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6-08-29 11:22 (토) 08.29 (토)
“공장 가서 돈이나 벌어라”… 반복되는 가정 내 언어폭력

“공장 가서 돈이나 벌어라”… 반복되는 가정 내 언어폭력

육아와 돌봄을 무시하는 사회가 가정을 무너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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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삽화이다.(일러스트=김현지 작가)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40대 여성의 사연이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둘째 아이가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얼굴 찰과상과 팔꿈치 골절상을 입은 상황에서 남편에게 가장 먼저 돌아온 말은 걱정이나 위로가 아니었다.

“애 안 보고 뭐했냐”, “집에서 하는 게 뭐냐”, “공장 가서 돈이나 벌어와라”라는 폭언과 욕설이었다. 결국 여성은 “양육권까지 포기하고 집을 나가겠다”라며 이혼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겉으로 보면 부부싸움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단순한 감정 충돌 수준을 넘어 한국 사회에 깊게 자리 잡은 가정 내 언어폭력과 돌봄 노동 경시 문제를 그대로 드러낸 사례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경제적 역할과 육아 책임이 충돌하는 순간 배우자를 향한 인격 모독과 존재 부정으로 이어지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낡은 가족 구조 속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많은 가정에서 전업주부나 경력 단절 여성은 가사와 육아를 맡고 있지만 그 노동의 가치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 식사 준비부터 병원 진료, 학습 관리, 생활 관리까지 하루 대부분 가족을 위해 사용하지만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집에서 편하게 있는 사람”처럼 취급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갈등이 생기면 “돈도 못 벌면서”, “집에서 애만 보는데 그것도 못 하냐”는 식의 공격이 반복된다. 문제는 이런 말들이 단순한 화풀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반복적인 욕설과 무시, 경제력 비하, 외모 비난 등을 대표적인 정서적 폭력으로 분류한다. 신체적 폭력처럼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장기간 반복되면 피해자의 자존감을 심각하게 무너뜨리고 우울증과 무기력, 불안 증세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한다.

특히 이번 사연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남편이 아내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는 점이다. “넌 이 집에서 필요 없는 존재”라는 표현은 단순한 다툼 수준을 넘어 상대를 가족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언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폭언이 아이들 앞에서 반복될 가능성이다. 아이들은 부모 관계를 통해 인간관계와 감정 표현 방식을 배운다. 한쪽 부모가 지속해 무시당하는 환경에서 성장한다면 공격성과 불안감, 관계 왜곡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경제적 불안과 육아 스트레스가 겹치면서 부부 갈등이 더욱 심화하는 모습도 나타난다. 고물가와 생활비 부담, 주거 불안, 사교육비 증가 등이 누적되면서 가정 내부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경제적 어려움이 배우자에 대한 폭언과 인격 모독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스트레스 상황일수록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많은 여성이 아이 때문에 폭언을 참고 살아간다는 점이다. “애들 때문에 참고 산다”는 말은 한국 사회에서 너무 흔한 표현이 됐다.

하지만 반복되는 언어폭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일상이 되고 결국 가족 전체를 병들게 만든다. 실제로 장기간 정서적 폭력을 경험한 사람들 가운데는 자포자기 심리와 현실 도피 충동을 느끼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번 사연 속 여성이 “양육권까지 포기하고 혼자 나가겠다”라고 말한 것도 극심한 정신적 소진 상태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가 여전히 ‘돈 버는 사람’ 중심으로 가족 내 권력을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고 분석한다. 육아와 돌봄은 가족 유지에 필수적인 노동임에도 경제적 수익으로 환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낮게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돌보고 가정을 유지하는 노동이 사라진다면 사회 역시 정상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 결국 돌봄 노동을 무시하는 문화는 가정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기반을 흔드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한 부부의 갈등으로 소비되고 끝날 일이 아니다. 한국 사회는 지금 가정 안에서 벌어지는 언어폭력과 감정 폭력을 더 이상 사소한 문제로 넘겨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받고 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상처를 참고 견디는 문화, 경제력이 관계의 우위를 결정하는 구조, 육아를 쉬운 일로 치부하는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비슷한 갈등은 계속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진짜 건강한 가정은 경제력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서로를 존중하고 함부로 상처 주지 않는 태도, 그리고 상대의 노동과 희생을 인정하는 문화가 함께 존재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부모가 아니라 서로를 사람답게 대하는 부모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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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용 기자
admin@aju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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