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를 없애자 시야가 넓어졌다…KAIST, 카메라 패러다임을 뒤집다

더 선명하게 더 넓게 담기 위해 렌즈를 쌓아 올린 결과다. 하지만 이 단순한 방식은 오래된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얇게 만들면 해상도가 떨어지고 해상도를 높이면 두께가 두꺼워지는 구조적 딜레마다.
이 딜레마를 깨기 위해 한국 연구진이 전혀 다른 접근을 꺼내 들었다. 렌즈를 더 쌓는 대신 아예 ‘보는 방식’을 바꿨다.
하나의 렌즈로 전체를 담는 대신 여러 개의 작은 시각 단위로 장면을 나눠 찍고 이를 다시 하나의 영상으로 통합하는 방식이다.
한국과학기술원 연구팀은 이 원리를 적용해 두께 1mm 이하의 초박형 구조에서도 140도에 달하는 넓은 시야각과 고해상도를 동시에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 카메라가 피할 수 없던 ‘두께와 성능의 교환관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셈이다. 이번 기술의 핵심은 단순한 광학 개선이 아니다.
카메라를 더 정교한 렌즈의 집합이 아닌 ‘정보를 재구성하는 시스템’으로 재정의한 데 있다. 이는 카메라 기술이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 계산과 구조의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이제 질문은 단순해진다. 카메라는 더 얇아질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를 바꿀 수 있는가다.
렌즈를 줄인 게 아니라, 시각 방식을 바꿨다
단일렌즈 vs 겹눈…카메라의 구조적 한계
지금까지 카메라 기술은 하나의 축 위에서 진화해 왔다. 더 좋은 렌즈, 더 많은 렌즈, 더 정교한 광학 설계. 문제는 이 방식이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었다는 점이다.
단일렌즈 기반 카메라는 높은 해상도를 확보할 수 있지만 시야가 제한된다. 반대로 곤충의 겹눈처럼 다수의 시각 단위를 활용하면 넓은 시야를 얻을 수 있지만 해상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결국 ‘넓게 보거나 선명하게 보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구조였다. 이 때문에 스마트폰 카메라는 점점 두꺼워졌다.
광각, 초광각, 망원 렌즈를 여러 개 쌓아 각각의 역할을 나누는 방식으로 한계를 보완해 왔지만, 그 대가는 ‘카툭튀’로 불리는 물리적 돌출이었다.
얇은 기기와 고성능 카메라는 동시에 존재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여겨졌다. 이 구조적 문제는 단순한 설계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렌즈가 하나의 장면을 책임지는 방식’ 자체의 한계였다.

제노스 페키의 눈…‘나눠 보고 합치는’ 구조
이 지점에서 연구진이 주목한 것은 특이한 곤충 하나였다. 바로 제노스 페키다. 이 곤충은 일반적인 겹눈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본다. 각각의 시각 단위가 독립적으로 장면 일부를 촬영하고 이를 뇌에서 하나의 이미지로 재구성한다.
단순히 많은 눈으로 넓게 보는 것이 아니라 ‘부분을 나눠 본 뒤 통합하는 방식’으로 해상도와 시야를 동시에 확보하는 구조다.
연구진은 이 원리를 그대로 카메라에 옮겼다. 하나의 렌즈가 전체 장면을 책임지는 대신, 여러 개의 작은 렌즈가 각기 다른 방향을 동시에 촬영하고, 이후 이를 하나의 고해상도 영상으로 합쳐내는 방식이다.
이 접근은 기존의 광학 설계와는 출발점 자체가 다르다. 렌즈를 더 정밀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어떻게 수집하고 재구성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전환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연구진은 두께 1mm 이하라는 극단적으로 얇은 구조에서도 140도의 넓은 시야와 고해상도를 동시에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 카메라 기술이 수십 년간 벗어나지 못했던 트레이드오프를 우회한 것이다.
0.94mm 안에 담긴 ‘분산 시각 시스템’
마이크로 렌즈 배열…각기 다른 방향을 동시에 본다
이번 기술의 핵심은 ‘여러 개의 눈’이라는 개념을 실제 장치로 구현한 데 있다. 연구진은 하나의 큰 렌즈 대신, 극도로 작은 마이크로 렌즈들을 배열 형태로 배치했다.
각각의 렌즈는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있으며, 동시에 장면을 분할 촬영한다. 이 구조는 단순한 다중 카메라와는 다르다.
스마트폰처럼 여러 개의 렌즈가 각각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렌즈가 하나의 장면을 나눠서 동시에 담당하는 구조다.
즉, 시야를 분산시키고 다시 통합하기 위한 설계다. 특히 렌즈의 배치와 각도는 매우 정교하게 설계됐다.
각 렌즈가 겹치지 않으면서도 빈틈 없이 장면을 커버하도록 공간적으로 오프셋된 배열(spatially offset structure)이 적용됐다. 이 덕분에 전체 시야는 넓게 유지하면서도 정보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전체 두께 0.94mm라는 극단적인 초박형 구조에서도 사람의 시야를 뛰어넘는 140도의 대각 시야각이 확보됐다. 기존 광각 카메라가 두께 증가를 대가로 얻던 성능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달성한 것이다.
계산으로 완성되는 이미지…카메라는 ‘연산 장치’가 됐다
하지만 이 구조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나뉘어 촬영된 이미지들을 하나로 정확하게 결합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계산 영상(Computational Imaging)’이다. 각 렌즈가 촬영한 부분 이미지들은 그대로는 완전한 장면이 아니다.
이 조각들을 정밀하게 붙이고(stitching), 왜곡을 보정해 경계 부분의 불연속성을 제거해야 비로소 하나의 자연스러운 이미지가 된다.
연구진은 이 과정에서 픽셀 단위의 정밀도를 확보했다. 서로 다른 시점에서 촬영된 이미지를 결합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차를 약 1픽셀 수준으로 억제하며 화면 중심뿐 아니라 주변부까지 균일한 해상도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이 지점에서 카메라의 정의는 완전히 달라진다. 더 이상 렌즈가 모두 결정하는 장치가 아니라 ‘촬영된 정보를 어떻게 재구성하느냐’가 성능을 좌우하는 시스템으로 바뀐다.
결국 이 카메라는 광학 장치이면서 동시에 연산 장치다. 얇아진 구조는 단순한 소형화의 결과가 아니라, 광학과 계산의 역할을 재배치한 결과다.

