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자산인가 삶의 터전인가…마리카르멘 퇴거가 한국에도 던지는 질문
- 마드리드 퇴거가 전국 시위로 번진 이유…임대료·세입자 보호·공공주택을 둘러싼 스페인의 구조적 위기
- 1956년부터 살아온 집에서 퇴거된 고령 여성…임대료 상승과 부족한 사회주택이 드러낸 제도의 빈틈
- 10,000명 거리 시위와 솔 광장 텐트촌…취약계층 퇴거와 임대시장 안정 사이 해법은
71년 살던 집에서 들것에 실려…마리카르멘 사건이 묻는 ‘주거권의 경계’
마드리드 레티로 지구의 한 아파트에서 2026년 9월 23일, 87세 여성 마리아 델 카르멘 아바스칼, 이른바 ‘마리카르멘’이 들것에 누운 채 집 밖으로 나왔다. 구급차는 그녀를 병원으로 옮겼다. 1956년부터 살아온 집과의 71년 인연도 이날 사실상 끝났다. 현장에는 퇴거를 막으려는 주민과 활동가 수백 명이 모였다.

한 고령 세입자의 퇴거는 며칠 만에 스페인 주거위기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번졌다. 그러나 이 사건을 단순히 ‘투기자본 대 세입자’라는 구도로만 보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법원이 인정한 소유자의 재산권과 계약관계, 취약계층의 주거권, 부족한 사회주택, 급등한 시장 임대료가 한꺼번에 충돌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1956년 시작된 거주, 2018년부터 법정 다툼
마리카르멘의 가족은 1950년대부터 이 집에서 살았다. 전환점은 2018년이었다. 부동산 회사가 주택을 취득한 뒤 장기간 유지돼 온 이른바 ‘구(舊)임대료 계약’의 승계 여부를 놓고 법적 분쟁이 시작됐다.
2026년 3월 스페인 대법원은 임대계약 승계에 관한 법률 요건을 근거로 소유주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보도에 따르면 장애 정도가 65%를 넘으면 예외적으로 계약 승계가 가능했지만 마리카르멘이 공식 인정받은 장애율은 50%였다. 법적으로 집행 가능한 퇴거였다는 점은 이 사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시장 임대료와 마리카르멘의 지불 능력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었다. 그녀는 기존에 월 440~500유로 수준을 부담해 왔으며, 소유주는 한때 2,650유로를 요구한 뒤 1,650유로를 제시한 것으로 보도됐다. 440유로에서 1,650유로라면 약 275% 오른 금액이다. 마리카르멘의 연금은 월 1,300~1,450유로 수준으로 보도돼 새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퇴거 직전에는 익명의 기부자가 임대료 차액과 채무까지 부담하겠다고 제안했고 스페인 주택부도 중재에 나섰지만 합의는 성사되지 않았다. 마드리드시는 긴급 거주시설을 제안했다고 밝혔지만 마리카르멘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가족과 지내기로 했다. 정부·지방정부·민간의 중재가 있었지만 ‘기존 집에서 계속 거주’라는 당사자의 요구와 접점을 찾지 못한 것이다.
10,000명 거리로…한 사람의 퇴거가 사회문제로
사회적 반응은 컸다. 퇴거 당일 마드리드에서는 스페인 정부대표부 추산 약 10,000명이 집회에 참여했다. 참가자들은 중앙정부뿐 아니라 마드리드 자치정부와 시정부의 주거정책도 비판했다. 이후 세입자단체는 스페인 12개 도시에서 긴급 집회를 조직했다.
2026년 9월 26일에는 다시 수천 명이 마드리드 도심을 행진했고 푸에르타 델 솔에는 시위대의 텐트촌이 만들어졌다. 다음 날 약 150개의 텐트가 설치된 것으로 보도됐다. 유럽 20여 개국에서 온 주거권 활동가 약 200명도 관련 행동에 합류했다.
다만 집회 참가 인원은 출처에 따라 차이가 크다. 주최 측은 9월 26일 집회 참가자를 300,000명 이상이라고 주장했지만 독립적으로 확인된 공식 추산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주최 측 주장과 언론·당국의 추산은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마리카르멘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닌 이유
통계는 사건 뒤에 놓인 구조적 압력을 보여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스페인에서 2022~2024년 신규 주택 건설허가가 약 345,000건에 그친 반면 신규 가구는 약 604,000가구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스페인 중앙은행 추정을 인용한 OECD 자료에 따르면 2022~2025년 주택 공급 부족 규모는 약 600,000호다. 사회임대주택 역시 전체 주택 재고의 약 3%에 불과해 OECD와 유럽연합(EU)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다.
