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게 두거나 세게 때리거나”…트럼프의 이란전, 군사전에서 ‘경제 소모전’으로 옮겨가나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공개된 보수성향 매체 리얼 아메리카스 보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란과 어느 정도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면서도 이란을 “매우 교활한 협상가들”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미국이 지금과 같은 압박을 계속하면서 이란 경제가 얼마나 더 악화하는지를 지켜볼 수 있다고 말했다.
동시에 다른 선택지로 이란을 “정말, 정말 강하게 타격하는 것”도 거론했다. 미국이 협상을 이어가면서도 추가 군사행동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번 발언을 기존의 대이란 최대압박 정책을 반복한 것으로만 보기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은 이미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고 미국 역시 상당한 군사적·경제적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이란의 군사력과 경제에 큰 타격을 입혔음에도 정권은 무너지지 않았고 핵과 미사일, 호르무즈해협을 둘러싼 핵심 쟁점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트럼프가 언급한 두 선택지는 미국이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전쟁을 단기간에 끝내는 단계에서 벗어나, 이란이 버틸 수 있는 시간과 미국이 감당할 수 있는 비용 가운데 어느 쪽이 먼저 한계에 도달하는지를 겨루는 장기 소모전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내가 그들의 은행가다”…트럼프가 돈을 전면에 꺼낸 이유
트럼프는 이번 인터뷰에서 이란의 동결자산을 특히 강조했다. 이란이 많은 돈을 가지고 있었지만 미국이 이를 통제하고 있다며 자신을 사실상 이란의 ‘은행가’라고 표현했다.
이 발언에는 현재 미·이란 협상의 핵심이 압축돼 있다. 이란은 오래전부터 해외에 묶여 있는 원유 판매대금과 금융자산에 대한 접근권 회복을 요구해왔다.
지난 6월 협상에서도 양측이 가장 첨예하게 맞선 문제 가운데 하나가 동결자산이었다.
로이터에 따르면 당시 이란은 우선 60억~120억달러 규모의 동결자산을 풀어줄 것을 요구했고 미국은 자금을 이란 정부에 직접 넘기기보다 식량과 의약품 등 인도적 물품 구입에 단계적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양측이 체결했던 양해각서에도 미국이 이란의 동결 또는 제한된 자산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지만 실제 해제 방식은 추가 협상 대상으로 남았다.
이란 정부가 공개한 문서에도 동결자산 반환 절차를 양측이 별도로 협의하도록 명시돼 있다. 따라서 트럼프의 ‘은행가’ 발언은 단순한 과장이 아니다.
미국이 이란 경제에 제공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보상 가운데 하나가 바로 동결자산에 대한 접근권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를 뒤집으면 미국이 이란에 가할 수 있는 압박 역시 같은 곳에서 나온다. 돈을 풀어주지 않고 원유 수출과 금융거래까지 제한하면 이란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외화가 줄어든다.
이미 시작된 ‘경제적 분노’…이란의 돈줄을 막는다
미국 재무부는 이미 이 전략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미 정부는 올해 대이란 경제제재 강화작전을 ‘경제적 분노(Economic Fury)’라고 이름 붙이고 이란의 원유 판매와 그림자 금융망, 군사조달 네트워크를 집중적으로 제재해왔다.
미 재무부는 5월까지 이 작전을 통해 수십억달러 규모의 예상 원유수입을 차단하고 정권과 연계된 암호화폐 약 5억달러를 동결했으며 이란의 비공식 금융망을 겨냥했다고 밝혔다.
재무부는 이란혁명수비대(IRGC)의 원유 판매망과 무기·무인기 부품 조달업체도 잇따라 제재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최대압박을 재개한 이후 1000개가 넘는 개인과 기업, 선박, 항공기 등이 제재 대상에 올랐다는 것이 미국 측 설명이다.
경제압박의 목적은 단순하다. 이란이 전쟁을 계속하고 군과 혁명수비대, 미사일·드론 프로그램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돈을 줄이는 것이다.
트럼프가 이란을 “돈을 빌릴 수도 없는 상태”라고 표현한 것도 이런 전략적 목표와 연결된다. 다만 경제제재가 곧바로 정권 붕괴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이란은 수십년간 미국과 서방의 제재를 받아왔고 중국 등을 통한 우회 수출과 비공식 금융망을 구축해왔다.
