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6-08-10 18:46 (월) 08.10 (월)
NEWS-G
[간건강 1회차]침묵의 장기, 6개월의 약속

[간건강 1회차]침묵의 장기, 6개월의 약속

간암 조기발견 3부작 첫번째

침묵의 장기는 왜 마흔의 가장을 먼저 데려가나

간(肝)은 좀처럼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다. 통증을 느끼는 신경이 표면에만 얇게 깔려 있어, 안에서 병이 자라도 겉으로는 멀쩡하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간을 ‘침묵의 장기’라 불렀다. 문제는 그 침묵이 깨질 무렵이면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숫자가 이 침묵의 값을 말해준다. 국가암등록통계 기준 간암의 5년 상대생존율은 2001~2005년 20.6%에서 2019~2023년 40.4%로 스무 해 사이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스무 해 만에 19.8%포인트가 오른 것인데, 이는 폐암·위암과 함께 생존율이 가장 크게 개선된 성적표다. 수술 기법이 정교해지고, 국소치료와 전신치료의 선택지가 넓어졌으며, 무엇보다 조기에 발견되는 환자가 늘어난 결과다.

그런데도 간암은 여전히 국내 암 사망 원인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빈도 암 가운데 폐암 다음으로 예후가 나쁘고, 전체 암 평균 생존율이 70%를 넘어선 오늘날에도 간암은 그 절반 수준에 머문다. 치료가 좋아졌다는 말과 여전히 많이 숨진다는 말이 동시에 사실인 것이다. 이 모순을 푸는 열쇠가 바로 ‘언제 발견하느냐’다.

1-2 아무 증상 없이 웃는 중년 가장의 실루엣과 그 안의 조용한 위험.png
아무 증상 없이 웃는 중년 가장의 실루엣과 그 안의 조용한 위험

더 아픈 대목은 간암이 데려가는 사람들의 나이다. 한창 경제활동을 하는 40·50대에서 간암은 암 사망률 1위에 오른다. 위암이나 대장암처럼 익숙한 이름의 암들을 제치고, 가장 왕성하게 일할 나이를 가장 많이 쓰러뜨리는 암이 간암이라는 뜻이다.

숫자 뒤에는 사람이 있다. 한 집안의 기둥이 무너지면 그 여파는 환자 한 사람에게 그치지 않는다. 배우자와 자녀의 삶, 부모 부양, 대출과 생계가 함께 흔들린다. 병원 복도에서 만난 오십 대 가장의 얼굴, 진단서를 손에 쥔 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그 표정을 기자는 오래 기억한다. 간암은 개인의 병인 동시에, 가정과 지역경제의 문제이기도 하다.

왜 이토록 늦게 발견될까. 간은 놀랄 만큼 참을성이 많은 장기다. 바이러스와 술, 지방과 약물로 조직의 상당 부분이 손상돼도 좀처럼 위험 신호를 내지 않는다. 초기 간암 역시 뚜렷한 증상을 거의 만들지 않는다. 통증, 이유 없는 체중 감소, 피부와 눈이 노래지는 황달 — 이런 신호가 나타났을 때는 병이 이미 상당히 진행된 뒤인 경우가 많다.

1-1 정상 간과 병든 간을 나란히 비교한 교육용 단면 일러스트.png
정상 간과 병든 간을 나란히 비교한 교육용 단면 일러스트

그래서 ‘증상이 없다’는 사실은 결코 안심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침묵이야말로 간암이 자라는 시간이다. 발견 시점의 무게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암이 간에만 머문 국한 병기에서 진단하면 5년 생존율이 60%를 넘고, 아주 초기인 1기라면 80%에 이르기도 한다. 그러나 병이 퍼진 말기에 이르면 생존율은 한 자릿수로 곤두박질친다. 같은 병인데 발견 시점 하나로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간암은 아무 데서나 갑자기 솟아나지 않는다. 대부분 만성 B형·C형 간염이나 간경변증이라는 ‘바탕’ 위에서 서서히 자란다. 특히 간경변증은 그 자체가 간암의 문턱에 가까운 상태로 여겨진다. 국내 간암의 배경 질환을 보면 오랫동안 B형간염이 60% 안팎으로 압도적이었고, 알코올과 C형간염이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위험의 지형은 지금 바뀌고 있다. 1980년대 이후 B형간염 예방접종이 자리 잡고 항바이러스 치료가 널리 보급되면서, B형간염이 원인인 간암 비중은 서서히 줄고 있다. 대신 그 자리를 새로운 위험이 채운다. 비만·당뇨·서구화된 식습관과 맞물린 대사이상 관련 지방간질환, 이른바 MASLD다. 과거 ‘비알코올성 지방간’으로 부르던 이 질환은 최근 국제적으로 이름과 진단 틀이 다시 정리되며 대사질환의 하나로 무게가 실렸다.

여기에 알코올성 간질환이 더해진다. 지방간을 ‘그저 살찐 간’ 정도로 가볍게 여기는 인식이 여전하지만, 지방간은 염증과 섬유화를 거쳐 간경변으로, 다시 간암으로 이어질 수 있는 통로다. B형간염 세대가 관리되는 사이, 지방간과 음주가 새로운 주력 위험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은 중장년이 특히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중장년은 여러 위험이 겹치기 쉬운 시기이기도 하다. 비만과 당뇨가 지방간을 키우고, 고혈압과 심혈관질환 같은 동반 질환이 하나둘 늘어난다. 이런 동반 질환은 훗날 간암이 발견됐을 때 치료 선택의 폭까지 좁힐 수 있다. 그래서 중장년의 건강관리는 혈당 따로, 체중 따로, 간 수치 따로가 아니라 하나의 그림으로 보는 편이 옳다.

1-3 스무 해 동안 두 배로 오른 간암 생존율 그래프가 있는 신문 지면.png
스무 해 동안 두 배로 오른 간암 생존율 그래프가 있는 신문 지면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스트레스나 운동 부족이 간암을 ‘직접’ 일으킨다는 근거는 확립돼 있지 않다. 흡연과 유전 위험도 간암에 관한 한 아직 단정하기 이르다. 근거 없는 공포를 파는 것은 언론의 일이 아니다. 다만 운동 부족과 비만은 지방간을 키우고, 지방간은 간암의 통로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생활 관리는 ‘간암을 낫게 하는 치료’가 아니라 ‘위험을 줄이는 준비’로 이해하는 편이 정확하다.

30년 넘게 사회부 현장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하나만 당부하고 싶다. 침묵의 장기를 상대할 때 기다림은 미덕이 아니다. 몸이 신호를 보낼 때까지 기다리는 순간, 우리는 이미 뒷북을 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만성 간질환을 가진 분이라면, 오늘의 멀쩡함을 건강의 증거로 착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다음 회에서는 그 ‘기다리지 않는 방법’, 즉 6개월 검진이 실제로 얼마나 많은 목숨을 살려냈는지 숫자로 짚어본다.

💡 이 기사를 15초 이상 읽으면 포인트가 적립됩니다  |  포인트 이벤트 1회
🎉
+1P 적립 완료!
읽기 포인트가 지급되었습니다

손은숙 기자
eunsougi@naver.com
다른기사 보기

0개의 댓글
로그인하면 댓글을 달 수 있습니다.
0 / 400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 대상을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경우 이용약관 및 관련법률에 의해 제재될 수 있습니다.
⊙ BEST댓글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