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6-09-04 00:14 (금) 09.04 (금)
네팔 대홍수가 드러낸 기후 불평등…적응재원·손실과 피해 지원 …

네팔 대홍수가 드러낸 기후 불평등…적응재원·손실과 피해 지원 확대 과제로

3줄 요약
  • 기후변화가 극한강수 위험 높여…국제 책임분담과 국내 재난대응 강화 병행해야
  • 수백 명 희생 뒤 드러난 기후 불평등…재난구호 넘어 선진국 책임·기후재원 논쟁 확산
  • 기후변화·도시 취약성·재정격차가 피해 증폭…기후재원 체계 전환 요구

배출은 가장 적게, 대가는 가장 크게 — 네팔 대홍수가 드러낸 기후 불평등의 구조

빙하 붕괴가 부른 8·26 참사, 한국인 9명도 실종…'구호'에서 '책임 분담'으로 옮겨가는 국제 논의

비는 오지 않았다

2026년 8월 26일 오전 8시 37분, 네팔 랑탕국립공원 북쪽에서 지진계가 흔들렸다. 규모 5.2의 진동이 세계 각국 관측망에 잡혔지만, 미국 지질조사국(USGS)이 장주기 지진파를 분석한 결과 이는 지진이 아니라 빙하 붕괴가 만들어낸 흔들림이었다. 독일 GFZ 헬름홀츠 지구과학센터는 동일한 시각에 산사태와 일치하는 규모 5.7의 신호를 기록했고, USGS는 3시간 뒤 규모 4.2의 두 번째 산사태도 확인했다.

그날 현장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위성 분석에 따르면 랑탕리룽 봉우리에서 폭 약 600m에 이르는 거대한 빙하 덩어리가 떨어져 나갔고, 얼음과 물, 암석, 자동차 크기의 바위가 뒤섞인 흐름이 2,000m 아래로 쏟아졌다. 위성영상을 추가 분석한 지형학자들은 빙하 아래 기반암 자체가 대규모로 무너지면서 빙하의 일부를 함께 끌고 내려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토석류는 렌디콜라 하천을 일시적으로 막아 임시 호수를 만들었고, 그 둑이 터지면서 홍수가 증폭됐다. 현재까지의 분석으로는 전형적인 빙하호 붕괴홍수(GLOF)와는 다른, 얼음·암석 붕괴에서 시작된 복합 연쇄재난으로 파악된다.지진파가 기록된 지 불과 7분 뒤, 네팔·중국 국경의 지룽 통상구를 감시카메라가 지켜보는 가운데 홍수가 집어삼켰다.

급류는 트리슐리강을 따라 72km 구간을 훑으며 라수와·누와코트 지역 수십 개 마을을 물에 잠기게 했다. 국제산악통합개발센터(ICIMOD)와 세계기상기구(WMO)는 토석류가 약 100km 하류까지 이동한 것으로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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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마을을 덮친 대홍수로 토사에 뒤덮인 트리슐리강 유역

숫자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인명 피해 집계는 발표 기관과 시점에 따라 계속 바뀌고 있다. 9월 2일(현지시간) 네팔 재난관리청 집계 기준 네팔 내 사망자는 최소 1,114명, 실종자는 3,916명(외국인 583명)이었다. 중국 티베트자치구 사망 16명, 실종 546명(외국인 261명)을 더하면 사망 1,130명, 실종 4,462명이다. 이후 중국 재해 당국이 티베트 지역 사망자를 21명으로 수정하면서 양국 합계는 사망 1,225명, 실종 4,757명으로 늘었다. 네팔 당국은 수력발전소 건설현장 터널에 500여 명이 고립돼 있을 가능성을 보고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참사 발생 일주일이 지난 현재도 사망자와 실종자 수는 확정되지 않았다.

한국도 당사국이다. 한국남동발전과 두산에너빌리티 소속 직원 9명이 수력발전소 건설현장에서 연락이 끊겼다. 네팔 당국은 도로 40km와 다리 80개가 파괴됐다고 밝혔으며, ICIMOD는 상류에 여전히 막힌 구간이 남아 있어 2차 홍수 가능성을 경고했다. 정부는 20명 규모 합동 신속대응팀을 파견했고, 소방청 소속 육로수색팀 9명은 8월 31일 오후 라수와 지역 둔체에 도착했다. 이어 44명 규모 해외긴급구호대(KDRT)가 드론과 열화상 탐지기 등을 갖추고 합류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는 8월 31일과 9월 2일 두 차례 외교부로부터 수색 상황을 보고받았으나, 실종 지점을 수색할 여건이 아직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두산그룹 박정원 회장은 8월 29일 카트만두를 직접 찾았다.

