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전쟁은 막아도 국가는 멈출 수 있다… 수도권 집중이 만든 대한민국 안보의 역설
수도권 집중이 만든 대한민국 안보의 역설
작전계획보다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은 국가의 구조다
대한민국은 '압축성장'의 성공을 상징하는 국가다. 짧은 기간 동안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냈고,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와 첨단 제조업 경쟁력을 확보했다. 그러나 그 성공의 이면에는 오랫동안 외면해 온 구조적 문제가 존재한다. 바로 수도권 집중이다.
서울과 경기, 인천으로 구성된 수도권은 국토 면적의 12%가 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 거주하며, 국내총생산(GDP)의 상당 부분이 수도권에서 창출된다. 대기업 본사와 금융기관, 정부 부처, 대학, 연구소, 대형 병원, 반도체와 정보기술 산업까지 국가 핵심 기능 대부분이 수도권에 밀집해 있다.
평상시에는 이러한 집중이 효율성을 높였다. 기업은 우수한 인재를 쉽게 확보할 수 있었고, 연구개발과 금융, 물류가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면서 성장 속도를 높였다. 그러나 안보의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효율성이 극대화된 구조는 위기 상황에서는 오히려 취약성도 함께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안보 전문가들이 오래전부터 지적해 온 문제 역시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의 수도는 군사분계선과 불과 수십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세계 주요 국가 가운데 이처럼 국가의 정치·경제 중심이 잠재적 군사적 위협에 가까운 사례는 많지 않다. 북한은 장사정포와 방사포, 단거리 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 무인기 등 다양한 비대칭 전력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왔다. 최근에는 정밀유도 능력까지 향상되면서 군사시설뿐 아니라 국가 기간시설과 산업시설까지 공격 범위에 포함될 수 있다는 분석도 꾸준히 제기된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대한민국은 과연 수도권이 일시적으로 기능을 상실해도 국가 전체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구조인가."
많은 사람들은 한반도 유사시를 이야기하면 곧바로 한미연합군의 대응 능력을 떠올린다. 공개된 범위에서 알려진 한미연합 작전계획인 '작계 5027' 역시 북한의 전면 남침에 대응하기 위한 연합방위 개념을 담고 있다. 한국군의 초기 방어와 미군 증원, 이후 반격이라는 기본 틀은 오랫동안 한반도 억제 전략의 핵심 축으로 기능해 왔다.
그러나 현대전은 과거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전쟁의 승패는 반드시 지상군이 어디까지 진격했는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개전 초기 수 시간에서 수일 동안 국가 핵심 기능이 얼마나 유지되느냐가 전쟁 수행 능력 자체를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
전력망이 마비되고, 통신망이 끊기며, 데이터센터가 멈추고, 금융 시스템이 장애를 일으키고, 반도체 생산시설이 가동을 중단하며, 대형 병원의 의료체계가 붕괴된다면 지상군이 방어선을 유지하고 있더라도 국가는 심각한 기능 저하를 겪게 된다.
이 점에서 군사적 영토 방어와 국가 기능의 유지가 반드시 동일한 의미는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작전계획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작전계획은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며, 국가 기반시설의 배치까지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수도권에 정치와 경제, 산업, 의료, 연구개발, 정보통신 기능이 과도하게 집중된 현재의 구조에서는 어떤 군사 전략도 일정 수준 이상의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기 어렵다.
결국 작전계획이 아니라 국토 구조 자체가 전략적 변수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최근 국제사회에서도 '회복력(Resilience)'이라는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다. 국가안보는 더 이상 군사력만의 문제가 아니라 공급망, 에너지, 식량, 통신, 데이터, 산업 기반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가를 포함하는 종합적 개념으로 이해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각국은 에너지 안보를 재점검했고, 코로나19 팬데믹은 공급망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반도체와 핵심 광물 확보 경쟁 역시 경제 문제가 아니라 국가안보의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이 첨단산업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전략산업의 지역 분산을 추진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대한민국 역시 이러한 변화에서 예외일 수 없다.
수도권 집중은 단순한 지역 균형발전 문제가 아니라 국가 생존성과 직결되는 전략 과제가 되고 있다. 지방에 산업을 분산하고, 행정 기능을 이전하며, 의료와 연구개발 거점을 다극화하는 정책은 경제적 효율성만으로 평가할 사안이 아니다. 국가가 위기 상황에서도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드는 회복력 확보의 문제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중국 변수도 함께 거론한다. 중국은 상당한 규모의 미사일 전력과 해·공군 전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동북아 안보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행위자다. 다만 한반도 유사시 중국이 어떠한 방식으로 개입하거나 행동할 것인지는 정치적·전략적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사안이다. 따라서 특정 시나리오를 단정하기보다 복합적인 안보 환경 속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하는 접근이 보다 현실적이다.
중요한 것은 위협의 종류가 아니라 국가의 준비 방식이다.
어떤 국가도 모든 공격을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피해를 최소화하고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국가는 만들 수 있다. 이것이 현대 안보에서 말하는 회복력이며, 국가 경쟁력의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안보는 강한 군대와 첨단 무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국토 공간의 배치, 산업의 분산, 공급망의 안정성, 데이터와 통신망의 이중화, 에너지 인프라의 다변화까지 모두 국가안보의 일부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가"를 넘어 "국가가 끝까지 기능할 수 있는가"를 묻는 시대다.
작전계획은 국가를 지키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전략적 취약성은 특정 무기체계의 부족이 아니라, 수도권이라는 좁은 공간에 국가의 거의 모든 핵심 기능을 집중시켜 놓은 구조일 수 있다.
안보는 국방부만의 과제가 아니다. 국토계획과 산업정책, 지역균형발전, 에너지와 디지털 인프라 정책까지 하나의 국가 전략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수도권 집중을 성장의 산물로만 바라보던 시각에서 벗어나, 국가 회복력이라는 새로운 기준으로 재평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 안보는 더 강한 무기를 갖추는 것뿐 아니라, 위기 속에서도 국가가 멈추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