장기간 제재가 이란 경제성장과 투자, 교역에 상당한 충격을 줬다는 연구는 많지만 경제적 고통이 자동적으로 정치적 항복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과거 경험이 보여준다.
경제 압박은 ‘빠른 승리’가 아니라 시간을 이용하는 전략
미국이 경제적 압박을 다시 강조하는 것은 군사행동보다 결과가 빠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제재는 효과가 나타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원유 수출이 줄고 외화가 부족해지면 리알화 가치가 떨어지고 물가가 올라간다. 정부 재정과 군비 지출에도 부담이 커진다. 그러나 이런 압력은 수개월 또는 수년에 걸쳐 누적된다.
트럼프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하면서 얼마나 나쁜 상황에 처하는지 보겠다”고 말한 것은 미국이 이란과의 전쟁에서 시간 자체를 압박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미국 입장에서는 경제 규모와 금융 영향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갖고 있다. 이란이 전쟁을 계속할수록 경제와 군사재정의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계산이다.
반면 이란은 미국이 장기전의 비용과 국내 정치적 부담을 얼마나 오래 견딜 수 있는지를 시험할 수 있다.
양국 모두 상대방의 체력이 먼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미국도 무한정 미사일을 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가 경제전략을 강조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미군 탄약 문제다.
로이터는 최근 미국 육군이 이란전에서 장거리 정밀유도 미사일 재고의 대부분을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육군전술미사일체계(ATACMS)와 차세대 정밀타격미사일(PrSM) 등 일부 장거리 정밀무기의 비축량이 크게 줄었다.
패트리엇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요격탄도 상당량 사용된 것으로 전해졌다.
AP 역시 미 국방부가 주요 방산업체에 생산속도를 대폭 높일 방안을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란전이 5개월 이상 이어지면서 정밀타격무기뿐 아니라 미군과 동맹국을 보호하기 위한 방공탄 재고까지 부담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전략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장거리 정밀미사일이 부족해지면 적의 방공망 밖에서 안전하게 공격할 수 있는 선택지가 줄어든다.
같은 목표를 공격하기 위해 유인 전투기나 폭격기를 더 가까이 투입해야 한다면 조종사와 항공기의 위험도 높아진다.
무엇보다 미국은 이란만 상대하는 국가가 아니다. 중국과 러시아, 북한을 비롯한 다른 잠재적 분쟁에 대비한 탄약도 유지해야 한다.
이란전에서 너무 많은 정밀무기를 사용하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군사적 대비태세에 부담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우려를 공개적으로 부인했다. 그는 미국의 탄약 상태는 괜찮으며 방산업체들이 빠른 속도로 생산을 늘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6일에도 일부 무기의 재고가 줄고 있음을 인정하면서 패트리엇과 토마호크 등을 생산하는 새로운 시설과 증산계획을 강조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정치적 메시지와 군의 실제 보급 문제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미 국방부가 업체들을 상대로 생산기간을 단축하고 생산량을 늘리는 계획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현재 재고와 생산능력에 상당한 압력이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트럼프는 탄약 감소 원인의 상당 부분을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지원 탓으로 돌렸다.
그는 바이든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3000억달러 규모의 무기와 탄약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 국방부 공식 자료와는 큰 차이가 있다.
바이든 행정부 종료 직전인 2025년 1월 미 국방부가 집계한 우크라이나 안보지원액은 약 665억달러였다. 이 가운데 러시아의 전면 침공 이후 지원액은 약 659억달러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지원이 미국 탄약재고에 일정한 부담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3000억달러의 무기·탄약 지원으로 표현하는 것은 미국 정부의 공식 수치와 맞지 않는다.
군사적으로 이겼지만 정치적으로 끝내지 못한 전쟁
미국이 고민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군사력 부족만이 아니다. 수개월 동안 이란을 공격하면서 미국은 이란의 공군과 해군, 미사일·드론 관련 시설 등에 큰 피해를 입혔다.
미 중부사령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쟁 초기 몇 주 만에 미국은 수천차례의 타격을 수행하고 100척 이상의 이란 함정을 파괴하거나 손상시켰다.