2년 전 예고편, 2024년 9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4년 9월 26~28일 네팔에는 기록적 폭우가 쏟아졌고 244명이 숨졌다. 네팔 수문기상국(DHM)에 따르면 당시 여러 관측소의 강수량은 54년 관측 이래 최고치였다. 유엔 집계로는 21개 지역이 피해를 입었고 7개 지역은 심각한 타격을 받았으며, 사망 246명·부상 183명·실종 18명, 구조 1만 7,000여 명이었다. 주택 4,667채가 전파됐고 에너지 인프라 피해만 3,250만 달러, 도로·교량 25억 루피, 농업 60억 루피 이상으로 추산됐다. 유엔과 인도주의 기관들은 취약계층 19만 3,000명을 우선 대상으로 1,750만 달러 규모의 긴급 대응계획을 내놨다.

과학적 진단도 나왔다. 국제 기후연구진 World Weather Attribution(WWA)의 분석에 따르면, 1.3도 더 따뜻해진 오늘의 기후에서 당시와 같은 극한 강수의 강도는 약 10% 강해졌고 발생 가능성은 약 70% 높아졌다. 관측자료만으로 본 최적 추정에서는 3일 강수가 약 18% 강해지고 발생 확률이 두 배 이상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으나, 연구진은 자료 간 편차가 커 수치의 정확성에 대한 신뢰도는 제한적이라고 명시했다. 특정 재난의 모든 피해를 기후변화 탓으로 돌릴 수 없다는 뜻이다. 기후변화는 재난을 새로 만들어내기보다 기존 위험의 확률과 강도를 바꾼다.

피해 규모를 결정한 것은 도시와 제도였다

같은 보고서는 또 다른 원인을 지목했다. 카트만두 계곡의 시가지 면적은 1990~2020년 사이 386% 늘었고, 1989~2019년 산림은 28% 줄었다. 자연적 물순환이 교란되면서 지표유출이 늘고 배수체계가 한계에 부딪혔으며, 홍수터와 하천 주변까지 건축이 확대되면서 사람과 자산의 노출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경제적 충격의 성격도 주목할 만하다. 2011~2024년 네팔의 홍수·산사태 피해를 정규화해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연간 손실은 대부분 GDP의 0.05% 미만이지만 2014년 홍수 한 건이 그해 GDP의 약 0.6%를 차지했다. 피해가 일상적으로 누적되기보다 극단적 단일 사건에 집중되는 구조라는 의미다. 재정 여력이 제한된 국가에서 이런 '한 방'은 도로와 학교, 병원뿐 아니라 수십 년간 쌓아온 개발 성과까지 되돌린다.

왜 '기후 불평등'인가

네팔 사례가 국제 쟁점이 되는 이유는 책임과 피해의 지리적 불일치에 있다. 산업화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대량 배출한 국가들과 달리 네팔의 세계 배출 비중은 극히 작다. 그러나 히말라야라는 지리 조건 탓에 폭우와 홍수는 물론 빙하 후퇴, 빙하호 붕괴, 사면 불안정이라는 복합 위험에 동시에 노출돼 있다.

콜로라도대의 산악지리학자 알턴 바이어스는 수천 년간 고산의 암석과 얼음, 토양을 붙들어온 영구동토층이 약해지면서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WMO는 이번 재난이 "빙권의 변화와 불안정이 얼마나 빠르게 국경을 넘는 하류 피해로 전환되는지"를 보여준다며, 감시 강화와 관측망 확충, 국경 간 정보 교환 속도 개선을 촉구했다. ICIMOD의 빙권 분석가 프라샨트 바랄은 이번 사건이 최근 사례들과 비교해 규모 자체가 현저히 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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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열너머의 대참사로 누가 부담해야 하는지가 과제이다.

쟁점은 결국 '누가, 어떤 방식으로 낼 것인가'

구호와 적응재원, 손실과 피해는 서로 다른 개념이다. 구호는 식량·식수·의료·임시거처 등 당장의 생명을 지킨다. 적응재원은 앞으로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사전 투자다.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는 감축과 적응으로도 피할 수 없었던 피해를 뜻하며, 파괴된 주택과 농지 같은 경제적 손실뿐 아니라 공동체 해체와 문화 상실 같은 비경제적 피해까지 포함한다.

