가 2026년 6월 12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6년 6월 1일 현재 전국 천연가스 주배관은 5,346㎞, 공급관리소는 445곳이다. 34개 도시가스사를 통해 전국 216개 지방자치단체의 약 2,039만 9,000세대에 천연가스를 공급한다고 밝혔다. 대구가 통합 본사 유치 논리로 전국 공급망 관리 기능을 강조하는 배경이다.

1-3 공공기관 유치, 지역의 미래를 건 회의.png

경쟁은 발전 분야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첨부 기사에 따르면 남동·중부·서부·남부·동서발전 등 발전공기업 5개사를 합친 가칭 ‘한국발전’을 놓고 충남과 진주, 나주 등이 각각 발전시설 집적도, 기존 혁신도시 기반, 한국전력 등 전력 공기업과의 연계 효과를 내세우고 있다. 5개사의 본사 인력은 약 2,400명이며 통합 본사는 약 1,800명 규모로 운영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충남은 발전 5사가 운영하는 발전기 52기 가운데 28기가 지역에 있다는 점을, 나주는 한국전력 등 전력기관 집적과 약 3,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사무공간을, 진주는 기존 혁신도시와 산업·연구 인프라의 연속성을 각각 강조하고 있다.

LH 분리 문제도 지역 간 이해관계를 자극하고 있다. 경남도와 진주시는 본사 기능과 핵심 인력이 빠져나가면 혁신도시의 산업·소비 기반이 약해질 수 있다며 분리되는 기관의 진주 존치를 요구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과거 공공기관 이전 과정에서 무산됐던 기관을 이번에 유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결국 통합은 ‘어느 본사를 남길 것인가’, 분리는 ‘새 기관을 어디에 둘 것인가’라는 서로 다른 형태의 지역 경쟁을 동시에 만들어내고 있다.

1-4 공공기관 유치전, 지역의 미래 경쟁.png

공공기관 이전, 지역경제 살리는 ‘만능열쇠’는 아니다

지자체들이 유치에 사활을 거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공공기관이 옮겨오면 직원과 가족의 이주, 소비 증가, 지역인재 채용, 협력기업 이전 등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2000년대부터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기 위해 10개 혁신도시를 조성하고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해 왔다. OECD는 2023년에도 한국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거주한다고 지적하면서 혁신도시 정책이 행정기능 분산뿐 아니라 지역경제 활성화와 혁신 생태계 조성을 목표로 추진됐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기관 하나가 내려가면 지역이 자동으로 살아난다’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았다. KDI의 공공기관 지방이전 효과 분석에 따르면 2014년 이후 혁신도시에서 수도권 인구 유입과 제조업·지역서비스업 고용 증가가 나타났다. 반면 장기적인 지역성장에 중요한 지식기반산업 고용은 유의하게 증가하지 않았다. 2018년 이후에는 수도권보다 같은 시·도의 주변지역에서 혁신도시로 이동하는 인구가 늘어 주변 중소도시 인구를 흡수하는 부작용도 관찰됐다.

이 대목은 이번 유치전의 핵심 질문을 바꾼다. “어느 지역이 기관을 가져가느냐”보다 “어디에 둬야 국가와 지역 전체의 편익이 가장 커지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기존 산업과 기관 기능의 연계성, 협력기업과 대학·연구기관의 집적도, 교통 접근성, 직원과 가족의 정주 여건, 이전 비용, 재난·안보 대응력 등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

OECD 역시 공공기관과 기업의 지방 이전 효과를 높이려면 교통 인프라와 지역 산업의 전문화를 함께 추진하고 도시와 주변 지역의 산업 공급망·노동 이동을 연결해야 한다고 분석한다. 단순한 청사 이전보다 산업·대학·연구기관·인재가 연결되는 생태계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정치적 유치전보다 ‘공개된 평가표’가 먼저다

또 하나 주의해야 할 점은 현재 논의되는 모든 이전안이 확정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특히 수도권 공공기관의 ‘2차 이전’ 대상과 지역은 2026년 9월 현재 확정된 것으로 볼 수 없다. 국토교통부는 2026년 7월 15일 “이전 대상 기관 및 이전 지역은 전혀 확정된 바 없다”고 밝혔고, 2026년 8월 20일에도 이전 대상기관과 발표 일정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재차 설명했다. 따라서 공기업 통합·분리 과정에서 제기되는 본사 입지 경쟁과 수도권 공공기관 2차 이전 계획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6 공공기관 이전과 균형발전 해법.png

해법은 지역 간 경쟁 자체를 막는 것이 아니라 경쟁의 규칙을 먼저 만드는 것이다. 정부가 기관별 입지 평가기준과 항목별 배점을 사전에 공개하고, 산업 연계성·운영 효율성·균형발전 효과·정주 여건·이전 비용 등을 수치화해 비교하는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평가 과정과 근거도 가능한 범위에서 공개해야 정치적 영향력이나 지역별 로비가 입지를 좌우한다는 논란을 줄일 수 있다.

이전 이후의 성과평가도 중요하다. 본사 이전 자체를 정책의 종착점으로 볼 것이 아니라 5년, 10년 단위로 지역인재 채용, 민간기업 유치, 가족 동반 이주, 지역 내 소비, 산학연 협력, 지식기반산업 고용 증가 등을 측정해야 한다. KDI가 지적했듯 지역의 기존 산업·인적자원과 연결되지 않는 공공기관 이전은 단기적인 인구 증가에 그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1-5 지역과 함께 여는 지속 가능한 미래.png

공공기관 본사는 지역에 분명 중요한 자산이다. 하지만 어느 도시가 ‘승자’가 되느냐만으로 국가 균형발전의 성패를 판단할 수는 없다. 대구의 공급망, 울산의 에너지 산업 생태계, 충남의 발전시설, 나주의 전력 공기업 집적, 진주의 혁신도시 기반에는 각각 검토할 근거가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지역의 목소리를 줄 세우는 일이 아니라 그 근거를 같은 평가표 위에 올려놓는 일이다. 공공기관 재편이 또 하나의 지역 간 제로섬 게임으로 끝날지, 산업과 일자리까지 지방에 뿌리내리는 균형발전의 전환점이 될지는 결국 입지 선정의 객관성과 이전 이후의 생태계 구축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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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록 기자
parkroc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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