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란 다시 충돌…호르무즈가 세계경제를 흔든다
- 미군 IRGC 공습·이란 보복에 유가 급등…한국 에너지 안보도 비상
- 유조선 공격·해상운송 급감, 물가와 금리까지 흔드는 중동 리스크
- 중동 원유 의존도 70% 안팎인 한국, 수입선 다변화가 시급한 이유
[국제·경제] 다시 불붙은 호르무즈…유가 96달러, 한국 경제의 '해상 방어선'을 묻다
미군, 9월 5일 이란 원유운반선 3척 타격…브렌트유 주간 7.8%·WTI 9.7% 급등
해협 통항 평소의 3분의 1로…국내 주유소 값은 아직 16주째 하락, 시차가 남긴 경고
미국과 이란의 무력 충돌이 한 달여의 소강 국면을 깨고 다시 격화되면서, 세계 경제가 또 한 번 '호르무즈 리스크'와 마주하고 있다. 이번 국면의 성격은 이전과 다르다. 군사시설을 겨냥하던 공방이 원유 운반선이라는 경제 자산 자체를 표적으로 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전쟁의 전선이 병영에서 해상 물류로 옮겨간 셈이다.
1. 닷새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시간 순서를 정확히 짚을 필요가 있다. 모두 현지시간 기준이다.
9월 1일. 미 중부사령부(CENTCOM)는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목표물에 대한 공습을 개시했다고 발표했다. 타격 대상으로는 방공기지와 레이더 시스템, 해상 자산 및 시설, 기뢰 부설 능력, 통신기지가 거론됐다. 미군은 최근 호르무즈 해협에서 상선과 미군 장병을 겨냥한 IRGC의 공격 시도에 대한 대응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날 미국 매체 악시오스는 미군이 이란 정부 소유 유조선 2척을 공격했다고 보도했다. 미 행정부 관계자는 이것이 대통령이 승인한 '유조선에는 유조선' 방침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이란의 선박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이란 유조선을 직접 때린 첫 사례라는 것이 악시오스의 설명이다.
9월 2~3일. 이란은 중동 지역 미군 기지를 향한 미사일·드론 공격으로 맞대응했다. 쿠웨이트군은 자국을 향해 날아오는 미사일과 드론을 방공망으로 요격하고 있다고 밝혔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3일 브리핑에서 이란이 상선 공격을 중단하지 않는 한 대화에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9월 4일. 수에즈 운하로 이어지는 홍해 입구 바브엘만데브 해협 인근에서 예멘 정부군과 친이란 후티 반군 사이에 격렬한 교전이 발생했다. 하루 사망자만 최소 129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호르무즈에 이어 두 번째 관문까지 흔들린 것이다.
9월 5일. 중부사령부는 IRGC가 미 해군 함정 2척을 향해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데 대응해 이란 원유 운반선 3척을 타격했다고 발표했다. 하르그섬 연안의 '다우니'와 '스타크'를 무력화하고 '카일로'를 파괴했다는 내용이다. 브래드 쿠퍼 중부사령관은 공격이 계속될 경우 이란의 원유 수송 선단을 파괴하겠다는 경고를 내놨다.
여기서 독자가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 전시 상황에서 교전 당사국의 발표는 그 자체로 검증된 사실이 아니라 '주장'이다. 미국과 이란, 걸프 국가들이 각각 내놓는 피해 규모와 사망자 수치는 상당한 편차를 보이고 있으며, 실제로 국제 인권단체와 유엔 기구의 집계 역시 서로 다르다. 이 사안을 보도할 때 어느 한쪽의 발표를 그대로 사실로 옮기는 것은 저널리즘의 기본을 벗어난다.