현실의 재원 구조는 아직 그 격차를 메우지 못한다. 2023년 COP28 최초 공약 회의에서 부유국들이 손실과피해대응기금(FRLD)에 약속한 금액은 8억 2,000만 달러 수준이었고, 이 중 실제 납입된 비율은 55%에 그쳤다. 추가 기부가 없으면 기금은 2027년 말 소진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기금 측은 2026년 3월까지 27개 공여 파트너 중 24곳이 기여 협정에 서명하고 송금을 시작했다고 밝혔으며, 첫 2억 5,000만 달러 규모 지원 창구가 가동에 들어갔다. 반면 유엔환경계획(UNEP)은 개도국의 연간 적응재원 격차를 1,940억~3,660억 달러로 추산한 바 있다. 2021년 공적 적응재원은 오히려 15% 줄어든 210억 달러였다.

여기서 이해관계는 갈린다. 기후취약국들은 역사적 배출 책임과 지불 능력이 큰 국가가 더 많이 부담해야 하며, 대출 방식은 피해국 부채만 늘리므로 무상·예측가능·신속지급이 핵심이라고 본다. 반면 공여국들은 대규모 재원의 지속적 조성을 위해 국내 정치적 동의를 확보해야 하고, 집행의 투명성과 성과 검증 책임을 안는다. 신흥경제국과 민간자본이 어디까지 분담할지도 미결 과제다. 어느 한쪽의 논리만으로 정리되지 않는 문제라는 점에서, 11월 9~20일 튀르키예 안탈리아에서 열리는 COP31의 논의 방식이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그래서 무엇이 달라져야 하나

첫째, 다중위험 조기경보의 공백을 메워야 한다. 이번 재난은 강수 기반 홍수경보 체계로는 포착할 수 없는 유형이었다. 비 없이 시작된 빙하·암석 붕괴, 하천 폐색과 임시 호수 형성, 결궤로 이어지는 연쇄 과정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유엔이 2027년까지 목표로 내건 '모두를 위한 조기경보' 이행에서 고산지대는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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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호 붕괴홍수 조기경보체계 구성도

둘째, 국경을 넘는 위험 정보의 공유 규범이 필요하다. 발원지와 피해지가 서로 다른 나라에 걸쳐 있는 초국경 재난에서, 상류 관측 자료가 하류 주민에게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곧 생존 시간이다. 특정 국가를 겨냥한 문제 제기가 아니라, 공유 의무와 절차를 사전에 제도화하자는 것이 WMO의 권고 취지다.

셋째, 산악 인프라의 입지·설계 기준을 다시 짜야 한다. 수력발전소와 도로, 교량은 과거 강수·홍수 기록을 토대로 설계됐다. 빙하 후퇴와 영구동토층 변화가 진행되는 조건에서 그 기준은 더 이상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 해외 인프라 사업에 참여하는 한국 기업과 공기업에도 기후 리스크 실사와 대피 프로토콜은 선택이 아닌 필수 항목이 됐다.

넷째, 재원의 무게중심을 사후 복구에서 사전 적응으로 옮겨야 한다. 규모만큼 중요한 것이 무상재원 비중, 지급 속도, 접근 절차다. 재난 발생 시 원리금 상환을 자동 유예하는 재난연계 채무조항처럼, 복구가 곧 부채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설계도 함께 검토될 필요가 있다.

다섯째, 국내 거버넌스의 책임은 국제 재원으로 대체되지 않는다. 무분별한 도시 확장과 홍수터 개발, 취약한 건축물, 경보 전달의 마지막 1km 문제는 네팔 정부와 지방당국이 감당해야 할 영역이다. 기후변화가 위험의 크기를 키웠다면, 도시와 제도의 취약성은 그 위험이 참사로 전환되는 정도를 결정한다. 국제적 책임과 국내 개혁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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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현장

히말라야가 던지는 질문은 하나로 압축된다. 기후위기의 원인에 가장 적게 기여한 사람들이 가장 큰 비용을 치르는 구조를 그대로 둘 것인가. 앞으로의 기후정책은 온실가스를 얼마나 줄였는지뿐 아니라, 이미 발생한 피해의 비용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나눌 것인지에 따라 평가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트리슐리강 유역에서 진행 중인 수색은, 그 질문이 더 이상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매일 확인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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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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