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는 왜 전시 선거를 ‘쓰나미’라 부르나…국가안보와 현직 권력의 이해가 겹치는 지점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22일 기자들과 만나 지금과 같은 전쟁 상황에서 선거를 실시하는 것은 우크라이나 내부를 갈라놓는 “쓰나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경질된 미하일로 페도로우 전 국방장관이 “민주주의가 러시아에 인질로 잡혀서는 안 된다”며 전시 선거를 위한 법적·안전한 방안을 찾자고 공개적으로 요구한 데 대한 답이었다.
젤렌스키의 주장은 단순한 정치적 수사로만 볼 수 없다. 우크라이나는 계엄 상태에서 국가선거를 실시할 수 없고 전선에는 대규모 병력이 배치돼 있다. 수백만명의 국민은 국내외로 피란했고, 일부 국토는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다.
군인의 투표권과 해외 피란민의 선거 참여, 후보자 간 공정한 선거운동, 러시아의 미사일·드론 공격과 사이버·정보공작까지 정상적인 선거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문제가 한꺼번에 겹쳐 있다.
국민 여론 역시 지금 당장 선거를 요구하지 않는다. 키이우국제사회학연구소(KIIS)의 최근 조사에서는 전투가 계속되더라도 즉시 선거를 실시해야 한다는 응답이 15%에 그쳤다.
휴전과 신뢰할 만한 안전보장이 마련된 뒤 선거할 수 있다는 응답은 23%, 최종 평화협정 이후에 실시해야 한다는 응답은 57%였다.
따라서 현재 상황을 ‘국민은 선거를 원하는데 젤렌스키가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막고 있다’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전시 선거가 실제로 위험하다는 사실과, 선거를 하지 않는 것이 현직 대통령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는 사실은 동시에 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국가안보와 현직 권력의 이해가 겹치기 시작한다.
계엄 때문에 선거를 못 하는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언제까지’는 다른 문제다
젤렌스키는 2019년 5월 대통령에 취임했다. 평시였다면 2024년 대통령선거가 실시됐어야 한다. 그러나 러시아가 2022년 2월 전면 침공하면서 우크라이나는 계엄체제로 들어갔고 선거도 중단됐다.
이를 근거로 러시아와 일부 비판론자들은 젤렌스키의 5년 임기가 이미 끝났기 때문에 대통령으로서 정통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우크라이나 헌법은 새 대통령이 취임할 때까지 현직 대통령이 권한을 계속 행사하도록 하고 있고, 계엄 상태에서는 선거를 실시할 수 없다.
따라서 젤렌스키가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대통령직을 연장하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은 부정확하다.
하지만 법적으로 직무를 계속할 수 있다는 것과 민주적 정통성이 계속 자동으로 갱신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선거는 단순히 대통령 임기가 끝났음을 확인하는 절차가 아니다. 국민이 다시 통치권을 위임할지를 결정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장치다.
전쟁이 짧게 끝났다면 이 문제는 상대적으로 작았을 수 있다. 그러나 전쟁이 수년째 이어지고 종료 시점도 알 수 없다면 질문은 달라진다.
러시아가 전쟁을 계속하는 동안 우크라이나가 선거를 할 수 없고, 선거를 하지 못하는 동안 현직 대통령이 계속 집권한다면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정치일정 일부가 러시아의 전쟁 지속 여부에 종속되는 역설이 생긴다.
페도로우가 “민주주의가 러시아에 인질로 잡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당장 선거를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대신 전쟁이 길어질수록 “왜 지금 선거를 못 하는가”와 함께 “어떤 조건이 갖춰지면 다시 선거로 돌아갈 것인가”에 답해야 한다는 뜻이다.
선거가 위험하다는 젤렌스키의 주장은 현실이다…그래서 더 어려운 문제다
현재 우크라이나가 자유롭고 공정한 전국선거를 치르기 어려운 이유는 명확하다. 가장 먼저 유권자의 문제가 있다.
수백만명의 우크라이나 국민이 해외로 피란했고 국내에서도 거주지가 바뀐 사람이 많다.
러시아가 점령한 지역의 주민까지 포함하면 누가 어디에서 투표해야 하는지부터 다시 정리해야 한다.
군인들의 참정권도 문제다. 전선에서 싸우는 군인들에게 비밀투표를 보장하면서 동시에 지휘체계 안에서 정치적 압력 없이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후보자 간 공정성도 쉽지 않다. 전쟁 중에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언론과 정보공개가 평시보다 제한된다.
