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6-06-01 03:22 (월) 06.0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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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근 누락부터 정치 논쟁까지, 결과 책임과 행위 책임의 결정적…

철근 누락부터 정치 논쟁까지, 결과 책임과 행위 책임의 결정적 차이

사고가 안 났는데 왜 책임을 묻나? 선진국이 위험을 관리하는 방식

결과가 없으면 책임도 없는가?

GTX 철근 누락과 계엄 논란이 던지는 위험관리의 질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말은 때로는 안도의 표현이지만, 때로는 가장 위험한 경고일 수도 있다. 우리는 보통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묻는다. 사고가 나면 원인을 조사하고, 피해가 발생하면 책임자를 찾는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점점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고가 나지 않았더라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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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와 책임의 갈림길

최근 한국 사회에서 논란이 된 두 가지 사례는 이 질문을 매우 선명하게 보여준다. 하나는 GTX 건설 과정에서 드러난 철근 누락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둘러싼 논란이다. 두 사건은 성격도 다르고 법적 쟁점도 다르다. 하나는 건설 안전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 권력 행사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건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한 논리가 있다.

"실제 큰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과연 이것만으로 책임 문제가 사라질 수 있을까.

첫 번째 사례 : GTX 철근 누락 논란

2023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의 무량판 구조 철근 누락 문제가 사회적 충격을 안겼다. 이후 GTX를 포함한 여러 대형 인프라 사업에서도 구조 안전성 점검이 확대됐다.

철근은 콘크리트 구조물의 뼈대 역할을 한다. 특히 전단보강근은 기둥과 슬래브를 연결하는 핵심 안전장치다.

문제는 일부 현장에서 설계 또는 시공 과정에서 필요한 철근이 누락됐다는 사실이었다. 다행히 실제 붕괴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국민들이 느낀 불안감은 상당했다. 왜 일까. 안전 분야에서는 사고 발생 여부보다 사고 가능성 자체를 중요하게 보기 때문이다.

만약 항공기 엔진에서 결함이 발견됐는데 아직 추락하지 않았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서 "사고가 안 났으니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까. 철도 신호체계에 오류가 발견됐지만 열차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문제가 없는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위험이 확인되는 순간 이미 관리와 개선의 대상이 된다. 현대 안전관리 체계는 결과보다 위험을 먼저 본다.

GTX 철근 누락 논란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구조적 결함 가능성이 확인됐다면 그 자체로 사회적 검증과 책임 논의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두 번째 사례 : 계엄 선포 논란

또 다른 사례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둘러싼 논란이다. 일부에서는 다음과 같은 논리를 제시했다. "계엄은 선포됐지만 4시간 만에 해제됐다.",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따라서 문제가 과장된 것 아니냐." 이 논리는 언뜻 보면 합리적으로 들릴 수 있다. 실제 물리적 충돌이나 장기적인 계엄 통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 측에서는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결과뿐 아니라 과정과 절차 역시 중요한 평가 대상이라는 것이다. 실제 피해가 크지 않았더라도 헌법적 절차가 적절했는지, 권한 행사가 정당했는지, 향후 어떤 위험을 초래할 수 있었는지는 별도로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즉 핵심 쟁점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철근 누락 문제와 계엄 논란을 법적으로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다. 하나는 안전공학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헌법과 정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건 모두 "실제 최악의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으니 책임도 제한적이어야 한다"는 논리가 등장했다는 점에서는 구조적 유사성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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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위험의 발견

현대 사회는 왜 위험을 평가하는가

과거 산업사회에서는 결과 책임이 중요했다.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자를 찾고 손해를 배상하게 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점차 위험사회(Risk Society)로 이동하고 있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현대 문명을 "위험을 관리하는 사회"라고 설명했다.

원자력 발전소 사고, 항공기 추락, 금융위기, 전염병 확산처럼 단 한 번의 실패가 엄청난 피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제표준화기구(ISO)는 ISO 31000 위험관리 기준을 만들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역시 안전관리시스템(SMS)을 통해 위험을 사전에 제거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보잉 737 MAX 사고다.

첫 번째 추락 사고 이후 위험 신호가 존재했지만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고 결국 두 번째 사고로 이어졌다. 결과는 346명의 희생자였다. 반대로 일본 신칸센은 작은 균열 하나만 발견돼도 즉시 운행 점검에 들어간다. 사고가 발생한 뒤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 가능성을 제거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결과 책임과 행위 책임

결과 책임은 실제 피해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행위 책임은 위험한 행동 자체를 평가한다. 음주운전은 대표적인 사례다. 사고를 내지 않았더라도 처벌받는다. 사회가 위험한 행동 자체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는 점점 행위 책임의 비중을 높이고 있다. 안전관리, 금융감독, 환경규제, 공공행정, 의료 분야 모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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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이 만드는 안전사회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

GTX 철근 누락 문제와 계엄 논란은 서로 다른 분야의 사건이다. 그러나 두 사건 모두 현대 사회가 무엇을 중요하게 평가하는지 보여준다. 사고가 발생했는가? 실제 피해가 있었는가? 이 질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이전에 위험이 존재했는가. 절차가 적절했는가. 예방할 수 있었는가. 이 질문들이 함께 고려돼야 한다. 결국 선진 사회를 만드는 힘은 처벌의 강도가 아니라 예방의 수준이다.

"결과가 없었으니 문제도 없다"는 생각은 단기적으로는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사회를 안전하게 만드는 원칙은 다르다. 현대 사회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가 아니라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미래의 안전과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의 신뢰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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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록
parkroc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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