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 뒤 피해자 행적까지 만들었다…경산 유학생 살인, 신상공개보다 먼저 봐야 할 것은 ‘범행 이후의 설계’다
- 사건의 개요도이며 이미지 삽화이다.(일러스트=박경식 작가) [경북 경산에서 자신이 가르쳤던 중국인 여성 유학생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혐의를 받는 31세 중국인 대학 강사에 대해 경찰이 이번 주 신상정보 공개 여부…
- 경찰 수사에서 피의자가 범행 뒤 여성복을 입고 피해자의 휴대전화를 들고 동대구역까지 이동한 뒤 전원을 끄고 직접 실종 신고까지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사건은 단순 살인을 넘어 ‘피해자가 살아 움직인 것처럼 행적을 만들…
- 신상공개 여부도 중요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더 깊이 봐야 할 것은 살인 이후 증거와 시간, 피해자의 마지막 행적까지 통제하려 한 범행 구조다.] 한 사람을 살해한 뒤 피해자의 옷을 입는다.

한 사람을 살해한 뒤 피해자의 옷을 입는다. 피해자의 휴대전화를 들고 기차역까지 이동한다. 일정한 장소에서 휴대전화 전원을 끈 뒤 옷을 갈아입고 돌아온다.
그리고 다음 날 경찰에 피해자가 사라졌다며 직접 신고한다. 경찰이 현재까지 파악한 경북 경산 중국인 유학생 살인사건의 범행 이후 정황이다.
중국인 여성 유학생 A씨(25)는 지난 20일 오전 2시쯤 중국 국적 대학 강사 정모씨(31)의 경산 하양읍 주거지로 들어가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포착됐다.
비슷한 시간 중국에 있는 가족과 마지막 연락을 한 뒤 연락이 끊겼다. 정씨는 경찰 조사에서 A씨를 같은 날 새벽 살해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사망시점과 구체적인 범행경위는 추가 수사가 필요한 상태다. 사건은 이후 더 복잡해졌다.
경찰은 CCTV 분석을 통해 정씨가 여성복을 입고 얼굴을 가린 채 피해자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동대구역까지 이동한 정황을 확인했다.
이후 휴대전화 전원을 끄고 역 인근에서 옷을 갈아입은 뒤 다시 자신의 주거지로 돌아간 모습도 파악했다. 다음 날인 21일 오후 7시5분쯤 실종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는 정씨였다. 경찰은 처음에는 단순 실종사건으로 접수했지만 정씨를 참고인으로 조사하는 과정에서 진술의 이상점을 발견했고 범죄 가능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후 CCTV와 이동경로 등을 추적해 25일 정씨를 체포했다. 정씨가 시신을 훼손한 뒤 여러 장소에 유기했다고 진술하면서 수사는 전국으로 확대됐다.
경찰은 차량 블랙박스와 GPS, 이동동선을 분석해 경북과 경기도 등을 수색하고 있으며 일부 시신을 추가로 수습했다.
그래서 이번 사건에서 신상공개 여부만큼 중요한 것은 살인이 끝난 뒤 무엇이 시작됐는가다.
피해자를 죽인 뒤 ‘피해자의 마지막 하루’까지 만들었다
살인사건에서 범인이 증거를 없애거나 도주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경찰이 확인하고 있는 정황은 단순한 증거인멸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다.
피의자가 자신의 흔적을 지우는 데 그치지 않고 피해자가 살아서 다른 장소로 이동한 것처럼 보이는 새로운 행적을 만들려 했을 가능성이다.
여성복을 입고 피해자의 휴대전화를 들고 동대구역으로 이동한 행동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찰이 실종자의 행방을 추적할 때 휴대전화 위치와 마지막 CCTV 동선은 가장 중요한 단서다. 휴대전화가 특정 장소로 이동한 뒤 그곳에서 전원이 꺼졌다.
그렇기에 수색의 중심 역시 그 방향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사건 초기 피해자의 마지막 행적이 동대구역과 연결됐다.
하지만 이후 수사에서는 그 이동이 피해자가 아니라 피의자가 만들어낸 동선일 가능성이 드러났다. 정씨가 직접 실종 신고를 했다는 점도 같은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을 범죄자가 아니라 피해자를 찾는 신고자의 위치에 놓음으로써 사건의 출발점을 바꾸려 했는지가 수사의 중요한 쟁점이 된다. 다만 이것이 곧 경찰의 초기 대응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내용으로는 경찰이 최초 신고자인 정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진술의 이상점을 발견했고 이후 범죄 가능성으로 수사를 전환했다.
이번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살인이 한순간에 끝난 범죄가 아니라는 점이다.
시신 훼손과 분산 유기, 휴대전화 이동, 위장된 동선, 실종 신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 경찰이 확인하고 있는 범행 이후의 구조다.

