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카르멘은 누구인가 — 주거권이 무너지면 민주주의도 무너진다
-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70년 넘게 살던 87세 장애인 여성 마리카르멘 아바스칼이 들것에 실려 퇴거당한 장면은 한 도시의 비극을 넘어 자본주의 주거 체제의 자화상이다.
- “집은 거주지인가, 투기 상품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우리는 이제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 1) 70년의 집, 30분의 퇴거 마리카르멘은 1956년 아버지가 임대차 계약을 시작한 마드리드 레티로 지구 아파트에서 약 70~71년을 살았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70년 넘게 살던 87세 장애인 여성 마리카르멘 아바스칼이 들것에 실려 퇴거당한 장면은 한 도시의 비극을 넘어 자본주의 주거 체제의 자화상이다. “집은 거주지인가, 투기 상품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우리는 이제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1) 70년의 집, 30분의 퇴거
마리카르멘은 1956년 아버지가 임대차 계약을 시작한 마드리드 레티로 지구 아파트에서 약 70~71년을 살았다. 건물을 매입한 투자 기업이 월세를 약 500유로에서 2,650유로로 약 275% 올렸고, 수년간의 소송 끝에 대법원이 집주인 손을 들어주면서 2026년 9월 23일 퇴거가 집행됐다. 경찰이 문을 부순 뒤 그는 30분만 주어지고 필수품만 챙긴 채 들것에 실려 구급차로 이송됐다.

70년의 삶을 30분의 퇴거 시간으로 압축하는 체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단순한 임대료 분쟁이 아니라, 주거를 금융상품으로 재편하는 지대 자본주의의 일상적 폭력이다.
2) “Yo soy Maricarmen” — 개인이 아닌 체제에 대한 고발
사건 이틀 뒤인 9월 26일 마드리드에서는 수만 명이 행진했고,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는 100~150개의 텐트가 들어섰다. 시위대는 “대안 주거 없이는 퇴거 금지”, “임대료 동결”, “투기 펀드는 물러가라”를 외쳤다. “내가 마리카르멘이다”(Yo soy Maricarmen), “더 이상 마리카르멘은 없다”(Ni una más Maricarmen)는 구호는 사건을 개인의 불행이 아닌 체제 문제로 확장하는 프레임을 보여준다.
이는 유럽과 미국에서 주택 문제가 급진 좌파의 핵심 의제로 부상한 흐름과도 연결된다. 뉴욕의 조란 맘다니, 베를린의 좌파당 등이 부유한 북반구 도시에서 주거권을 최전선 과제로 내세우며 지지 기반을 넓힌 배경도 유사하다.
3) 기성 정치의 실패: 진보는 어디로 갔는가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사건 당일 이를 “용납할 수 없는 비극”이라고 규탄했으나, 시위대는 기성 정당의 주거 정책 실패를 지적하며 “진보는 어디로 갔는가”, “보수와 극우는 주택 문제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식의 기성 정치 비판을 동시에 내놓았다. 이는 정당 이념을 넘어선 주거권 정치의 출현을 의미한다.
4) 한국에도 경고음: 글로벌 자본이 잠식하는 임대주택 시장
한국에서도 블랙록 등 글로벌 자산운용사와 국내 기관자금이 오피스텔·다세대·연립 등 임대주택 매입을 확대하면서 “임대료 상품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수도권과 대도시에서 전세·월세 시장이 금융상품처럼 취급될 경우, 스페인과 유사하게 사회적 약자가 주거 불안에 직면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스페인 청년들이 외친 “임대 경제가 무너지거나, 정부가 무너져야 한다”는 구호는 한국에서도 주거권 담론을 재점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집이 거주지가 아니라 투기 상품이 될 때, 가난한 자들은 길거리에 쫓겨날 수밖에 없다는 마리카르멘의 운명은 한국 도시의 일상적 정치가 됐다.
5) 주거권이 무너지면 민주주의도 무너진다
주거권은 단순한 복지 이슈가 아니다. 주거권이 무너지면 민주주의도 무너진다. 대안 주거 없는 퇴거 금지, 임대료 상한과 세입자 보호, 투기 자본 규제, 공공성 회복 — 이 네 가지 축이 한국형 주거기본권 법제화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마리카르멘은 누구인가. 그는 70년 살던 집에서 들것에 실려 퇴거당한 한 노인이자, 동시에 주거권 체제가 무너질 때 누구든 될 수 있는 우리 모두의 이름이다. “더 이상 마리카르멘은 없다”는 구호는 이제 한국에서도 들려야 한다.
팩트박스
인물: María del Carmen Abascal(마리아 델 카르멘 아바스칼), 통칭 Maricarmen, 87세, 휠체어 사용자.
거주 기간: 약 70~71년(1956년 임대차 시작).
임대료 인상: 약 500유로 → 2,650유로(약 275% 인상).
퇴거일: 2026년 9월 23일(수), 마드리드 레티로 지구.
시위: 9월 26일(토) 대규모 행진, 26~27일 푸에르타 델 솔 텐트촌(100~150개).
요구: 임대료 동결, 세입자 보호, 대안 주거 없는 퇴거 금지, 투기 펀드 규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