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6-05-24 11:26 (일) 05.24 (일)
NEWS-G
뉴스
뉴스
기획특집
오피니언
미디어
여행
커뮤니티
전체 자유게시판 토론 유머
봉하는 조용했고, 정치는 멀어졌다

봉하는 조용했고, 정치는 멀어졌다

전직 대통령과 야당 지도부의 부재가 남긴 정치의 민낯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7주기 추도식은 엄숙했고 메시지는 분명했다. 그러나 현장은 어딘가 비어 있었다. 전직 대통령들의 참석은 제한적이었고, 주요 야당 지도부의 모습도 찾기 어려웠다. 단순한 일정상의 문제로 치부하기엔 상징성이 큰 자리였다. 왜 그들은 봉하로 향하지 않았을까.

첫째, 정치적 거리두기 전략의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한국 정치에서 강한 상징성을 지닌다. 개혁, 참여민주주의,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가치와 동시에 정치적 진영성을 함께 내포한다. 특히 현직 대통령이 노무현 정신의 계승을 강조한 상황에서, 야권 지도부 입장에서는 자칫 ‘정치적 프레임’에 편입될 수 있다는 부담이 작용했을 수 있다. 추도식 참석이 곧 정책적 동의나 노선의 승인으로 해석될 가능성을 경계했을 가능성이다.

둘째, 현 한국 정치의 구조적 양극화다. 한국의 사회갈등지수는 OECD 평균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해왔고, 최근 10여 년간 정치적 양극화는 더욱 심화됐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이런 환경에서 초당적 상징 행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과거에는 전직 대통령 장례식이나 국가적 추모 행사에 여야 지도부가 대거 참석하며 최소한의 정치적 공통분모를 확인하곤 했다. 그러나 최근 정치 환경은 ‘연대의 공간’을 점점 축소시키고 있다.

셋째, 현안 중심 정치의 가속화다. 현재 정치권은 경제 침체 우려, 외교·안보 변수, 민생 현안 등으로 치열한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각 당은 지지층 결집을 우선 과제로 삼고 있으며, 중도 확장보다는 내부 단속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상징적 행사 참석은 ‘정치적 실익’이 낮다고 판단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직 대통령의 부재 역시 정치적 함의를 남긴다. 전직 국가원수의 추도식 참석은 단순한 개인적 추모를 넘어 ‘국가적 연속성’의 상징이다. 그러나 한국은 전직 대통령 다수가 정치적 논란이나 사법적 문제를 겪으며 퇴임한 특수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만큼 전직 대통령의 공개 행보는 항상 정치적 해석의 대상이 된다. 봉하의 선택은 ‘침묵의 메시지’였을 수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부재가 남기는 상징의 공백이다.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특정 정당의 자산이라기보다 한국 현대 정치사의 한 장면이다. 균형발전, 권력기관 개혁, 시민 참여라는 의제는 여야를 넘어선 국가적 과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정치권이 한 공간에 모이지 못했다는 사실은, 한국 정치가 합의의 최소 단위마저 축소시키고 있다는 방증처럼 보인다.

물론 참석 여부를 정치적 태도의 전부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정치에서 상징은 곧 메시지다. 참석은 연대의 신호가 되고, 불참은 거리의 신호가 된다. 그 신호가 반복될수록 정치의 분절은 고착화된다.

봉하마을은 조용했지만, 그 조용함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추모의 자리는 있었으나 초당적 정치의 장은 열리지 못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 강조했던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지금 한국 정치에 더 필요한 것은 시민의 힘 이전에, 정치 스스로의 성찰일지 모른다.

추도식의 빈자리들은 질문을 남겼다. 한국 정치는 과연 상징의 공간에서조차 함께 설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든 것일까. 아니면 이것 또한 지나가는 정치적 국면일 뿐일까. 답은 다음 선거가 아니라, 다음 ‘함께 서는 자리’에서 드러날 것이다.

💡 이 기사를 15초 이상 읽으면 포인트가 적립됩니다  |  포인트 이벤트 2회
🎉
+1P 적립 완료!
읽기 포인트가 지급되었습니다

박형록
parkrock@naver.com
다른기사 보기

0개의 댓글
로그인하면 댓글을 달 수 있습니다.
0 / 400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 대상을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경우 이용약관 및 관련법률에 의해 제재될 수 있습니다.
⊙ BEST댓글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