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수학여행, 책임만 남았다…이재명 발언 논란이 드러낸 ‘학교의 변화’
- 이미지 삽화이다.(일러스트=박경식 작가) 소풍과 수학여행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 한때 학생 시절의 대표적 기억으로 남던 체험학습이 이제는 일부 학교에서만 제한적으로 운영되는 ‘예외적 활동’이 되고 있다.
- 실제로 올해 서울 지역 초·중·고등학교 가운데 수학여행을 계획한 학교는 전체의 17%에 불과하며 초등학교의 경우 그 비율은 5% 수준까지 떨어졌다.

실제로 올해 서울 지역 초·중·고등학교 가운데 수학여행을 계획한 학교는 전체의 17%에 불과하며 초등학교의 경우 그 비율은 5%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구더기 생길까 장독을 없애면 안 된다”라는 발언은 교육계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대통령은 체험학습이 교육의 일부라는 점을 강조하며 기회 박탈을 지적했지만, 교원단체들은 이를 현장 현실을 외면한 발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단순한 표현의 적절성에 있지 않다. 교사들이 체험학습을 기피하게 된 배경에는 안전사고 발생 시 개인에게 집중되는 법적 책임과 과도한 업무 부담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의 기회를 확대하자는 정책적 의지와 책임을 감당할 수 없다는 현장의 인식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한 차례의 발언 논란이 아니다.
체험학습의 축소를 통해 드러난 학교 시스템의 변화, 그리고 교육이 ‘위험 회피 구조’로 전환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다.
왜 수학여행은 사라졌나
‘안전’이 아니라 ‘책임’…교사를 멈추게 한 사법 리스크
수학여행과 소풍이 줄어든 가장 큰 이유는 단순한 안전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사고 발생 시 교사 개인에게 집중되는 법적 책임 구조다.
현장 교사들은 체험학습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대해 민·형사 책임을 동시에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학생 안전 관리의 책임이 교사 개인에게 과도하게 전가되면서 체험학습은 더 이상 교육 활동이 아니라 법적 리스크를 동반한 고위험 업무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안전사고와 관련된 소송 사례가 늘어나면서 교사들 사이에서는 “한 번의 사고가 교직 인생 전체를 흔들 수 있다”라는 위기감이 확산했다.
결국 체험학습 기피는 선택이 아니라 ‘책임을 감당할 수 없는 구조’ 속에서의 필연적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사라진 건 행사인가, 교육인가
수학여행과 소풍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다. 교실 밖에서 이루어지는 체험은 학생들에게 사회성과 협업,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는 중요한 교육 과정으로 여겨져 왔다.
그럼에도 현재 학교 현장에서는 체험학습이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특정 활동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교육의 한 축이 사실상 사라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교육적 판단이 아니라, 리스크 회피를 위한 선택이라는 점이다. 즉, “학생에게 무엇이 필요한가”가 아니라 “어떤 선택이 더 안전한가”가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지금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는 교육의 축소가 아니라, 교육 판단 기준 자체의 변화라고 볼 수 있다.
교실 밖을 포기한 이유, 현장이 감당할 수 없는 구조
준비는 교사 몫, 책임도 교사 몫…‘과부하 시스템’의 현실
체험학습은 하루짜리 일정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주의 준비 과정이 뒤따른다. 장소 선정, 안전 점검, 학부모 동의, 보험 가입, 이동 동선 관리, 비상 상황 대응 계획까지 대부분의 실무는 교사가 맡는다.
문제는 이 모든 과정이 ‘업무’로서 보장되기보다 추가적인 책임으로 누적된다는 점이다. 인솔 교사 수는 제한적인데 관리해야 할 학생 수는 많고 보조 인력 역시 충분히 확보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체험학습은 교육 활동이 아니라, “실패하면 책임만 남는 업무”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결국 교사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체험학습을 진행하는 것이 아닌 아예 계획을 하지 않는 것이다.
정책은 ‘권장’, 책임은 ‘개인’…엇갈린 메시지
정부는 체험학습을 교육의 일부로 강조하며 확대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체험학습 기회 보장을 강조하며 안전 인력 보강과 지원 확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러한 메시지가 충분히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명확하다. 정책은 체험학습을 ‘권장’하지만, 사고 발생 시 책임은 여전히 교사 개인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 구조 속에서 교사들은 정책과 현실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다. 교육적으로는 필요하지만, 법적·행정적으로는 위험한 활동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포기할 것인가의 문제다.
결국 지금의 갈등은 단순한 의견 충돌이 아니라, “권한과 책임이 분리된 구조에서 발생한 필연적인 충돌”이라고 볼 수 있다.

사라지는 현장학습, 바뀌는 학교의 본질
‘리스크 회피 조직’이 된 학교…교육보다 안전이 우선된 구조
체험학습의 축소는 단순한 프로그램 변화가 아니다. 이는 학교가 어떤 기준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다.
과거 학교는 교육적 필요를 중심으로 의사결정을 내렸다. 학생들에게 어떤 경험이 필요한지 어떤 활동이 성장에 도움이 되는지가 기준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현재 학교의 판단 기준은 점점 ‘안전’과 ‘책임 회피’로 이동하고 있다. 사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존재하는 활동은 축소되거나 배제되고 그 결과 체험학습은 가장 먼저 사라지는 영역이 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다. 학교는 더 이상 교육 중심 조직이 아니라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하는 관리 조직으로 재편되고 있다.
사라지는 경험, 줄어드는 교육…학생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체험학습은 교실 수업으로 대체할 수 없는 교육적 가치를 지닌다. 낯선 환경의 경험, 친구들과의 협력, 예기치 못한 상황의 문제 해결은 교과서로는 배울 수 없는 영역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회가 줄어들면서 학생들이 경험하는 교육의 폭 역시 좁아지고 있다. 학교는 더 안전해졌을지 모르지만, 그만큼 덜 경험하는 공간으로 변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변화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고착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체험학습이 사라진 자리는 쉽게 다시 채워지지 않는다. 한 번 멈춘 활동은 제도와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지속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 벌어지고 있는 변화는 단순한 행사 축소가 아니라 학생들이 경험할 수 있는 교육의 범위 자체가 줄어드는 과정이다.
사라진 것은 여행이 아니라 ‘책임의 균형’이다
이번 논란은 단순히 수학여행을 갈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표면적으로는 체험학습이 줄어든 현상이지만, 그 이면에는 교육과 책임 사이의 균형이 무너진 구조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이 촉발한 갈등 역시 본질은 같다.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정책적 시선과 책임을 감당할 수 없다는 현장의 인식이 충돌하는 것이다. 이 간극이 해소하지 않는 한 체험학습 축소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학교는 지금 더 안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학생들이 경험할 수 있는 교육의 범위가 줄어들고 있다면 이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체험학습을 늘릴지 줄일지를 논의하는 것이 아니다. 교사가 교육 활동을 수행하면서도 법적·행정적 부담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 답이 마련되지 않는 한 사라지는 것은 수학여행이 아니라 학교가 교육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