카툭튀가 사라지면, 산업 구조가 바뀐다
스마트폰을 넘어…‘형태’를 바꾸는 카메라
카메라 기술의 변화는 단순한 성능 개선으로 끝나지 않는다. 기기의 ‘형태’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스마트폰 디자인은 카메라에 의해 제약받아 왔다.
더 좋은 사진을 위해 더 큰 센서와 더 많은 렌즈가 필요했고 그 결과 기기 후면의 돌출 구조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됐다. 이른바 ‘카툭튀’는 기술적 타협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두께 1mm 이하의 초박형 광시야 카메라가 현실화한다면 이 전제 자체가 무너진다. 고성능 카메라를 유지하면서도 완전히 평평한 디자인이 가능해진다.
단순한 미적 변화가 아니라, 디바이스 설계의 기준 자체가 바뀌는 순간이다. 변화는 스마트폰에만 그치지 않는다.
안경형 디바이스, 웨어러블 헬스케어 기기, AR/VR 장비처럼 공간 제약이 큰 영역에서는 더욱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카메라가 작아질수록 기기는 더 가벼워지고 더 오래 착용할 수 있으며, 더 다양한 형태로 확장된다. 결국 이 기술은 ‘좋은 카메라’가 아니라 ‘카메라를 어디까지 넣을 수 있는가’를 바꾸는 기술이다.
의료·로봇…‘들어갈 수 있는 카메라’의 시대
이 변화가 가장 강하게 작용하는 영역은 의료와 로봇 분야다. 특히 내시경은 카메라 크기가 곧 침습성으로 이어지는 분야다. 장비가 작아질수록 환자의 부담은 줄어들고,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은 넓어진다.
초박형 구조와 넓은 시야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은 진단 정확도와 안전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는 조건이 된다. 미세 로봇 분야에서도 의미는 크다.
지금까지 초소형 로봇은 시각 확보가 가장 큰 제약이었다. 카메라를 넣으면 크기가 커지고 크기를 줄이면 시야가 제한되는 문제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구조는 작은 공간에서도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게 만들며 로봇의 ‘눈’ 자체를 근본적으로 개선한다. 산업용 머신비전 역시 마찬가지다.
좁은 공간, 복잡한 구조물 내부, 혹은 이동이 제한된 환경에서도 안정적인 영상 확보가 가능해지면서 적용 범위가 크게 확장될 수 있다.
이 기술은 결국 카메라의 성능을 높인 것이 아니라 카메라가 ‘들어갈 수 있는 영역’을 넓힌 것이다.
카메라는 더 이상 렌즈가 아니다
렌즈를 더 정밀하게 만드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잘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다. 한국과학기술원 연구진이 제시한 초박형 광시야 카메라는 그 전환점에 서 있다.
하나의 렌즈로 세상을 담던 방식에서 벗어나 여러 시각 정보를 나눠 받아 계산으로 재구성하는 새로운 체계를 현실화했다.
이 변화는 단순한 기술 진보가 아니다. 카메라를 광학 장치에서 정보 처리 시스템으로 바꾸는, 패러다임의 이동이다.
더 얇아지고 더 넓게 보고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카메라. 그 끝에서 남는 질문은 하나다. 카메라는 어디까지 작아질 수 있는가가 아니라 세상을 어디까지 다시 볼 수 있는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