2.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유가는 5거래일 내리 올랐다. 8월 31일 하락 마감 이후 9월 1일부터 5일 연속 상승 흐름이 이어졌다.
9월 2일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11월 인도분 브렌트유는 전장보다 1.04% 오른 배럴당 95.63달러에 마감했다. 7월 24일 이후 최고치다. 같은 날 뉴욕상업거래소의 10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0.88% 오른 91.01달러로 7월 23일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이 8월 28일 기준 미국 원유 재고가 전주보다 445만 배럴 줄어든 4억2,450만 배럴이라고 발표한 것도 상승 압력으로 작용했다. 시장 예상치인 110만 배럴 감소의 네 배가 넘는 감소폭이었다.
9월 3일 브렌트유는 장중 한때 97달러를 넘어섰다가 상승분을 반납하고 95.52달러로 소폭 하락 마감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평화 협상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 추가 상승을 제한한 것으로 분석됐다.
9월 4일 브렌트유는 다시 0.80% 올라 96.28달러로 마감했고 WTI는 0.20% 오른 91.48달러를 기록했다. 주간 기준으로 브렌트유는 6.97달러(7.8%), WTI는 8.08달러(9.7%) 뛰었다. 올해 들어 국제유가는 이미 40% 넘게 올랐다.
다만 이 국면을 '유가가 100달러에 고착됐다'고 규정하는 것은 성급하다. 3월 9일 WTI가 111.24달러까지 치솟았다가 하루 만에 88달러로 되돌아온 전례가 있듯, 현재 시장은 90달러대에서 지정학적 위험 프리미엄이 크게 확대된 고변동성 국면으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3. 진짜 변수는 '가격'이 아니라 '통항'
시장이 두려워하는 것은 유가 자체가 아니라 원유의 이동이 멈추는 상황이다.
이번 주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선박은 하루 4척 수준에 그쳤다. 최근 10일 평균인 약 13척을 크게 밑도는 수치이자 평소의 3분의 1 수준이다. 특히 원유 등 액체화물을 실어 나르는 탱커는 한 척도 통과하지 못한 날이 나왔다. 미국은 주요 항로의 기뢰를 제거해 국제 해운 항로가 열렸다는 입장이지만, 실제 운항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지난 몇 주간 공격이 줄면서 원유 수송량이 전쟁 이전의 절반 수준까지 회복되는 조짐을 보였으나, 이번 충돌로 다시 뒤집혔다.
호르무즈는 세계 원유 공급의 약 5분의 1이 지나는 길목이다. 이란은 휴전 기간 중 해협에 사실상의 검문소를 세우고 통행 선박을 심사하며 일부 선박에 통행세를 징수했다는 보도도 나온 바 있다. 해협의 실효 지배권 자체가 협상 카드가 되어 있는 구조다.

4. 국내 반응 — 주유소 가격은 아직 내려가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국내 주유소 가격은 아직 하락세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9월 첫째 주(8월 30일~9월 3일)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ℓ당 1,860.2원으로 전주보다 1.1원 내렸다. 16주 연속 하락이다. 경유도 0.7원 내린 1,844.5원을 기록했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1,906.6원으로 가장 높았고 대구가 1,833.0원으로 가장 낮았다.
그러나 같은 기간 국내 수입 원유의 가격 기준인 두바이유는 전주보다 배럴당 7.6달러 오른 99.9달러까지 치솟았다. 국제유가와 주유소 가격 사이에는 통상 2~3주의 시차가 존재한다. 지금의 하락세는 지나간 유가를 반영한 결과이고, 이번 주 급등분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업계에서 "16주 하락의 마지막 주"라는 표현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물가 방어선을 유지하고 있다. 유류세 한시 인하 조치는 9월 30일까지 연장된 상태로, 인하율은 휘발유 15%, 경유 25%, 부탄 25%다. 인하 전 세율 대비 리터당 인하폭은 휘발유 122원, 경유 145원, 부탄 51원이다. 정부는 또 8월 21일 9차 석유제품 최고가격을 8차와 동일하게 지정했다. 휘발유 1,784원, 경유 1,773원, 등유 1,380원이다.
산업통상부는 앞서 8월 2일 김정관 장관 주재로 '중동 전쟁 실물경제 긴급 점검회의'를 열고 호르무즈와 바브엘만데브 해협의 통항이 동시에 막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한 품목별 대책을 점검했다. 회의에서는 수에즈 운하와 이집트 수메드 송유관 등 우회 경로 활용 방안을 정유업계와 협의하고, 필요시 비축유 스와프 제도를 즉시 재개한다는 방침이 확인됐다. LNG의 경우 전체 도입 물량의 80% 이상을 비중동 지역에서 들여오고 있어 상당 기간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이 정부 평가다.
물론 낙관만 할 상황은 아니다. 정유업계에서는 통항 불안이 장기화하면 추가 계약이 필요한 시점부터 도입 여건이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된다. 우회 항로를 쓰면 운송 기간이 늘고 보험료와 운임이 함께 오른다. 그 비용은 결국 물류비와 생산비를 통해 화물차 운전자, 택배 종사자, 농어업인의 부담으로 전가된다.

