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를 흔드는 ‘보이지 않는 빚’…제이미 다이먼이 숨은 레버리지를 경고한 이유
“레버리지가 상당히 높다.”

다이먼 CEO가 주목한 것은 은행의 부실대출이나 주택담보대출이 아니다. 주식 신용거래와 헤지펀드, 프라임브로커리지,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미국 국채 차익거래처럼 금융시장 내부에 복잡하게 쌓인 차입이다.
다이먼은 6일 CNBC 인터뷰에서 마진대출이 역사적 최고 수준에 올라 있으며 공식적으로 ‘마진대출’이라고 불리지 않는 형태의 레버리지도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높은 차입이 특정 펀드나 투자자의 손실을 강제청산으로 연결하고 그 매물이 다시 가격을 떨어뜨려 추가적인 마진콜을 부르는 구조를 경계했다.
다만 현 상황을 2008년과 같은 시스템 위기로 규정하는 데는 선을 그었다.
다이먼의 경고를 단순한 비관론으로 넘기기 어려운 이유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진단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연준은 지난 5월 금융안정보고서에서 헤지펀드의 레버리지가 통계 작성 이후 사실상 사상 최고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특히 대형 펀드에 집중돼 있다고 평가했다.
은행은 높은 자본비율을 유지하고 있지만 비은행 금융권의 차입과 국채·파생상품 거래는 금융시장의 중요한 취약점으로 남아 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부채의 절대 규모보다 연결 구조다.
평상시에는 서로 독립적으로 보이는 주식과 국채, 파생상품, 환매조건부채권(repo), ETF 시장이 변동성이 커지는 순간 하나의 레버리지 네트워크로 움직일 수 있다.
4조달러 국채 포지션…가장 안전한 자산에 숨어 있는 위험
숨은 레버리지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곳 가운데 하나는 뜻밖에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평가받는 미국 국채시장이다.
연준 분석에 따르면 대형 헤지펀드가 보유한 미국 국채 관련 총 익스포저는 2023년부터 2025년 9월까지 두 배로 증가해 약 4조달러에 이르렀다.
이 가운데 매수 포지션이 약 2조4000억달러, 매도 포지션이 1조6000억달러다. 더 중요한 숫자는 3조달러다.
헤지펀드가 국채 포지션을 유지하기 위해 repo 시장에서 빌린 자금 규모가 2025년 9월 약 3조달러까지 늘었다.
대형 헤지펀드의 국채 보유 비중도 전체 미 국채 시장의 약 8.5%까지 높아졌으며 상위 50개 펀드가 관련 익스포저의 약 90%를 차지하고 있다.
대표적인 전략이 ‘베이시스 트레이드’다. 헤지펀드는 현물 국채를 사고 동시에 국채 선물을 매도한다.
두 가격 사이의 매우 작은 차이가 줄어들 때 수익을 얻는다. 가격차가 작기 때문에 큰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막대한 돈을 빌려 투자 규모를 키워야 한다.
연준은 이러한 국채 현물·선물 베이시스 거래 규모를 2025년 9월 약 8300억달러로 추정했다. 2020년 코로나 충격 직전의 이전 최고치보다 거의 두 배다.
금리스와 국채 간 가격 차이를 이용하는 스왑스프레드 거래도 약 3050억달러로 추정됐다. 평상시에는 이 거래가 오히려 시장 효율성을 높인다.
현물과 선물의 가격 차이를 좁히고 국채시장의 유동성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변동성이 갑자기 커질 때 발생한다.
선물거래소가 증거금을 높이거나 repo 금리가 급등하면 헤지펀드는 추가 현금을 마련해야 한다. 자금이 부족하면 국채를 매도하고 선물 포지션을 정리한다.
여러 펀드가 동시에 움직이면 세계에서 가장 유동성이 높은 미 국채 시장에서도 매물이 쏟아질 수 있다.
2020년 3월 실제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코로나19 충격으로 투자자들이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국채까지 팔기 시작하자 헤지펀드의 베이시스 거래 청산이 겹쳤고 시장 유동성이 급격히 악화됐다.
결국 연준은 몇 주 동안 약 1조 6,000억달러의 국채를 매입하며 시장 안정에 개입했다.
IMF 역시 높은 레버리지의 베이시스 거래가 다시 급격히 청산될 경우 딜러들이 매물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해 국채시장의 기능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다이먼이 말한 ‘숨은 레버리지’의 위험은 바로 이런 구조를 가리킨다. 자산 자체는 안전해도 그 자산을 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빌렸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AI 펀드 67% 급락…‘한 펀드의 실패’가 보여준 강제청산의 구조
최근 월가가 긴장했던 사례가 AI 전문 헤지펀드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Situational Awareness)’다.
전 오픈AI 연구원 레오폴드 아셴브레너가 만든 이 펀드는 AI 관련 주식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며 급성장했지만, 지난 7월 포트폴리오 가치가 한 달 만에 67% 급락했다.
