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에 열린 평화의 소녀상… 바리케이드 철거가 다시 꺼낸 ‘기억의 전쟁’
- 이미지 삽화이다.(일러스트=박경식 작가) 평화의 소녀상을 둘러싸고 설치돼 있던 경찰 바리케이드가 약 6년 만에 철거됐다.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소녀상이 다시 시민들 곁으로 돌아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 한편, 역사 왜곡과 혐오 표현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 역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한편, 역사 왜곡과 혐오 표현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 역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바리케이드는 지난 2020년 보수 성향 단체들의 반복적인 집회와 훼손 우려 속에 설치됐다.
이후 소녀상은 보호라는 이름으로 접근이 제한된 채 경찰 장벽 안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최근 위안부 피해자를 모욕하는 게시물과 집회 활동을 이어온 김병헌 씨가 사자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되면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철거 요구가 본격화됐다.
정의기억연대는 6일 열린 수요시위에서 바리케이드 철거 행사를 진행하며 “소녀상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라고 밝혔다.
시민들은 “일본은 사죄하라”, “평화가 이겼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장벽을 밀어냈고 소녀상 주변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보라색 화환이 놓였다.
그러나 이번 철거는 단순한 공간 개방 이상의 의미가 있다. 위안부 피해자 기억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 표현의 자유와 역사 왜곡의 경계, 그리고 한일 역사 문제를 둘러싼 충돌이 다시 한번 한국 사회 중심부로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장벽 안의 소녀상… 6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보호인가, 고립인가… 바리케이드의 시작
평화의 소녀상 주변에 경찰 바리케이드가 설치된 것은 지난 2020년이다. 당시 보수 성향 단체들이 소녀상 철거를 주장하며 인근에서 반복적으로 집회와 시위를 열었고 일부에서는 소녀상 훼손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이에 시민단체 측 요청으로 경찰이 바리케이드를 설치하면서 소녀상은 장기간 경찰 장벽 안에 놓이게 됐다. 당시에는 보호 조치라는 인식이 강했다.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공간이 공격받을 수 있다는 우려 속에서 물리적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는 여론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바리케이드는 또 다른 논란을 낳았다.
소녀상이 시민 누구나 자유롭게 찾을 수 있는 기억 공간이 아니라 접근이 제한된 상징물처럼 변해갔기 때문이다.
빈 의자에 앉을 수도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보호가 아니라 고립”이라는 비판도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장벽은 단순한 안전장치를 넘어 한국 사회의 갈등 구조를 상징하는 존재로 바뀌어 갔다.

수요시위와 ‘기억의 공간’
소녀상이 자리한 옛 일본대사관 앞은 단순한 조형물 설치 장소가 아니다. 이곳에서는 1992년부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수요시위가 이어져 왔다.
세계적으로도 드문 장기 연속 집회로 기록될 만큼 이 공간은 역사 기억과 시민 운동의 상징성을 함께 지닌 장소가 됐다. 소녀상 역시 단순한 동상이 아니다.
어린 피해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기억과 전쟁 성폭력 문제를 상징하며 동시에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 문제를 드러내는 역할을 해왔다.
이 때문에 소녀상을 둘러싼 충돌은 단순한 찬반 갈등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기억과 추모의 공간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역사 해석과 정치적 상징의 충돌 지점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 6년 동안 바리케이드 안에 놓여 있었던 것은 단지 소녀상만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한국 사회가 해결하지 못한 역사 갈등과 기억의 충돌 역시 함께 갇혀 있었다.
표현의 자유인가, 역사 왜곡인가… 충돌하는 두 주장
사자명예훼손 적용… 어디까지가 처벌 대상인가
이번 사건이 사회적 논란으로 번진 가장 큰 이유는 단순한 집회 문제가 아니라 역사 왜곡과 표현의 자유가 정면으로 충돌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김병헌 씨가 온라인과 집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가짜 피해자’, ‘성매매 여성’ 등으로 반복 표현하며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피해자 구술 자료의 일부만 발췌하거나 맥락을 왜곡해 자신의 주장에 맞게 활용한 점 등을 근거로 단순 의견 표명이 아니라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봤다.
여기에 적용된 핵심 혐의가 바로 사자명예훼손이다. 이미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판단인데 이는 단순 개인 비방이 아니라 역사적 피해자 집단 전체에 대한 왜곡 행위로 해석된 것이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왜곡된 신념에 기반한 확신범의 범행”이라고 규정하며 강경 대응 방침을 분명히 했다. 반면 김 씨 측과 일부 보수 성향 인사들은 이를 표현의 자유 문제로 접근한다.