5. '중동 70% 의존'이라는 통계는 이미 낡았다
여기서 이 기사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대목이 나온다. 한국의 원유 수입 구조는 지난 6개월 사이 실제로 바뀌었다.
에너지경제연구원(KEEI)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중동산 원유 의존도는 2024년 기준 71.7%였다. 오랫동안 '중동 70%'는 한국 에너지 안보를 설명하는 상수처럼 인용돼 왔다.
그런데 한국석유공사 집계 기준으로 올해 5~7월 국내 원유 도입 물량 중 비중동산 비중은 51.5%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 31.9%에서 19.6%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같은 기간 중동산 비중은 69.1%에서 48.5%로 20.6%포인트 줄었다. 비중동산이 절반을 넘어선 것은 사상 처음이다.
정책도 뒤따랐다. 정부는 2015년부터 원유 도입선 다변화 지원제도를 통해 비중동산 원유 도입 시 중동산 대비 운송비 초과분의 25%를 환급해 왔는데, 올해 4~6월에는 이를 석유수입부과금 납부 한도(ℓ당 16원) 내에서 전액 환급으로 확대했다. 기존 환급 규모가 연간 약 1,700억원 수준이었고, 전액 환급 확대로 1,275억원가량이 추가될 것으로 추산됐다.
즉 한국은 이번 위기를 '무방비 상태'로 맞은 것이 아니다. 다만 이 변화가 위기가 만들어낸 강제적 조정인지, 아니면 되돌릴 수 없는 구조 전환인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민간 정유사는 여전히 수송비가 저렴하고 대규모 장기 계약이 가능한 중동산을 선호한다. 유가가 안정되면 다시 중동으로 회귀할 유인이 크다는 뜻이다.

6.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확전을 차단할 위기관리 채널이다. 미국과 이란의 직접 대화가 어렵다면 오만과 카타르 등 중재국을 통해 최소한 민간 상선과 에너지 인프라를 공격 대상에서 제외하는 원칙부터 합의해야 한다. 상선 공격은 어느 쪽이 먼저 했든 전 세계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행위다.
둘째, 피해 정보의 독립적 검증 체계다. 교전 당사국의 발표만으로 사태를 판단하면 오판 위험이 커진다. 위성사진, 국제기구 현장조사, 선박자동식별장치(AIS) 데이터 등 복수의 독립 자료를 교차 검증하는 관행이 언론과 정부 모두에 필요하다.
셋째, 다변화를 '위기 대응'이 아니라 '상시 제도'로 전환하는 일이다. 지금의 비중동 51.5%는 전쟁이 만든 숫자다. 유가가 진정된 뒤에도 이 비중을 유지하려면 운임 차액 지원의 상시화, 환급 절차 간소화, 장기계약과 현물 조달의 적정 배합 같은 제도 설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넷째, 정제설비의 유종 유연성 확보다. 수입선을 넓혀도 정유공장이 특정 유종만 처리할 수 있으면 다변화는 서류상의 숫자에 그친다. 중질·고유황 중심 설비를 다양한 원유를 소화할 수 있도록 전환하는 투자에 대한 정책적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다섯째, 우회 경로와 비축의 실전 점검이다. 수에즈 운하와 수메드 송유관 활용, 비축유 스와프 제도는 문서상 준비돼 있다. 그러나 실제 가동 시 소요 시간과 병목 지점은 모의훈련을 통해서만 확인된다. 바브엘만데브까지 흔들리는 지금이 그 점검의 적기다.

이번 국면에서 주목할 것은 어느 쪽의 군사적 우열이 아니다. 원유 운반선이 정당한 군사 표적으로 취급되기 시작하면서, 세계 에너지 공급망 자체가 전장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유가를 좌우할 변수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호르무즈 통항량의 회복 속도, 미국과 이란의 공격 범위가 상선까지 확대될지 여부, 그리고 걸프 산유국의 수출 정상화 시점이다. 여기에 바브엘만데브 상황이 더해지면 우회로마저 좁아진다.
에너지를 전량 수입하는 나라에서 유가는 국제면 기사가 아니다. 호르무즈에서 발사된 미사일 한 발이 서울의 주유소 가격표와 기업의 물류비, 가계의 장바구니까지 움직인다. 이번 사태가 남기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에너지 안보는 더 이상 산업정책의 한 항목이 아니라 국가 경제안보의 본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