범행 이후의 행동은 점차 드러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아직 남아 있다. 왜 피해자를 살해했는가다. 피해자는 정씨가 대학에서 가르쳤던 학생이었다.
정씨는 경찰 조사에서 피해자와 연인 관계였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피해자 주변에서는 이를 부인하는 진술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 두 사람을 연인으로 규정하거나 연애관계에서 발생한 범죄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경찰이 확인해야 할 것은 두 사람이 실제 어떤 관계였는지, 범행 직전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 살인이 순간적인 충동이었는지 아니면 사전에 준비된 범행이었는지다.
특히 한 가지는 분명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범행 이후 행동이 치밀하다는 사실이 곧 살인 자체가 사전에 계획됐다는 증거는 아니다.
살인의 계획성과 사후 은폐행위의 계획성은 별도로 입증돼야 한다. 휴대전화 포렌식과 압수물 분석, 이동동선과 진술 검증이 중요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정씨가 사이코패스 진단검사를 거부했다는 사실 역시 범행을 설명하는 결론으로 사용할 수 없다.
사이코패스 여부가 확인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범행 동기나 구체적인 범행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 사건에서 필요한 것은 자극적인 이름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두 질문에 답하는 일이다.
왜 피해자를 살해했으며, 왜 그 죽음 이후 피해자의 행적까지 다시 만들려 했는가.
신상공개는 중요하지만 ‘잔혹하면 공개’하는 제도는 아니다
경찰은 이번 주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정씨의 이름과 나이, 얼굴을 공개할지 결정할 예정이다.
시신 훼손과 분산 유기 정황 등을 고려하면 공개 여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큰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신상공개는 형벌이 아니다.
현행법은 범죄의 중대성과 잔혹성뿐 아니라 피의자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믿을 충분한 증거가 있는지, 공개가 국민의 알권리와 범죄예방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지를 함께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결국 “끔찍한 범죄이니 얼굴부터 공개한다”는 제도가 아니다. 공개로 얻는 공익이 피의자의 인격권과 무죄추정 원칙에 대한 침해보다 큰지를 별도로 판단하는 절차다.
공개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피의자에게는 법적 대응을 위한 유예기간이 주어진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서 신상공개 여부는 중요하지만 그것이 수사의 중심이 될 수는 없다.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한다고 범행 동기와 과정이 밝혀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신상공개는 사건 해결의 끝이 아니라 수사과정에서 내려지는 하나의 행정적 판단이다.
국적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에서 벌어진 범죄의 실체다
이번 사건은 피의자와 피해자가 모두 중국 국적이라는 점 때문에 중국에서도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중국 온라인 공간에서는 한국 경찰의 공식 결정 전에 피의자로 추정되는 사람의 이름과 사진 등 개인정보가 퍼지고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형사사법 절차의 기준은 국적이 아니다. 범죄가 한국에서 발생했고 한국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체포해 수사하고 있는 만큼 기본적으로 한국법과 한국의 형사절차가 적용된다.
신상공개 역시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기준을 더 엄격하게 적용하거나 느슨하게 적용할 수 없다. 범행의 중대성과 증거, 공공의 이익이라는 같은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국적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한 개인의 범죄가 특정 국적이나 유학생 집단 전체의 문제로 확장될 위험도 있다.
이번 사건에서 국적은 수사와 피해자 가족 지원, 외교적 통보 과정에서는 중요한 요소지만 범죄의 본질은 아니다.
본질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살해한 뒤 그 죽음을 숨기기 위해 어떤 행동을 했는가다.
신상공개보다 먼저 되찾아야 할 것은 ‘피해자의 진짜 마지막 시간’이다
경산 유학생 살인사건은 처음에는 실종사건으로 시작됐다. 피해자의 휴대전화가 동대구역 방향으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행적이 끊긴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수사가 진행되면서 그 마지막 동선 가운데 상당 부분이 피해자 자신의 움직임이 아니라 피의자가 만들어낸 흔적일 가능성이 드러났다. 사건의 본질이 달라지는 지점이다.
살해와 시신 훼손을 넘어 피해자가 살아 움직인 것처럼 시간을 연장하고 경찰이 추적할 마지막 위치까지 바꾸려 했는지가 수사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이제 경찰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여러 장소에 유기된 피해자의 시신을 최대한 수습하고 피의자가 만들어놓은 거짓 동선과 진술을 걷어내야 한다.
그리고 피해자에게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시간순으로 복원해야 한다. 신상정보 공개 여부는 그 과정에서 결정될 하나의 절차다.
피의자의 이름과 얼굴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살인이 일어났고 살해 이후 어떤 방식으로 피해자의 흔적과 수사의 방향을 바꾸려 했는지를 끝까지 밝혀내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수사기관이 되찾아야 하는 것은 피의자의 이름보다 먼저 피해자의 진짜 마지막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