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6-09-05 09:19 (토) 09.05 (토)
에드워드 8세가 입자 세계가 따라 입었다, 페어아일 니트의 역사

에드워드 8세가 입자 세계가 따라 입었다, 페어아일 니트의 역사

셰틀랜드의 전통 문양에서 현대 패션까지, 오래된 스웨터가 들려주는 혁신의 법칙

왕자의 골프 스웨터에서 '문화 논쟁'까지

100년 된 페어아일 니트가 지역 공예에 던지는 질문

"12시간 안에 페어아일을 뜨시오." 지난해 11월 2일 영국 채널4가 첫 방송한 뜨개질 경연 프로그램 '게임 오브 울: 브리튼스 베스트 니터'의 첫 과제였다. 올림픽 다이빙 선수 출신 톰 데일리가 진행을 맡은 이 프로그램은 비평가들의 호평 속에 출발했다. 그러나 방송 직후, 정작 그 문양의 고향인 스코틀랜드 최북단 셰틀랜드에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100년 넘은 니트 한 벌이 왜 오늘의 논쟁거리가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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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근한 노르딕 니트 스웨터와 나무결

작은 섬의 생계, 왕자의 옷이 되다

페어아일은 셰틀랜드 제도의 작은 섬이다. 이 섬의 이름을 딴 뜨개 기법은 한 단에 두 가지 색만 쓰고, 원통형으로 떠 나가며, 한 색이 연속되는 길이를 제한하는 것이 특징이다. 화려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엄격한 규칙의 산물이다.

뜨개는 취미가 아니라 생계였다. V&A 자료에 따르면 1901년 무렵 셰틀랜드 주민의 약 3분의 2가 양말류 교역에 관여하고 있었다. 19세기와 20세기 대부분 기간 동안 뜨개는 이 지역 여성 다수의 필수 노동이었고, 손뜨개든 수동 편직기든 보수는 박했다.

전환점은 1921년이었다. 훗날 에드워드 8세가 되는 웨일스 공이 세인트앤드루스 골프장에서 페어아일 스웨터를 입으면서 니트 유행이 시작됐다. 섬의 작업복이 세계 패션이 된 순간이었다. 그러나 유행은 곧 이름을 둘러싼 문제를 낳았다. 이미 1921년 페어아일 뜨개인들이 '페어아일'이라는 명칭을 보호하려 상표 등록을 신청했지만, 1922년 특허청은 적합한 상표를 제시할 수 없다는 답을 내놨다. 명칭 보호 실패는 100년 뒤 논쟁의 뿌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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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해안 목초지와 돌집, 산지풍경

2025년 논쟁: 전통 대 현대가 아니었다

셰틀랜드 뜨개인 조직(SOK)은 이 방송이 페어아일 기법에 관한 부정적 오해를 퍼뜨렸다며 '전유'라고 비판했다. 지역 정치권에서도 방송사 최고경영자에게 강한 유감을 전달했다.

방송사 측 해명도 있었다. 채널4와 제작사는 페어아일 뜨개를 매우 존중하며, 첫 회 과제는 전통에 현대적 변주를 더해 그 기법을 기리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셰틀랜드 텍스타일 네트워크는 "뜨개인들은 새로운 도구와 재료에 자기 기술을 적용하는 창의적 혁신가"라며, 문제는 현대적 변주에 대한 거부감이 아니라 페어아일을 페어아일이게 하는 요소를 설명하지 않은 데 있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셰틀랜드 박물관 학예사는 1920년대 페어아일 뜨개인들의 디자인 혁신 사례를 발표하기도 했다.

즉 이 논쟁의 쟁점은 '전통을 바꾸지 말라'가 아니라 '바꾸더라도 무엇을 바꾸는지 설명하라'였다. 다만 반대 시각도 존재한다. 대중 프로그램이 뜨개 인구 자체를 넓혔다는 평가, 명칭을 지나치게 엄격히 통제하면 창작이 위축된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됐다. 어느 한쪽이 전적으로 옳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반복되는 구조: 유명해질수록 가난해지는 산지

이 갈등은 처음이 아니다. 2016년 샤넬 메티에 다르 컬렉션에 페어아일 거주 디자이너 마티 방트리용의 디자인이 출처 표기 없이 반영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주민 60명 남짓한 섬에서 지역의 문양과 색을 바탕으로 작업해온 그에게 디자인은 장소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대량생산 니트가 지배하는 시장에서 산지 뜨개인들은 여전히 정당한 가격을 받기 어렵다.

전승 단절도 뼈아프다. 1970~80년대 북해 유전 개발로 고임금 일자리가 생기면서 전통 손뜨개는 급격히 쇠퇴했고, 셰틀랜드의 한 세대는 어릴 때 뜨개를 배우는 문화를 거의 통째로 건너뛰었다.

한국의 지역 공예도 구조가 비슷하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공예산업 실태조사에서 국내 공예사업체 전체 매출은 5조2426억 원, 사업체당 평균 매출은 연 1억7841만 원으로 추정됐다. 사업체 대부분이 개인 사업체(86.0%)이며 종사자도 대체로 5인 미만이다. 이름값은 있으나 체력은 약한 영세 구조라는 뜻이다.

해결의 실마리 넷

첫째, 이름과 원산지의 규범화다. 1922년 상표 등록 실패는 사후 보호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지리적 표시, 산지 인증, 명칭 사용 가이드라인을 산업이 성장하기 전에 마련해야 한다.

둘째, 기록이다. 장인의 기억에만 의존하면 기술은 사라진다. 문양·배색 원리·공정을 영상과 도면, 데이터로 남기는 작업이 지자체 단위에서 필요하다.

셋째, 산지형 축제 경제다. 2010년 시작된 셰틀랜드 울 위크는 2024년 등록 참가자 800명, 전체 참여자 약 1000명 규모로 성장했고 참가자 다수가 해외에서 찾아온다. 한 해 지역경제 유발효과는 약 80만 파운드로 추산된 바 있다. 셰틀랜드 전체 관광의 경제효과가 2023년 6300만 파운드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공예 축제 하나가 만든 몫은 결코 작지 않다.

넷째, 협업의 규칙이다. 브랜드와 산지의 결합 자체는 기회다. 문제는 출처 표기와 대가 배분의 부재였다. 계약서에 '문화적 출처 명시'와 '수익 배분' 조항을 넣는 것만으로도 상당수 분쟁은 예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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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뜨개 도안의 디지털 변환

오래된 것이 살아남는 법

셰틀랜드 뜨개인들은 1830년대 레이스, 1880년대 고급 내의, 1920년대 페어아일로 시장 변화에 맞춰 기술을 계속 바꿔왔다. 변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우리 앞에도 사라져가는 지역 공예와 골목, 오래된 가게가 많다. 원형 보존만이 답은 아니다. 다만 무엇을 지킬지 정하지 않은 변화는 계승이 아니라 소진이 된다. 100년 전 작은 섬의 스웨터가 지금도 팔리는 이유, 그리고 지금도 싸움이 벌어지는 이유가 모두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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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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