이런 환경에서 현직 대통령과 다른 후보가 같은 조건에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지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또 다른 변수다. 투표소 자체를 공격하거나 선거 인프라를 사이버 공격으로 마비시키고 허위정보와 선전전을 통해 우크라이나 내부의 정치적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
따라서 젤렌스키가 말하는 선거 위험은 만들어낸 핑계가 아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위험이다. 이 때문에 역설적으로 문제는 더 어려워진다.
명백히 허구인 이유를 내세워 선거를 미룬다면 민주주의 훼손이라고 판단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한 조치가 동시에 현직 대통령에게 정치적 이익까지 제공한다면 어디까지가 국가를 위한 선택이고 어디서부터 권력을 위한 선택인지 판단하기 훨씬 어려워진다.

젤렌스키가 전쟁 초기에 누렸던 정치적 위상은 압도적이었다. 러시아군이 키이우를 향해 진격했을 때 수도를 떠나지 않았고 서방의 군사·재정 지원을 끌어내면서 전시 지도자로서 강한 정치적 권위를 구축했다.
그러나 장기전은 정치환경을 바꿨다. 병력 부족과 전쟁 피로, 정부 인사와 부패를 둘러싼 논란이 쌓였고 젤렌스키 외에도 강한 국민적 신뢰를 얻는 인물들이 등장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전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 발레리 잘루즈니와 최근 경질된 페도로우다.
그렇다고 현재 여론조사를 근거로 젤렌스키가 선거를 실시하면 패배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일부 조사에서는 잘루즈니와 페도로우가 높은 신뢰도를 기록하지만 다른 조사에서는 젤렌스키가 여전히 강한 지지를 유지하고 있다.
페도로우의 전시 선거 요구 역시 예상만큼 국민적 호응을 얻지 못했다. 따라서 젤렌스키가 패배가 두려워 선거를 막고 있다고 단정할 증거는 없다.
그럼에도 전쟁이 현직 대통령에게 주는 정치적인 효과는 분명하다. 평시였다면 젤렌스키는 임기를 마친 뒤 잘루즈니나 다른 경쟁자들과 다시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했다.
현재는 계엄이 지속되는 동안 선거를 치르지 않아도 대통령직을 계속 수행할 법적 근거가 있다. 더구나 국민 다수 역시 지금 선거를 원하지 않는다.
전쟁이 젤렌스키에게 주는 가장 큰 정치적 이익은 선거를 조작할 수 있다는 데 있지 않다. 선거 자체가 열리지 않는 조건이 계속된다는 데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필요하다. 정치인이 어떤 제도로부터 이익을 얻는다는 사실과 그 이익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 제도를 유지한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실만으로 젤렌스키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전쟁을 이용한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문제는 그의 속마음을 추측하는 데 있지 않다.
전쟁이라는 비상상태가 어느 한 사람의 권력을 얼마나 오래 선거 밖에 둘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인가를 제도적으로 묻는 데 있다.
진짜 위험은 ‘국가안보’와 ‘정권안보’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이다
전쟁 초기에는 국가안보와 정권안보가 상당 부분 같은 방향을 향한다. 국가가 살아남아야 선거도 가능하다.
적군이 수도를 공격하는 상황에서는 정권교체를 위한 정치경쟁보다 국가통합과 군사지휘체계가 우선이라는 주장에 강한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비상상태가 길어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언론과 정치활동 제한, 비상 인사권, 권력집중, 선거 연기 같은 조치는 처음에는 전쟁 수행을 위해 필요했더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현직 권력자에게 정치적인 이익을 제공한다.
그때부터 민주주의의 핵심 문제는 지도자의 심리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제한은 여전히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한지 어떤 제한부터 정상적인 민주정치로 돌려놓아야 하는지를 판단할 객관적인 기준을 만드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와 유럽평의회가 전후 선거를 위한 법적·행정적 준비를 시작한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해외 피란민과 국내 피란민의 투표권, 군인의 참정권, 탈환지역과 점령지역 주민의 유권자 등록, 선거보안과 허위정보 대응, 후보자의 정치활동 보장 같은 문제를 전쟁이 끝난 뒤 처음 생각해서는 정상적인 선거로 빠르게 돌아가기 어렵다.
