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기획①]에어컨 바람 속의 콧물, 743만 명의 여름
에어컨 바람 속의 콧물 ― 여름에도 멈추지 않는 알레르기 비염
봄이 지나면 코 건강도 한숨 돌린다고들 한다. 그러나 진료 현장의 그래프는 그 통념을 배신한다. 알레르기 비염은 계절을 가리지 않는 '연중 질환'에 가깝고, 무더위와 냉방이 겹치는 한여름은 오히려 또 하나의 고비다.

먼저 숫자를 보자. 2023년 한 해에만 743만여 명이 알레르기 비염으로 진료를 받아, 연간 700만 명 이상이 병원을 찾는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분석에서도 진료 인원은 2014년 637만여 명에서 2018년 703만여 명으로 10.5% 늘어 완만한 우상향을 그렸다. 눈여겨볼 대목은 연령 분포다. 10대 이하 환자가 뚜렷하게 많아 37.8%에 달했다. 조기 감작(感作)이 소아기에 일어나기 쉽다는 의학적 설명과 맞닿는다. 실제로 알레르기 비염은 소아의 약 10%, 청소년의 10~15%에서 나타나며, 환자의 75%가량이 25세 이전에 증상을 시작한다.

이 질환은 '체질 탓'만은 아니다. 질병관리청 자료를 활용한 분석에서 소아 환자의 62.8%는 아버지에게, 47.8%는 어머니에게 알레르기 비염 병력이 있었다. 유전적 소인과 환경 자극이 함께 작동하는 다인성(多因性) 질환이라는 뜻이다. 한 이비인후과 전문의는 도시화에 따른 공기 오염, 서구화된 식습관, 스트레스 증가, 기후 변화 등이 환자 증가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고 진단한다.
왜 여름인가
여름 비염의 주범은 실외의 꽃가루보다 실내에 있다. 고온다습한 환경은 집먼지진드기와 곰팡이가 번식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침구·카펫에 서식하는 진드기, 욕실·창틀·벽지·에어컨 내부에 피는 곰팡이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냉방이 변수를 더한다. 에어컨 자체가 알레르겐은 아니지만, 오래 청소하지 않은 필터는 먼지와 곰팡이 포자를 실내로 퍼뜨리고, 차고 건조한 바람은 코 점막을 직접 자극한다. 밀폐된 실내에서 환기가 부족하면 자극원이 계속 쌓인다.
증상은 맑고 묽은 콧물, 발작적인 재채기, 코막힘, 눈·코의 가려움으로 요약된다. 감기와 닮았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다. 열이 거의 없고, 특정 장소에서 반복되며, 아침에 심해지는 경향이 그것이다. 다만 증상만으로 100% 구분하기는 어렵다. 코막힘이 이어져 입으로 숨을 쉬면 수면의 질이 떨어지고, 어린이는 학습 집중력, 성인은 업무 능률에 영향을 받는다. 콧물이 목 뒤로 넘어가 기침이 생기는 후비루도 흔하다.
전문가들이 권하는 '진료가 필요한 신호'는 분명하다.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되거나, 코막힘으로 잠을 이루기 어렵거나, 누런 콧물과 얼굴 통증이 동반되거나, 한쪽 코만 계속 막히고 피가 날 때다. 숨이 차거나 쌕쌕거림이 함께 있으면 지체 없이 병원을 찾아야 한다.

기후가 바꾸는 판도, 그리고 우리 삶
이 질환은 이제 개인 건강을 넘어 사회·지구적 신호로 읽힌다. 세계적으로 알레르기 비염은 성인의 약 10~30%가 앓는 것으로 추정되고, 전 세계 4억~5억 명이 이를 경험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더 주목할 흐름은 증가 속도다. 최근 수십 년간 유병률은 매년 2~3%씩 늘었다. 배경에는 기후 변화가 있다. 지구 온도 상승으로 꽃가루 시즌이 길어지고 꽃가루 농도가 높아지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꽃가루 배출량이 16~40% 늘고 시즌이 최대 19일까지 길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3월 최저기온이 높을수록 4~7월 병원 방문이 증가하는 연관성이 확인됐다.
영향은 층층이 번진다. 개인에게는 수면·집중력·삶의 질 저하로, 가정에는 소아의 학습·성장 부담으로 돌아온다. 사회·국가 차원에서는 진료비와 생산성 손실이 누적되고, 특히 저소득층의 의료 이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점은 공중보건 형평성의 과제를 남긴다. 무엇보다 알레르기 비염은 기후 변화의 건강 영향을 가늠하는 '민감 지표'로 주목받는다. 코끝의 재채기 하나가 지구의 체온계를 대신하는 셈이다.

마무리 ―기자의 한마디
숫자는 무겁지만 대응은 의외로 단순하다. 침구를 자주 삶아 햇볕에 말리고, 에어컨 필터를 정기적으로 관리하고, 실내 습도를 적정선으로 낮추고, 찬 바람이 얼굴에 직접 닿지 않게 하는 것. 완치약은 아직 없어도, 오늘 손이 닿는 작은 습관들이 내일의 숨결을 바꾼다. 코가 편해야 잠이 깊고, 잠이 깊어야 하루가 맑다. 나를 돌보는 일은 늘, 가장 가까운 데서 시작된다.
(2회차 예고 ― 다음 회에서는 '내 증상이 정말 비염인지' 확인하는 진단법과, 체질·나이·기저질환의 관계, 그리고 현재 치료가 어디까지 왔는지를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