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한국인 9명 어디에…구조대 보내도 접근 못한 ‘마지막 1마일’
- 신속대응팀 이어 44명 해외긴급구호대 투입…해외 재난 국민보호체계 시험대
- 출동 속도보다 중요한 현장 접근력…정부·기업·현지 당국 협업체계 점검해야
- 국가 주권·접근로·기업 안전관리라는 세 개의 장벽, 국민 보호의 마지막 1마일
네팔 대홍수 한국인 9명 실종 8일째… 시험대에 오른 '재외국민 보호의 마지막 1마일'
출발은 빨랐지만 도달은 늦었다… '골든타임'보다 '접근시간'이 관건
네팔 대홍수로 실종된 한국인 9명의 생사가 2일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정부 합동 신속대응팀에 이어 44명 규모의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KDRT)까지 현지에 투입되며 대응 수위는 높아졌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던지는 질문은 "정부가 얼마나 빨리 출발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 국민이 있는 곳까지 도달할 수 있는가"이다.

■ 빙하 붕괴가 부른 재난… 사망자 1천 명 육박
재난은 지난달 26일 시작됐다. 네팔·중국 티베트 접경 히말라야 상층의 빙하가 붕괴하며 트리슐리강 일대를 덮쳤다. 네팔 재난관리청은 사망자를 최소 900여 명, 외국인을 포함한 실종자를 4천200여 명으로 집계했고, 중국이 발표한 티베트 자치구 사망 16명·실종 540여 명을 더하면 사망자만 1천 명에 육박한다. 기반시설 피해도 컸다. 네팔 당국은 1만4829명을 수색·구조에 투입해 3742명을 구조했으며, 교량 80개와 약 40㎞ 도로가 파손됐다.
한국인 실종자 9명은 관광객이 아니다. 한국남동발전과 두산에너빌리티가 짓던 어퍼트리슐리(UT-1) 수력발전소 근무자로, 두산에너빌리티 직원 6명과 한국남동발전 직원 3명이다. 현장 피해 규모는 훨씬 크다. 네팔 독립발전사업자협회장은 AP통신에 이 발전소에서 애초 576명이 연락 두절됐고 이 중 약 300명이 터널에 갇힌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인근 수력발전 현장까지 포함하면 11개 현장에서 934명이 실종된 것으로 집계됐다. 별도로 고립됐던 한국인 10명 가운데 9명은 지난달 31일 무사히 귀국했고, 같은 날 발전소 터널에서 시신 1구가 수습됐으나 국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연락 두절 외국인은 인도인 288명, 미국인 90명 등 다국적 양상을 보인다.
네팔 고립 한국인 9명 무사 귀국…실종자 9명은 수색 계속
■ 파견은 빨랐다, 그러나 도달하지 못했다
정부 대응 속도 자체는 늦지 않았다. 이규호 외교부 개발협력국장을 구호대장으로 외교부 3명, KOICA 4명, 소방청 37명 등 44명으로 구성된 KDRT가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 시그너스(KC-330) 편으로 2일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구조견 5마리가 동행했고 활동 기간은 약 10일이다. KDRT의 해외 파견은 2023년 캐나다 산불 지원 이후 3년 만이다.
문제는 '파견'과 '투입'이 같은 말이 아니라는 점이다. 네팔 당국은 현장 안전과 2차 홍수 가능성을 이유로 외국 구조 인력의 접근을 제한해 왔다. 지난달 28일에는 접경지 댐 붕괴설이 전해지며 구조대에 긴급 대피령이 내려지고 헬기 수색이 중단되기도 했다. 우리 대응팀이 육로로 사고 현장에 접근한 것은 재난 발생 엿새가 지난 뒤가 처음이었다.
비교 사례는 명확하다. 2023년 튀르키예 대지진 때 정부는 지진 하루 만에 역대 최대 118명 규모 구호대를 보냈고, 골든타임이 지난 안타키아에서 생존자 8명을 구조했다. 잔해 위를 걸어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네팔은 다르다. 도로와 교량이 끊기고 터널이 진흙으로 막힌 산악 재난에서는 '골든타임'보다 구조대가 사고지점에 닿는 데 걸리는 **접근시간(access time)**이 먼저다.

■ 사회적 반응… "정부가 나서달라"
실종자 가족들은 헬기 운항이 통제되는 상황에서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요구해 왔다. 여론의 초점도 구조대 규모가 아니라 성과 부재에 맞춰져 있다. 다만 현시점에서 성패를 단정하기는 이르다. 전례 없는 재난 규모, 현지 구조 역량의 한계, 기상과 지형이라는 변수가 동시에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 세 가지 구조적 문제
첫째, 주권의 벽이다. 해외 재난의 1차 대응 권한은 피해국에 있다. 우리 구조대는 협의→허가→이동수단 확보→장비 투입이라는 단계를 모두 통과해야 한다.
둘째, 접근시간의 관리 공백이다. 현재 평가지표는 '인지 시각'과 '파견 시각'에 머문다. 정작 피해자 가족에게 중요한 '실제 도달 시각'은 기록도 공개도 되지 않는다.
셋째, 해외 사업장 안전의 책임 공백이다. 재외국민은 2024년 말 기준 240만 명에 이른다. 산악 발전소·댐·광산 같은 대형 인프라 현장은 일반 해외근무와 위험 구조가 다르지만, 안전관리는 여전히 기업 몫으로만 남아 있다.
■ 해결 방향, 다섯 가지
① 고위험 사업장 사전 등록제. 국가별 위험등급을 매기고 한국 기업 현장의 좌표, 헬기 착륙 가능지점, 대체 대피로, 위성통신 수단, 현지 군·경 연락망을 평시에 데이터베이스화해야 한다.
② 접근시간의 지표화. 인지·파견·도달 세 시각을 공식 기록하고 사후 공개해 병목 지점을 드러내야 한다.
③ 재난 협력 사전협정. 주요 진출국과 구조 인력·장비의 신속 입국 및 공역 사용 절차를 미리 합의해 두는 방식이다. 이번에도 네팔 측은 열화상 탐지기와 소형 굴착기 등 구체적 장비 지원을 요청했다. 무엇이 필요한지는 대개 사전에 알 수 있다.
④ 기업 BCP와 국가 보호체계의 연계. 해외 대형 프로젝트 수주 단계에서 비상대응계획 제출을 의무화하고 이를 재외국민보호대책본부와 연동해야 한다.
⑤ 법의학적 신원확인 준비. 네팔 정부는 냉동시설 부족으로 임시 매장을 하되 DNA를 미리 채취해 유족이 신원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DNA 대조 체계와 유해 송환 절차를 지금부터 가동해야 한다.

■ 마지막 1마일
재난 대응은 실종 확인→수색→구조→신원 확인→가족 지원→귀국 지원으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국가 서비스다. 어느 한 단계에서 끊기면 국민 입장에서 그 대응은 완성되지 않은 것이다.
국가가 얼마나 빨리 출발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 국민이 있는 곳까지 도달할 수 있는가. 한국의 재외국민 보호체계가 시험받는 지점은 바로 그 '마지막 1마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