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임위 한자리가 부른 ‘멱살 정치’…국민의힘이 권영진 징계에 사활 거는 이유

“사감을 모두 잊고 국민의 삶과 대한민국의 정상화를 위해 원내대표로서 책무를 다하겠다.”
사과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말을 이었다.
“이번 일은 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보수 대표 정당 국민의힘의 문제다.”
정 원내대표는 개인의 감정과 당의 책임을 분리했다. 자신은 용서할 수 있지만, 공당의 원내대표에게 물리력을 행사한 일까지 개인 간 화해로 끝낼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국민의힘은 권영진 의원의 사과에도 사건을 마무리하지 않고 있다. 지도부가 자진 탈당과 윤리위원회 회부, 제명 가능성까지 거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사건은 한 의원의 돌발 행동을 넘어 당의 권위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를 묻는 시험이 됐다.
상임위원회는 의원에게 가장 현실적인 권력이다
권 의원은 후반기 국회 상임위원회 배정 결과에 반발해 지난 23일 원내대표실을 찾았다. 이 과정에서 고성이 오갔고 정 원내대표의 옷깃을 잡는 물리적 충돌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표면적으로는 상임위원회 배정에 대한 불만이었다. 그러나 국회에서 상임위원회는 단순한 자리 배치가 아니다. 의원에게는 정책 영향력이고, 지역구에는 예산이며 다음 선거에는 정치적 경쟁력이다.
어느 상임위에서 활동하느냐에 따라 다루는 법안과 감독하는 부처가 달라지고 지역 현안을 해결할 기회도 크게 달라진다. 자연스럽게 언론 노출과 정책 전문성도 쌓인다.
그래서 상임위원회 배정은 매 국회 후반기마다 가장 치열한 내부 경쟁 가운데 하나다. 원내대표가 가진 권한 가운데 의원들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상임위 배정권이다.
형식적으로는 국회의장이 상임위원을 선임하지만, 실제 명단은 각 교섭단체 원내대표가 조율한다. 모든 의원의 희망을 만족시킬 수 없는 만큼 불만은 언제든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불만이 물리력으로 표출되는 순간 갈등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진다. 상임위 배정의 공정성 논란은 사라지고, 폭력과 당 기강만 남는다.

국민의힘이 이번 사건을 강하게 다루는 이유는 권 의원 개인 때문만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선례다.
공천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도부를 압박하고 당직이 불만이면 물리력을 행사하고 상임위 배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원내대표를 찾아가 충돌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당 운영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원내대표는 의원총회를 이끌고 상임위를 배정하며 여야 협상을 총괄하는 자리다. 그 권위가 무너지면 앞으로 어떤 인사와 당무 결정도 쉽게 흔들릴 수 있다.
정 원내대표가 "보수의 품격"과 "당의 질서"를 반복해 언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사건을 개인 간 다툼으로 끝내면 앞으로 비슷한 갈등이 생길 때마다 물리적 압박이 협상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그래서 국민의힘이 지키려는 것은 원내대표 개인의 체면이 아니라 정당 운영의 최소한의 규칙이다.
그래서 탈당보다 중요한 것은 징계의 실효성이다
당 지도부는 권 의원에게 자진 탈당을 권고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최고 수준의 징계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자진 탈당이 반드시 강한 책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힘은 이미 비슷한 경험을 했다. 2021년 송언석 의원은 당직자 폭행 논란이 불거지며 자진 탈당했고 이후 복당했다.
당시에도 탈당은 책임지는 모습으로 평가됐지만, 결과적으로는 윤리위의 본격적인 징계를 거치지 않은 채 당으로 돌아왔다는 비판이 남았다.
이번에도 권 의원이 탈당한 뒤 일정 시간이 지나 복당한다면 정치적 책임은 크게 약해질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사건의 핵심은 탈당 여부가 아니다.
국민의힘이 어떤 기준으로 복당을 허용할 것인지, 폭력 행위에 대해 앞으로도 같은 원칙을 적용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엄정 대응은 탈당 권고가 아니라 일관된 징계 기준에서 완성된다.
폭력을 징계하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권 의원의 행동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폭력에 대한 처벌만으로 마무리한다면 상임위원회 배정 과정의 구조적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상임위 배정은 원내대표의 재량이 큰 영역이다. 전문성과 선수, 지역 안배, 전반기 활동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만, 세부 기준이 충분히 공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배정 결과에 불만을 가진 의원들은 공정성보다 계파나 친소관계를 먼저 의심하게 된다. 물론 이런 의심이 폭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당 기강을 바로 세우려면 징계와 함께 배정 기준도 더욱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갈등도 줄일 수 있다.
국민의힘이 치러야 할 진짜 시험
권 의원은 정 원내대표를 찾아 사과했고 정 원내대표도 개인적인 감정은 접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갈등은 봉합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이 지켜보는 것은 두 사람의 화해가 아니다. 국민의힘이 이번 사건을 어떤 기준으로 처리하느냐다.
물리력을 행사한 의원에게 계파와 정치적 위치를 떠나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지, 탈당이 징계 회피 수단으로 반복되지 않도록 복당 기준을 강화할 것인지, 상임위원회 배정 원칙을 더 투명하게 만들 것인지가 진짜 시험이다.
정점식 원내대표가 잊겠다고 한 것은 사감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권영진 의원 개인의 분노가 아니다.
당의 공식 결정에 불복하면 물리력이 협상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위험한 선례다. 이번 징계의 대상은 한 의원의 멱살잡이만이 아니다.
국민의힘이 바로 세워야 하는 것은 한 사람의 행동보다, 폭력이 정치적 의사 표현이 될 수 없다는 정당의 원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