하지만 군사적 우세가 곧 전략적 승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란 정권은 유지되고 있고 핵문제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호르무즈해협의 안정적 개방 문제도 여전히 협상 대상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이 막대한 공습과 군사적 성과를 거뒀지만 이란의 정치체제를 굴복시키거나 안정적인 전후질서를 만드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전쟁에서 목표물을 파괴하는 것과 상대방에게 원하는 정치적 결정을 내리게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바로 그 간극이 현재 트럼프가 다시 경제제재와 협상을 앞세우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트럼프의 ‘두 선택지’는 사실 하나의 협상전략이다
트럼프가 제시한 경제적 붕괴와 대규모 타격은 서로 완전히 다른 두 전략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의 협상구조 안에 놓여 있다.
미국은 경제적으로 이란을 압박하면서 협상에 나올 이유를 만든다. 동시에 협상이 실패하면 다시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위협을 유지한다.
경제제재가 채찍이라면 군사공격은 더 큰 채찍이다. 반대편에는 보상이 있다. 동결자산의 해제, 원유수출 허용, 금융제재 완화가 그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지난 6월 협상 과정에서 이란에 60일 동안 일부 제재를 면제하고 원유 판매와 대금 수령을 허용한 적도 있다. 따라서 현재 협상의 구조는 비교적 명확하다.
이란이 미국의 핵·안보 요구를 받아들이면 경제적 숨통을 틔워주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시 돈줄을 막는다.
그리고 그것으로도 변화가 없으면 군사옵션을 꺼내든다. 트럼프식 거래외교의 전형적인 구조다.
하지만 이란도 미국의 약점을 알고 있다
이 전략이 미국에만 유리한 것은 아니다. 이란 역시 미국이 전쟁을 무한정 지속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미군의 탄약소모가 커지고 있고 전쟁비용도 증가하고 있다.
호르무즈해협 불안은 국제유가를 자극해 미국 소비자들의 휘발유 가격과 물가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최근 중동 긴장이 다시 높아지면서 국제유가가 배럴당 90달러 부근까지 올라선 것도 트럼프 행정부에는 정치적 부담이다. 올해 11월에는 미국 중간선거도 예정돼 있다.
전쟁이 장기화되고 에너지 가격이 다시 상승하면 이란은 미국 국내 정치가 트럼프에게 더 큰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계산할 수 있다. 그래서 이란의 협상전략 역시 시간을 활용하는 방식에 가깝다.
미국은 이란 경제가 먼저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보고 있고, 이란은 미국이 전쟁비용과 국내 여론을 먼저 견디지 못할 수 있다고 보는 셈이다.
결국 싸움은 ‘누가 먼저 버티지 못하느냐’로 이동했다
트럼프의 이번 발언은 표면적으로 강경하다. 이란 경제가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거나 더 강하게 때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뒤에는 미국 역시 전쟁을 다른 방식으로 운영해야 하는 현실이 보인다. 정밀미사일과 방공요격탄은 무한하지 않다.
군사작전에는 막대한 돈이 들어가고 장기전은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다른 전략적 경쟁자에 대비할 군사자산까지 소모한다.
반면 경제제재는 미국이 가진 금융패권과 달러 시스템을 이용해 상대적으로 낮은 군사적 비용으로 지속할 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 대이란 전략의 중심은 공습 횟수보다 돈의 흐름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있다.
이란의 원유가 얼마나 팔리는지, 그 대금을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지, 해외 동결자산이 언제 풀리는지, 혁명수비대가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지가 전쟁의 또 다른 전선이 된다.
추가 군사공격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독립적인 목표라기보다 경제적 압박을 더 강하게 만드는 협상카드로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가 말한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경제적으로 무너지게 두거나, 아주 강하게 타격하는 것.”
하지만 미국이 실제로 원하는 결과는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데 있지 않다.
경제적으로 버티기 어려워진 이란이 두 번째 선택지가 현실화되기 전에 협상장에서 미국이 원하는 조건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미·이란 전쟁의 중심은 폭격의 규모에서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
누가 더 많은 미사일을 가지고 있느냐의 싸움에서 누가 더 오래 경제적·군사적 비용을 견딜 수 있느냐의 싸움으로 바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