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명이 물에 갇혔다… 방글라데시가 반복해서 가장 큰 희생을 치르는 이유

남동부 차토그람주에는 26만 가구 이상이 물에 잠겼고 세계 최대 규모의 로힝야 난민촌이 있는 콕스바자르에서는 산사태가 잇따르며 어린이를 포함한 난민 16명이 목숨을 잃었다.
군 병력과 구조 인력이 투입됐지만 끊어진 도로와 침수된 마을, 두절된 통신망은 구조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계절성 몬순이 불러온 또 한 번의 홍수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시선을 넓혀 보면 이번 재난은 단순한 폭우 피해가 아니다.
기후변화가 키운 극한 강수, 세계에서 가장 취약한 지형, 높은 인구밀도, 난민 문제와 빈곤, 부족한 재난 인프라가 한꺼번에 겹치면서 만들어진 복합재난이다.
같은 양의 비가 내려도 어떤 나라는 일시적인 불편으로 끝나고 어떤 나라는 수십 명이 목숨을 잃고 수백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는다. 방글라데시가 반복해서 세계 최대 규모의 홍수 피해를 겪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방글라데시는 왜 세계에서 가장 홍수에 취약한 나라가 됐나
방글라데시의 재난은 비가 많이 오는 것만으론 설명되지 않는다. 국토 대부분은 갠지스강과 브라마푸트라강, 메그나강이 합쳐지는 거대한 삼각주 위에 형성돼 있다.
세 강은 히말라야와 인도 북부, 중국 남서부에서 흘러온 막대한 물을 벵골만으로 쏟아낸다. 우기에는 상류 지역의 폭우와 현지 강우가 동시에 겹치면서 하천 수위가 급격히 높아진다.
문제는 이 물을 받아낼 땅이 너무 낮다는 점이다. 국토의 상당 부분이 해발 수 미터 수준에 불과해 강이 범람하면 물이 빠져나갈 곳이 거의 없다.
여기에 만조와 폭풍해일까지 겹치면 강물과 바닷물이 동시에 밀려들면서 피해는 더욱 커진다. 이번 홍수 역시 남동부 산악지대에서는 산사태가, 평야 지대는 범람이 동시에 발생했다.
하나의 폭우가 지역마다 전혀 다른 형태의 재난을 만들어 낸 것이다. 방글라데시를 위협하는 것은 홍수 하나가 아니라 홍수와 산사태, 침수와 고립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복합재난이다.
같은 비가 내려도 희생은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집중된다
이번 홍수에서 가장 큰 인명 피해가 발생한 곳은 콕스바자르의 로힝야 난민촌이었다. 이곳에는 미얀마를 탈출한 로힝야 난민 100만 명 안팎이 거주하고 있다.
대부분 거처는 대나무와 방수포, 흙으로 만든 임시 주택이다. 산비탈을 깎아 조성한 난민촌은 배수시설이 부족하고 토사가 쉽게 무너지는 구조다.
국제기구들은 수년 전부터 우기마다 대형 산사태 위험을 경고해 왔다. 실제로 비가 며칠만 이어져도 경사지가 붕괴하고 임시 거처가 무너지면서 어린이와 노약자가 가장 먼저 희생되는 일이 반복됐다.
이번에도 같은 일이 벌어지며 전쟁과 박해를 피해 국경을 넘어 살아남은 사람들이 이번에는 기후재난 앞에서 다시 삶의 터전을 잃었다.
재난은 모두에게 같은 위험을 주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가장 약한 사람부터 먼저 무너뜨린다.

이번 홍수를 단순히 우기의 반복으로만 해석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남아시아에서는 짧은 시간에 기록적인 비가 집중되는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
따뜻해진 해수면은 대기에 더 많은 수증기를 공급하고 몬순과 저기압이 결합하면 과거보다 훨씬 강한 폭우가 한꺼번에 쏟아진다.
세계기상기구(WMO)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구온난화가 진행될수록 남아시아의 극한 강수와 대규모 홍수 발생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해 왔다.
중요한 변화는 연평균 강수량이 아니라 극단적인 비가 더 자주, 더 짧은 시간 안에 집중된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수십 년에 한 번 발생하던 수준의 홍수가 이제는 몇 년 간격으로 반복되고 있다.
주민들이 복구를 마치기도 전에 또 다른 재난이 찾아오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기후 위기는 홍수를 새롭게 만든 것이 아니라, 회복할 시간을 빼앗고 있다.
진짜 재난은 물이 빠진 뒤부터 시작된다
홍수가 끝났다고 피해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침수된 논과 밭은 수확을 포기해야 하고 식수원은 오염된다. 하수시설이 무너지면서 수인성 질환과 감염병 위험도 커진다.
학교는 문을 닫고 생계를 잃은 주민들은 다시 빚을 지거나 이주를 선택해야 한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재난이 빈곤을 만들고 빈곤이 다시 재난 피해를 키우는 구조가 형성돼 있다.
보험과 사회안전망이 충분한 나라에서는 홍수가 지나간 뒤 복구가 시작되지만, 취약국에서는 복구보다 생존이 먼저다. 그래서 같은 홍수라도 결과는 전혀 다르다. 재난은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을 더욱 깊게 만드는 과정이 된다.
세계는 복구보다 '회복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국제사회가 최근 가장 강조하는 개념은 복구보다 회복력(Resilience) 이다. 재난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면 피해를 얼마나 줄이고 얼마나 빨리 일상을 회복할 수 있는지를 국가 경쟁력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조기경보 시스템과 위험지역 사전 대피, 하천 관리와 도시 배수시설, 재난보험과 긴급 지원 체계는 모두 이러한 회복력을 높이기 위한 장치다.
최근 중국이 태풍 '바비' 상륙 전 200만 명 가까운 주민을 미리 대피시킨 것도 같은 흐름이다. 재난 이후 구조보다 재난 이전 예방이 더 많은 생명을 살린다는 사실을 각국이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글라데시처럼 빈곤과 난민 문제가 겹친 국가는 이러한 체계를 구축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 기후 위기는 모든 나라에 같은 위험을 주지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은 결코 같을 수 없다.
방글라데시의 홍수는 한국에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번 홍수를 먼 나라의 비극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 역시 최근 기록적인 집중호우와 산사태, 폭염을 반복해서 경험하고 있다.
중국은 태풍을 앞두고 수백만 명을 사전 대피시켰고 대만도 조기경보와 주민 이동을 재난 대응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기후 위기 시대에는 재난의 규모보다 국가가 얼마나 빨리 위험을 예측하고 주민을 보호할 수 있는지가 피해를 결정한다.
결국 재난은 자연이 만들지만, 희생의 크기는 사회가 결정한다. 방글라데시에서 100만 명이 물에 갇힌 이유는 단지 비가 많이 왔기 때문이 아니다.
극한기후와 빈곤, 난민 문제, 취약한 기반시설, 불충분한 회복력이 하나의 폭우 위에 겹쳤기 때문이다. 이번 홍수는 방글라데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후 위기가 일상이 된 시대, 어느 나라든 같은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재난을 막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 폭우가 오기 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먼저 지켜낼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