더 중요한 것은 선거 재개 시점을 대통령 개인의 판단에서 떼어내는 것이다. ‘전쟁이 끝나면 선거한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느 정도의 휴전과 안전보장이 필요한지, 계엄이 해제된 뒤 몇 개월의 준비기간을 둘 것인지, 어떤 조건이 갖춰지면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가능하다고 판단할지를 미리 정할 필요가 있다.
그 기준을 의회와 선거관리기관, 시민사회와 국제기구가 함께 만들면 선거 여부가 현직 대통령의 정치적 이해와 분리될 가능성이 커진다.
반대로 선거를 열 수 있는 조건 자체를 대통령이 계속 새로 정의할 수 있다면 비상상태의 종료 역시 권력을 가진 사람의 판단에 종속될 위험이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국가안보와 정권안보를 가르는 제도가 필요하다.
젤렌스키를 판단할 기준은 ‘오늘 투표하느냐’가 아니라 선거로 돌아갈 출구를 만들고 있느냐다
따라서 젤렌스키의 민주주의를 평가하는 가장 좋은 기준은 지금 당장 선거를 실시하느냐가 아니다.
현재의 안보·법률·행정조건을 고려하면 즉각적인 전국선거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선거를 하지 못하게 하는 조건이 사라졌을 때 실제로 권력을 다시 국민의 선택에 맡길 수 있도록 지금부터 출구를 만들어놓느냐다.
전선이 안정되고 실질적인 휴전이 이뤄졌을 때 선거 준비에 얼마가 필요한지, 해외 피란민은 어떻게 투표하는지, 군인은 어떻게 정치적 자유와 비밀투표를 보장받는지, 점령지와 탈환지역 주민의 선거권을 어떻게 복원하는지를 미리 결정해야 한다.
후보자에게 동등한 언론접근과 정치활동을 보장하는 기준도 필요하다.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과 정보공작에 대응하는 선거보안체계도 마련해야 한다.
이런 준비가 구체적으로 진행된다면 “젤렌스키가 전쟁을 핑계로 권력을 연장한다”는 의심은 상당 부분 약해질 수 있다.
반대로 전선이 안정되고 안전보장이 마련됐으며 선거 인프라까지 복구됐는데도 새로운 이유를 계속 추가해 선거를 늦춘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때는 국가안보보다 정권안보가 우선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훨씬 강한 근거를 갖게 된다.
젤렌스키가 전시 선거를 “우크라이나를 깨뜨릴 쓰나미”라고 부른 것은 강한 표현이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위험 자체가 허구인 것은 아니다.
전선에는 군인들이 있고 수백만명의 국민이 고향을 떠나 있다. 국토 일부는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으며 선거가 시작되는 순간 러시아가 군사공격과 사이버전, 정보공작을 집중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우크라이나 국민 다수 역시 지금 당장의 선거를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현재까지 확인된 자료만으로 젤렌스키가 선거에서 질 것이 두려워 전쟁을 이용해 권력을 연장하고 있다고 단정하는 것은 증거를 넘어선다.
그러나 장기전은 다른 종류의 민주주의 위험을 만든다. 전쟁은 선거를 연기해야 할 실제 이유이면서 동시에 현직 대통령에게 선거 없이 권력을 계속 행사할 수 있는 정치적 이익을 준다.
두 사실은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더 어려운 문제가 시작된다.
민주주의가 가장 위험한 순간은 지도자가 명백한 거짓말로 권력을 연장할 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국가를 지키기 위해 실제로 필요한 비상권력이 그 권력을 가진 사람의 정치적 생존에도 정확히 도움이 될 때 민주주의는 훨씬 더 어려운 시험을 받는다.
그래서 젤렌스키를 판단할 장면은 지금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전쟁 때문에 투표소를 닫아놓은 오늘이 아니라, 다시 투표소를 열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졌을 때다.
그 순간 젤렌스키가 선거를 준비하고 권력을 다시 국민의 심판대에 올린다면 지금의 선거 연기는 전시 민주주의의 불가피한 예외로 남을 수 있다.
반대로 그때도 새로운 이유를 만들어 선거를 뒤로 미룬다면 전쟁은 국가를 지키는 명분인 동시에 권력을 지키는 수단이라는 의심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젤렌스키의 민주주의를 최종적으로 평가할 장면은 지금 투표소를 열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투표소를 다시 열 수 있는 순간 스스로 그 문을 여느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