AI·반도체 주가 급락 속에 레버리지 포지션에서 마진콜이 발생하면서 대부분의 상장주식 포지션을 정리해야 했다. 펀드는 결국 레버리지를 없애고 일부 보유주식을 시타델에 매각했다.
다만 이 펀드가 완전히 붕괴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큰 손실에도 불구하고 연초 대비로는 여전히 수익을 기록했고 펀드 자체는 존속하고 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손실이 발생한 과정이다. AI 관련 종목의 가격이 떨어졌다. 담보가치가 낮아졌다. 프라임브로커가 추가 증거금을 요구했다.
펀드는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주식을 팔았다. 매물이 쏟아지면서 가격이 다시 떨어졌다. 전형적인 레버리지 청산의 악순환이다.
지난 7월 글로벌 헤지펀드들은 기술주 포지션 청산으로 약 3%의 수익을 반납했다. JP모건 자료에 따르면 헤지펀드의 전체 레버리지는 당시에도 최근 5년 기준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에 머물렀다.
특히 일부 퀀트 전략은 가정된 레버리지가 약 450%에 달했다. 이번에는 시장이 충격을 흡수했다.
시타델이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의 주식 포지션 상당 부분을 인수하면서 강제매도가 장기간 이어지는 것을 막았고 시타델은 오히려 해당 거래를 통해 큰 수익을 올렸다.
다이먼도 이 사례를 금융시스템이 개별 펀드의 실패를 감당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증거로 평가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위험도 보인다.
한 펀드가 아니라 여러 대형 펀드가 동시에 같은 거래를 하고 있다가 같은 방향으로 청산에 나선다면 누가 그 물량을 받아줄 것인가.
레버리지 문제에서 개별 펀드의 크기보다 ‘같은 포지션에 얼마나 많은 투자자가 몰려 있는가’가 중요한 이유다.

과거 레버리지는 주로 헤지펀드와 투자은행의 영역이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개인투자자도 레버리지 ETF를 통해 특정 지수나 단일 종목 움직임의 두 배, 세 배를 추종하는 상품에 손쉽게 투자할 수 있다.
FINRA는 이러한 레버리지·인버스 상품이 단기간 수익률을 목표로 설계돼 있으며 변동성이 큰 시장에서 장기간 보유할 경우 기초자산과 크게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는 분산효과까지 없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가 원래 주식보다 훨씬 큰 변동성을 만들 수 있으며 시장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광범위한 시장 위험을 증폭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해왔다.
올해 AI·반도체 주가가 급락하는 과정에서도 레버리지 기술주 ETF에서 대규모 디레버리징이 나타났다. 프라임브로커리지 역시 중요한 연결고리다.
헤지펀드는 JP모건이나 골드만삭스 같은 대형 은행의 프라임브로커를 통해 돈과 주식을 빌리고 파생상품을 거래한다. 정상적인 시장에서는 효율적으로 자본을 활용할 수 있지만, 변동성이 커지면 은행은 위험을 줄이기 위해 담보를 더 요구한다.
다이먼이 언급했듯 변동성이 상승하면 청산기관과 은행의 자연스러운 대응은 마진을 높이는 것이다.
개별 기관에는 합리적인 위험관리다. 그러나 모든 금융회사가 동시에 담보를 더 요구하면 시장 전체에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헤지펀드는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산을 팔고, 가격이 하락하면 다시 더 많은 담보를 요구받는다. 이 과정에서 초기 충격보다 훨씬 큰 가격 움직임이 발생할 수 있다.
레버리지의 위험은 돈을 빌리는 행위 자체보다 ‘모두가 동시에 돈을 갚아야 하는 순간’에 나타난다.
그렇다면 지금이 2008년 직전인가
여기서는 다이먼의 두 번째 메시지를 함께 봐야 한다. 그는 레버리지를 경고하면서도 현재 상황이 2008년 금융위기와 같다고 보지는 않았다.
연준의 판단도 비슷하다. 지난 5월 금융안정보고서에서 미국 은행들의 규제자본은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고 은행 시스템은 전반적으로 건전하고 회복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가계와 기업의 총부채도 국내총생산 대비 비율로 보면 2000년대 초 이후 낮은 수준까지 내려왔다. 2008년에는 주택가격 급락이라는 실제 자산 손실이 금융기관의 대규모 신용손실로 직결됐다. 은행들도 과도한 차입과 낮은 자본비율을 갖고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대형 은행의 직접 레버리지는 상대적으로 낮고 자본도 많다. 문제의 상당 부분이 헤지펀드와 사모신용, ETF, repo와 파생상품 등 비은행 금융으로 이동했다.
따라서 현재의 위험은 ‘은행이 줄줄이 파산하는 2008년형 위기’보다는 갑작스러운 시장 유동성 붕괴에 더 가깝다.
가격이 급락하면서 헤지펀드가 청산되고, 증거금이 급증하며, 딜러의 중개능력이 떨어져 시장이 일시적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형태다.