주거비 부담은 특히 젊은층과 저소득층에서 두드러진다. 스페인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25년 26~34세의 44.3%가 부모와 함께 살았다. 이 가운데 47.3%는 주택을 사거나 빌릴 경제적 여력이 없는 점을 주된 이유로 들었다. 집을 구했지만 이사하지 못한 사람 가운데 약 70%는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이유로 꼽았다.
퇴거 역시 일부 개인만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 스페인 사법총평의회에 따르면 2025년 1분기 전국에서 집행된 명도·퇴거는 7,334건이었으며, 이 가운데 임대차법 관련 사건은 5,644건으로 76.95%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마드리드에서는 702건이 집행됐고 임대차 관련 사건은 614건이었다.
다만 이 통계에는 여러 유형의 부동산이 포함될 수 있기 때문에 7,334건 전체를 곧바로 ‘주거 세입자가 거리로 내몰린 사례’로 해석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규제냐 공급이냐…해법은 하나가 아니다
스페인은 이미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세입자 보호장치를 강화하고 있다. 2026년 관련 법령은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취약가구에 대한 퇴거 중단 조치를 2026년 12월 31일까지 연장했다. 국가 차원의 주택정책 역시 퇴거·노숙·주거비상 상태에 놓인 취약계층을 위한 대체주거 지원을 주요 과제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세입자 보호와 임대료 규제만으로 공급 부족까지 해결할 수 있는지는 논쟁적인 문제다. OECD는 수요가 강한 지역에서 주택 공급을 가로막는 병목을 해소하고 토지개발 절차를 개선하는 동시에 사회주택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결국 세입자 보호와 공급 확대를 서로 대립하는 정책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의미다.

마리카르멘 사건이 드러낸 핵심도 여기에 있다. 법적으로 유효한 퇴거가 사회적으로 취약한 사람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결과를 가져올 때 누가, 어느 단계에서 주거 안전망을 작동시킬 것인가라는 문제다.
단기적으로는 고령자·장애인 등 취약계층에 대한 퇴거 결정이 실제 집행되기 전에 복지기관과 사법기관이 연계해 대체주거를 확보하는 절차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법률지원과 긴급 주거지원도 퇴거 직전에야 가동되는 방식에서 벗어나 조기에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사회·공공임대주택 확대와 취약계층 임대료 지원, 수요가 집중되는 지역의 주택 공급 확대를 병행할 필요가 있다. 대규모 임대사업자의 주택 거래와 임대료 변화를 보다 투명하게 파악할 수 있는 통계와 정보공개 체계를 갖추는 것도 과제다.
한국에도 던지는 질문…집은 자산인가, 삶의 터전인가
한국에도 이번 사건이 주는 시사점은 있다. 다만 스페인 사례를 한국에 그대로 대입해서는 안 된다. 두 나라는 임대차 제도와 주택 소유구조, 공공임대 비중이 다르고 한국에는 전세라는 독특한 임대차 방식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외 투자자나 특정 기업이 한국 임대주택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는 식으로 충분한 통계적 근거 없이 단정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특정 기업이나 자본을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이 아니라 주택이 투자자산으로 활용되는 시장 구조와 세입자의 안정적인 거주권 사이에서 제도가 어떤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지 살펴보는 일이다.
마리카르멘 사건은 재산권과 주거권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단순한 질문으로 환원하기 어렵다. 계약과 재산권의 안정성은 유지돼야 하지만 고령자와 장애인 등 취약계층이 퇴거와 동시에 주거 기반을 잃는 상황을 막을 사회적 안전망 역시 필요하다.
고령화와 도시 주택가격 상승이 동시에 진행되는 사회에서 비슷한 문제는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법원 판결이 끝나는 지점에서 사회정책의 역할은 어디서 시작돼야 하는가. 그리고 집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자산인 동시에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라는 두 성격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71년 동안 한집에서 살아온 87세 여성의 퇴거가 스페인 사회에 남긴 것은 어느 한 정파의 구호보다 더 오래된 질문이다. 누구나 결국 집을 떠날 수 있지만, 사회적으로 취약한 사람이 갈 곳 없이 집에서 밀려나는 상황을 막기 위해 국가는 어떤 안전망을 갖춰야 하는가. 마리카르멘 사건은 그 질문을 다시 주거정책의 중심에 올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