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대홍수가 드러낸 기후 불평등
히말라야 빙하가 무너진 자리, 그곳에 한국인 9명이 있었다
배출 책임 164위 네팔의 참사 … 재난은 끝나도 '이후 3년'이 남는다
비 한 방울 없이 산이 무너졌다
비는 오지 않았다. 하늘은 맑았다. 2026년 8월 26일 오전 8시 37분, 네팔과 중국 티베트 접경 히말라야 상층부에서 랑탕 리룽(Langtang Lirung) 봉우리 인근 빙하가 통째로 무너졌다. 얼음과 암석, 융빙수가 뒤섞인 물살이 바그마티주 계곡을 훑고 내려갔다. 라수와·누와코트·다딩·치트완의 마을과 도로, 교량, 수력발전소가 차례로 지워졌다.
당초 전문가들은 빙하호 붕괴 홍수(GLOF)를 의심했다. 그러나 이튿날 미국 항공우주국(NASA) 랜드샛 9호 위성이 랑탕 리룽 인근의 붕괴 흔적을 포착하면서, 빙하 아래 기반암이 무너지며 빙체 전체가 탈락한 형태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렸다. 장기적 온난화가 빙하의 안정성을 갉아먹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개별 재난과 기후변화의 인과는 정밀한 기후귀속(attribution) 연구를 거쳐야 확정된다. 과학적 조사에 앞서 모든 원인을 기후변화 하나로 단정하는 태도 역시 경계해야 한다.

사망 1,003명, 실종 4,462명 … 그리고 한국인 9명
9월 1일 네팔 재난관리 당국 집계 기준 네팔 내 사망자는 987명, 실종자는 외국인 583명을 포함해 3,916명이다. 중국 티베트자치구의 사망 16명·실종 546명을 더하면 사망 1,003명, 실종 4,462명에 이른다. 구조된 인원은 1만1,814명이다. 교량 80개와 도로 40여㎞가 끊겼고, 수력발전소 12곳이 피해를 입었다.
한국은 이 재난의 관찰자가 아니다. 라수와 지역 어퍼트리슐리(UT)-1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한국남동발전 직원 3명과 두산에너빌리티 직원 6명 등 우리 국민 9명이 연락 두절 상태다. 네팔 독립발전사업자협회는 이 발전소에서만 576명의 연락이 끊겼고, 이 가운데 300명가량이 터널에 갇힌 것으로 추정했다. 8월 31일 이 터널 300m 지점에서 시신 1구가 수습됐으나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다. 두산에너빌리티와 한국남동발전은 헬기 투입을 거듭 요청했지만 기상 악화와 현지 운항 제한에 막혔다. 정부는 공석이던 주네팔대사에 박재경 대사를 긴급 임명했다.
배출 책임은 164위, 피해는 최상위
네팔의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 순위는 세계은행 조사 대상 190개국 가운데 164위, 총배출량은 194개국 중 87위다. 책임은 하위권인데 피해는 상위권이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아시아에서는 지난 50년간 3,612건의 기상·기후 재난이 발생해 약 100만 명이 숨졌고 경제적 손실은 1조4,000억 달러에 달했다. 1998년부터 2017년까지 전 세계 홍수 피해 인구는 20억 명을 넘었다.
이번 참사에서도 생사는 정보의 격차에서 갈렸다. 누와코트 트리부반 트리슐리 중학교의 라젠드라 다와디 교장은 잇따른 경고 전화를 받고 수업을 중단시켜 학생 약 900명을 대피시켰다. 아직 물이 닿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그는 수업보다 안전을 택했다. 반면 상류의 경보 사각지대에 놓인 마을과 터널 노동자들에게는 그 전화가 닿지 않았다. 기후 불평등은 국가와 국가 사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같은 계곡 안에서도 경보와 대피 수단의 유무로 갈린다.