연준도 7월 통화정책 보고서에서 미국 금융시스템 전체는 여전히 건전하다고 평가하면서 동시에 높은 자산 밸류에이션과 헤지펀드 레버리지를 주요 위험요인으로 지목했다.
따라서 두 명제는 동시에 참일 수 있다. 미국 금융시스템은 2008년보다 튼튼하다. 그러나 시장 내부의 레버리지는 매우 높다.
더 위험한 조합은 ‘고평가 자산+레버리지+고금리’
다이먼의 경고가 더욱 주목받는 것은 금융시장의 현재 가격 수준 때문이다. 레버리지는 자산 가격이 안정적으로 오를 때는 수익을 확대한다. 문제는 높은 밸류에이션과 레버리지가 동시에 존재할 때다.
연준은 미국 주식의 예상이익 대비 가격 수준이 역사적으로 높은 범위에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AI 관련 종목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졌다.
투자자들이 같은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전력 관련 종목에 집중하면서 일부 헤지펀드와 퀀트펀드의 포지션이 겹쳤다.
가격이 상승하는 동안에는 서로의 매수가 상승을 강화하지만 방향이 바뀌면 모두가 같은 출구를 찾게 된다. 여기에 장기금리가 높은 수준에서 유지될 가능성도 있다.
다이먼은 미국의 막대한 재정적자와 인프라 투자, 세계 각국의 군비 증강이 구조적인 물가 상승 압력을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투자자들이 인플레이션 위험을 이유로 장기채 보유에 더 높은 보상을 요구하면 장기금리는 시장 예상보다 높은 수준에서 오래 머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레버리지 투자자에게 이중 부담이다. 돈을 빌리는 비용은 높아지고 높은 금리는 주식과 채권의 가치평가를 낮춘다.
금리가 상승하면서 자산가격이 하락하면 담보가치가 떨어지고 마진콜이 발생한다. 마진콜에 대응하기 위해 자산을 팔면 가격이 더 떨어진다.
다이먼이 걱정하는 것은 특정 사건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구조다.
가장 큰 위험은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모른다’는 것
금융시장은 2008년 이후 많은 규제를 도입했다. 은행의 자본비율은 높아졌고 대형 금융기관은 정기적으로 스트레스테스트를 받는다. 중앙청산과 파생상품 보고도 확대됐다.
하지만 위험도 이동했다. 대형 은행의 대차대조표 밖에서 헤지펀드와 사모펀드, ETF, repo 거래가 빠르게 커졌다.
특히 동일한 담보와 파생상품이 여러 거래에 연결돼 있으면 개별 금융회사가 자신의 위험은 파악해도 시장 전체 위험을 정확히 측정하기 어렵다.
연준 역시 헤지펀드의 국채 익스포저를 분석하면서 거래 단위의 정확한 포지션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데이터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숨은 레버리지’라는 표현의 핵심이다. 레버리지가 존재한다는 사실보다 누가 얼마나 빌렸고 어떤 담보를 사용하고 있으며 같은 자산을 얼마나 많은 기관이 동시에 보유하고 있는지 외부에서는 완전히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 자산가격이 오르고 변동성이 낮으면 담보 요구도 낮아지고 차입은 더욱 쉬워진다.
역설적으로 시장이 가장 안정적으로 보이는 시기에 레버리지가 가장 빠르게 쌓일 수 있다. 그리고 충격이 발생하면 숨겨져 있던 연결관계가 한꺼번에 드러난다.
다이먼의 경고는 ‘위기가 온다’보다 ‘충격이 커질 수 있다’에 가깝다
제이미 다이먼의 경고를 금융위기 예언으로 읽을 필요는 없다. 현재 미국 은행의 자본은 탄탄하고 가계부채와 기업부채에서도 2008년과 같은 광범위한 부실 징후는 나타나지 않는다.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가 한 달 만에 67%의 손실을 기록하고 대규모 포지션을 강제 정리했는데도 시장이 이를 흡수했다는 사실은 현재 금융시스템의 회복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바로 그 사례가 다른 사실도 보여줬다. 레버리지가 높으면 가격이 조금만 움직여도 투자자의 선택권이 사라진다. 팔고 싶어서 파는 것이 아니라 담보를 맞추기 위해 팔아야 한다.
그런 투자자가 한 명이면 시장은 받아낼 수 있다. 수십 개의 대형 펀드가 같은 거래에 몰려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특히 그 거래가 세계 금융시스템의 기준자산인 미국 국채에서 벌어진다면 충격은 주식시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 월가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다음 금융위기가 언제 오는가’가 아니다.
시장이 크게 흔들리는 순간 얼마나 많은 투자자가 동시에 자산을 팔아야 하는가.
다이먼이 경고하는 것은 위기의 날짜가 아니라 위기를 증폭시키는 장치다.
오늘의 금융시장에서 가장 위험한 부채는 반드시 가장 큰 부채가 아니다.
평상시에는 보이지 않다가 가격이 흔들리는 순간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내는 부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