역사 해석이나 의견 표명까지 형사 처벌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결국 이번 사건은 단순한 명예훼손 재판이 아니라 역사 왜곡과 표현의 자유 사이 경계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위안부는 성매매’ 주장과 역사 수정주의 논란
논란의 핵심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역사 인식의 충돌이 자리하고 있다.
김 씨 측이 반복해 온 “위안부는 자발적 성매매였다”는 주장은 일본 극우 진영이 오랫동안 주장해 온 역사 수정주의 논리와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국제 사회와 다수의 역사 연구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전시 성폭력과 강제 동원의 문제로 규정하고 있다. 유엔 인권 기구 역시 일본 정부에 반복적으로 책임 인정과 피해 회복을 촉구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 증언 자체를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행위는 단순한 의견 차원을 넘어선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이번 사건은 온라인 공간과 거리 시위가 결합하며 혐오 표현 형태로 확산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더 커졌다.
검찰이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까지 적용한 것도 학교 인근에서 자극적 문구를 사용한 시위가 학생들에게 정신적 피해를 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 충돌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주장 하나가 아니다.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사회가 어디까지를 용인할 수 있는가에 대한 기준 자체가 흔들리는 것이다.

철거 이후의 갈등… 소녀상은 다시 열린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장벽은 사라졌지만,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
경찰 바리케이드가 철거되면서 평화의 소녀상은 다시 시민들 곁으로 돌아오게 됐다. 하지만 장벽이 사라졌다고 해서 갈등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소녀상을 둘러싼 대립은 지난 몇 년 동안 더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성격을 띠어왔다. 한쪽에서는 역사 기억과 피해자 존엄 회복의 상징으로 바라본다.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특정한 역사 해석과 정치 운동의 상징으로 비판해 왔다. 이 과정에서 소녀상은 단순한 추모 조형물을 넘어 한국 사회의 역사 인식 충돌이 집중되는 공간으로 변해갔다.
이번 철거 행사 역시 누군가에게는 ‘시민 공간의 회복’으로 받아들여졌지만, 반대로 다른 쪽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결과라는 반발도 이어지고 있다.
결국 바리케이드 철거는 갈등의 종결이 아니라 오히려 다시 열린 공간 안에서 충돌이 재개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기억은 누구의 방식으로 남게 되는가
이번 사건은 단순히 소녀상을 보호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더 본질적인 질문은 “역사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기억할 것인가”에 있다.
위안부 문제는 오랫동안 한일 관계와 한국 사회 내부에서 가장 민감한 역사 문제 중 하나였다. 피해자 증언과 시민 운동을 통해 기억이 이어져 왔지만, 동시에 이를 부정하거나 축소하려는 움직임도 반복해 왔다.
이 과정에서 소녀상은 단순한 동상이 아니라 기억의 상징이 됐다. 누군가에게는 추모와 연대의 의미를 갖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정치적 논쟁의 대상으로 인식된다.
결국 소녀상을 둘러싼 갈등은 조형물 자체에 대한 충돌이 아니라 역사 기억을 둘러싼 사회적 충돌에 가깝다. 그리고 지금 한국 사회는 다시 그 질문 앞에 서 있다.
과거의 피해와 기억을 어떤 방식으로 남길 것인지 그리고 역사 왜곡과 표현의 자유 사이 어디에 사회적 기준을 세울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장벽은 철거됐지만, 기억의 충돌은 남아 있다
평화의 소녀상을 둘러싼 바리케이드 철거는 단순한 시설 정비나 공간 개방 이상의 의미가 있다. 약 6년 동안 경찰 장벽 안에 놓여 있었던 소녀상이 다시 시민들 곁으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장면이 됐다.
하지만, 동시에 그 과정은 한국 사회가 여전히 역사 문제를 둘러싼 깊은 갈등 속에 있음을 드러냈다.
이번 사건은 표현의 자유와 역사 왜곡의 경계, 피해자 기억의 보호, 그리고 역사 인식을 둘러싼 사회적 기준이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를 다시 묻고 있다.
특히 온라인과 거리 시위에서 반복된 혐오 표현과 역사 부정 논란은 단순한 개인행동을 넘어 사회 전체가 기억과 진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결국 소녀상을 둘러싼 충돌은 조형물 하나에 대한 갈등이 아니다. 그 안에는 전쟁 피해의 기억, 한일 역사 문제, 시민 운동의 의미, 그리고 한국 사회 내부의 이념 충돌까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장벽은 사라졌다. 그러나 역사 기억을 둘러싼 논쟁은 이제 다시 열린 공간 안에서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