구조가 끝나면 시작되는 '두 번째 재난'
재난은 헬기가 철수한 뒤 형태를 바꿔 계속된다. 홍수 이후에는 오염된 식수로 인한 수인성 감염병과 위장관계 질환이 늘고, 임시 거주시설의 과밀과 의료 공백이 이를 키운다. 생존자와 유가족에게는 불안·우울·수면장애·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수년간 남는다.
국내 사정도 다르지 않다. 연세대 산학협력단이 질병관리청 의뢰로 수행한 연구는 이상기후 피해자의 건강을 재난 직후부터 최대 3년간 추적할 것을 제안했다. 2주 이내, 3개월, 6개월, 1년, 2년, 3년의 단계별 조사에 국민건강보험 청구자료와 국가건강검진자료, 응급실·입원자료를 연계하는 방식이다. 집중호우와 태풍은 감염병·위장관계 질환·사망 증가와, 폭설은 심근경색·뇌졸중·낙상·한랭질환과, 산불은 호흡기·심혈관 질환 및 임신·정신건강 문제와 각각 연결된다. 질병관리청은 2025년 9월 '기후재난 보건응급 조사 지침'을 마련하고 장기 추적체계 도입을 검토 중이다.

세 개의 걸림돌
제도는 아직 설계도 단계다.
**첫째, 개인정보다.** 건강보험·진료자료 결합은 유출과 목적 외 이용 위험을 키운다. 동의 절차, 가명처리 기준, 접근 권한, 보존 기간이 법과 지침으로 명확히 규정돼야 한다.
**둘째, 추적의 단절이다.** 피해 주민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면 조사가 끊긴다. 고령자와 장애인, 외국인 주민, 비정규직 종사자는 모바일 설문 기반 조사에서 가장 먼저 탈락하는 집단이다. 방문조사와 지역 보건소·정신건강복지센터를 함께 묶어야 한다.
**셋째, 보고서로 끝날 위험이다.** 호흡기질환 증가가 확인되면 이동진료와 약품 지원이, PTSD 위험이 커지면 상담과 치료비 지원이 즉시 연결돼야 한다. 자료가 정책으로 환류되지 않는 조사는 행정력의 낭비다.

무엇을 할 것인가
**하나, 국경을 넘는 조기경보망이다.** 히말라야 권역에 위성·레이더·수위센서·인공지능(AI) 예측을 결합한 경보체계가 필요하다. 네팔·중국·인도가 하천과 빙하 자료를 실시간 공유하는 협력이 전제다. 전화 한 통이 900명을 살렸다는 사실은 경보의 비용 대비 효과를 웅변한다.
**둘, 검증 가능한 국제 기후재원이다.** 손실과 피해에 대한 지원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제도여야 한다. 피해 규모와 취약성, 배출 책임을 함께 반영해 배분하고 집행 과정과 복구 성과를 공개해야 한다. 배분 기준의 투명성과 수원국의 행정 역량을 둘러싼 이견도 함께 다뤄야 한다.
**셋, 해외 현장의 재난 프로토콜이다.** 개발도상국 인프라 수주가 늘어난 만큼 지질·빙하 위험 평가, 터널 작업자 비상탈출 설계, 본국 구조 지원 절차가 계약 단계에서 명문화돼야 한다. 이번 참사는 우리 기업의 해외 현장이 기후재난의 최전선에 서 있음을 보여줬다.
**넷, '재난 이후 3년' 추적체계의 법제화다.** 시범사업이 아니라 법정 제도로 올려야 한다. 재난 건강영향 자료는 건축·환경·산림·복지 정책의 기초자료로 되돌아와야 한다.

남는 것은 사람이다
네팔의 참사는 기후재난이 환경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켰다. 재난은 전력과 통신, 교통, 의료, 일자리, 정신건강을 차례로 무너뜨린다. 예방 투자와 장기 건강관리는 비용이 아니라 복구비를 줄이는 사회적 안전망이다.
지금 히말라야 터널 안을 더듬는 손길에는 우리 국민 9명의 이름도 함께 걸려 있다. 국제사회는 기후 불평등을 줄이는 책임 있는 지원에 나서야 하고, 한국은 구조와 복구를 넘어 피해자의 삶과 건강을 끝까지 살피는 체계를 세워야 한다. 재난의 크기는 물의 양이 아니라, 그 뒤에 남는 사람을 얼마나 오래 살피느냐로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