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 참사의 민낯】한화에어로 대전 사고, ‘1번’으로 남은 이름들…계약직 청년까지 삼킨 구조적 안전 공백
“대통령은 질책하는데, 왜 현장은 달라지지 않나”
한화에어로 폭발 참사가 드러낸 비용 중심 경영과 반복되는 안전의 실패
“지금 폭발했고, 우리 선배가 안에 있어요.”
지난 1일 오전 10시 59분, 대전 유성구 외삼동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에서 걸려온 119 신고 전화 속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연기가 엄청 올라간다”, “완전히 크게 났다”는 신고는 단순한 사고 접수가 아니라, 현장의 절규였다. 소방당국은 18분 만에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인력 85명과 장비 25대를 투입했지만, 5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숨진 이들 가운데는 입사 3~4개월 된 20대 계약직 청년 2명과 20년 넘게 근무한 50대 장기 근속 노동자가 포함됐다. 훼손이 심한 주검
사고는 또다시 반복됐다. 그리고 또다시 질문이 남았다.
왜 산업 현장의 구조적 문제는 매번 사고 이후에도 해결되지 않는가.
■ 반복되는 질책, 반복되는 사고
대형 산업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대통령은 “철저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강조해왔다. 관계 부처 장관은 강하게 질책하고, 합동 감식과 특별 점검이 이어진다. 사고 직후 현장은 긴장하고, 기업은 사과문을 발표하며 안전 강화 대책을 내놓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현장은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다.
그리고 몇 달 혹은 몇 년 후, 비슷한 사고가 또 발생한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제조업 현장 화재·폭발 사고는 매년 300건 안팎으로 집계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OECD 평균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는 평가가 이어진다.
문제는 ‘질책의 강도’가 아니라 ‘구조의 방향’에 있는 것은 아닐까.
■ 구조적 원인 ① 안전보다 비용을 우선하는 경영 문화
산업 현장에서 안전 설비 강화, 노후 장비 교체, 공정 개선은 모두 비용과 직결된다. 단기 실적 압박을 받는 기업 경영 구조에서는 안전 투자가 ‘비용’으로 인식되기 쉽다. 사고가 나지 않는 한, 투자 대비 가시적 성과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폭발 위험이 있는 공정에서 실시간 감지 시스템을 구축하고, 작업 공간을 물리적으로 분리하며, 숙련 인력을 충분히 배치하는 일은 비용이 든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사회적·경제적 손실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그럼에도 일부 현장에서는 “지금까지 문제 없었으니 괜찮다”는 안일함이 반복된다.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임에도, 구조는 여전히 단기 수익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 구조적 원인 ② “우리 사업장은 괜찮겠지”라는 방관
경영자와 관리자들의 무의식적 방관도 문제로 지적된다.
산업재해는 늘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인식되기 쉽다. 사고가 발생하면 “특수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하지만, 대부분의 참사는 작은 위험 신호가 누적돼 발생한다.
위험물 취급 공정에서는 단 한 번의 관리 소홀도 치명적일 수 있다. 신규·비정규 인력의 안전 교육이 형식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는지, 작업 표준이 실제 현장에서 지켜지고 있었는지, 관리자 점검이 서류에만 머문 것은 아니었는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특히 숨진 20대 계약직 2명은 입사 동기였다. 통계청에 따르면 20대 비정규직 비율은 전체 청년 취업자의 약 30% 수준이다. 고위험 공정에 신규 인력이 배치될 경우, 충분한 숙련과 반복 교육이 뒤따르지 않으면 위험은 배가된다.
“위험의 외주화”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구조적 원인 ③ “지난번에 조치했으니 문제없겠지”라는 방임
사고 이후 대부분의 사업장은 긴급 점검을 실시한다. 설비 보강, 안전 교육 강화, 관리 감독 체계 개선 계획이 발표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긴장은 완화된다.
반복되는 사고의 공통점은 ‘사고 직후에는 강화, 시간이 지나면 완화’라는 패턴이다. 현장에서는 “지난번 점검 때 다 조치했다”는 인식이 자리 잡는다. 그러나 안전은 한 번의 조치로 완결되는 사안이 아니다. 공정 변화, 인력 교체, 설비 노후화에 따라 위험은 계속 재생산된다.
제도는 존재하지만, 실행은 지속되지 않는 구조. 이것이 산업안전의 가장 큰 취약 지점이다.
■ 신원 확인 지연이 드러낸 재난 대응의 한계
이번 사고에서 유족들이 겪은 고통은 또 다른 과제를 남겼다.
훼손된 주검의 신원 확인을 위한 DNA 감정은 신속히 이뤄졌지만, 유족 입장에서는 하루가 영원처럼 느껴졌다. 안치실 냉동고에 ‘1번’, ‘2번’이라는 번호가 적힌 현실은 사회적 충격을 더했다.
대형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피해자 신원 확인 체계 고도화 ▲유족 지원 전담 시스템 ▲심리 치료 지원 체계 강화가 과제로 제시된다. 그러나 매번 ‘보완 필요’라는 결론이 반복된다.

■ 국가·산업·사회에 미칠 영향
이번 사고는 단순한 지역 산업재해를 넘어선다.
첫째, 방산·항공 산업의 안전 관리 수준은 국가 신뢰도와 직결된다.
둘째, 글로벌 공급망 시대에 산업안전은 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다.
셋째, 청년 고용 구조와 계약직 중심 노동 구조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촉발할 수 있다.
산업재해는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구조의 결과다.
그 구조는 기업의 비용 판단, 관리자의 인식, 제도의 지속성, 그리고 사회 전체의 안전 감수성에 의해 형성된다.
■ 그래서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

안전 투자를 비용이 아닌 필수 인프라로 재정의
고위험 공정에 대한 상시 점검·외부 감사 제도 강화
신규·비정규 인력에 대한 집중 안전 교육 의무화
사고 이후 유족 지원의 법적 표준화
대통령의 질책은 필요하다. 그러나 구조를 바꾸지 못하면 질책은 반복되고 사고도 반복된다.
이름 대신 번호로 남겨진 자리.
그 공백은 통계로 환산할 수 없는 사회적 손실이다.
산업은 다시 가동되겠지만, 질문은 남는다.
이번 사고 이후, 우리는 정말로 달라질 것인가.
이번 사고 이후, 우리는 무엇을 바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