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40억 원으로 줄었지만, 핵심은 그대로였다…최태원·노소영 판결이 남긴 세 가지 기준

2심이 인정했던 1조 3,808억 원보다 약 4,368억 원 줄었지만, 법원이 내린 핵심 판단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을 여전히 부부 공동재산으로 인정했다.
노 관장의 혼인 기간 기여 역시 폭넓게 인정했다. 달라진 것은 주식을 언제 시점으로 평가할 것인가였다. 이번 판결은 단순히 수천억 원이 오간 이혼소송이 아니다.
기업인의 상속재산이 언제 공동재산으로 바뀌는지, 파기환송심에서 재산을 어느 시점으로 평가하는지, 그리고 대기업 총수의 경영권을 재산분할이 어디까지 흔들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을 다시 확인한 사건이다.
왜 1조 3,808억 원이 9,440억 원으로 줄었나
많은 사람은 "노 관장의 기여도가 낮게 인정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서 가장 큰 변수는 기여도보다 주식 평가 시점이었다.
2심 이후 SK㈜ 주가는 AI와 반도체 투자 기대감 등으로 급등했다. 2024년 4월 약 16만 원 수준이던 주가는 올해 파기환송심 변론 당시 장중 80만 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같은 지분이라도 어느 시점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재산 규모는 수조 원까지 달라질 수 있었다. 재판부는 결국 2024년 4월 항소심 변론종결일을 기준으로 주식 가치를 평가했다.
그 이유는 이미 이혼 자체가 대법원에서 확정됐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이혼과 위자료 부분은 그대로 확정하고 재산분할만 다시 심리하라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따라서 파기환송심은 새로운 이혼 재판이 아니라 재산분할 계산만 다시 하는 절차라는 점을 재판부는 강조했다. 결국 금액은 줄었지만 계산 방식이 달라진 결과일 뿐, 노 관장의 기여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결론은 'SK 주식도 공동재산'
이번 판결에서 법원이 유지한 가장 큰 원칙은 SK㈜ 주식을 공동재산으로 본 점이다. 최 회장 측은 해당 주식이 상속과 증여를 통해 형성된 특유재산이라고 주장했다. 특유재산이라면 원칙적으로 재산분할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법원은 혼인 기간 최 회장의 경영활동으로 기업 가치가 크게 상승했고 노 관장 역시 가사와 자녀 양육, 대외 활동을 통해 이를 유지·증가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판단했다.
즉, 주식을 처음 취득한 경위보다 혼인 기간 가치가 어떻게 형성됐는가를 더 중요하게 본 것이다. 이는 우리 법원이 오랫동안 유지해 온 재산분할 원칙과도 연결된다.
부부가 함께 형성한 경제적 성과는 직접 돈을 벌지 않았더라도 가사노동과 양육, 배우자의 사회활동 지원 역시 기여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파기 환송한 핵심 이유는 노태우 전 대통령 측의 300억 원 지원금이었다. 2심은 이 자금이 SK 성장의 중요한 기반이 됐다고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재산분할 기여도에 반영한 것은 잘못이라고 봤다.
파기환송심은 이 부분을 받아들여 300억 원은 제외했다. 또 혼인 관계 파탄 이전 최 회장이 처분한 일부 주식도 분할 대상에서 뺐다. 하지만 법원은 한편으로 파기환송심 진행 중 SK 주가가 크게 오른 점도 외면하지 않았다.
재산 가액 자체에는 반영하지 않았지만, 공평의 원칙에 따라 재산분할 비율을 정하는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고려했다. 그래서 노 관장의 몫은 35%에서 3분의 1(33.3%)로 소폭 조정됐다.
법률적으로는 대법원 취지를 따르면서도 실질적 형평성도 함께 고려한 절충이었다.
주식 대신 현금…경영권은 지켰다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는 SK㈜ 주식을 직접 나누지 않았다. 최 회장이 계속 주식을 보유하고 노 관장에게는 9,440억 원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대상분할 방식을 선택했다.
이는 경영권 안정성을 고려한 판단으로 해석된다. 만약 노 관장이 직접 SK㈜ 지분을 확보했다면 그룹 지배구조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이 있었다.
법원은 재산분할과 기업 지배구조를 분리하려 했다. 그러나 현금 지급 역시 새로운 과제를 남겼다. 9,440억 원은 개인이 즉시 마련하기 어려운 규모다.
법조계와 금융권에서는 배당금 활용, 주식담보대출, 일부 자산 매각 등이 재원 조달 방안으로 거론된다. 어떤 방식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최 회장의 지배력에도 일정한 영향이 생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9년 소송이 남긴 의미
2017년 시작된 이혼소송은 9년 동안 1심, 2심, 대법원, 파기환송심을 거쳤다. 1심은 665억 원, 2심은 1조 3,808억 원, 이번 파기환송심은 9,440억 원으로 결론이 달라졌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법리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첫째, 기업인의 상속재산이라도 혼인 기간 가치 증가분은 공동재산이 될 수 있다는 점.
둘째, 재산분할은 단순히 주식 가격이 아니라 혼인 기간의 공동 기여를 평가하는 절차라는 점.
셋째, 재산분할이 경영권을 직접 흔들기보다 현금 정산을 통해 균형을 맞추려 했다는 점이다.
최 회장 측은 판결문을 검토한 뒤 재상고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대법원이 이미 핵심 법리를 제시한 만큼 최종 결론이 크게 달라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법조계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이번 판결은 금액만 놓고 보면 2심보다 줄어든 결과다. 그러나 법원의 메시지는 오히려 분명해졌다.
'기업 승계로 얻은 재산'이라는 이유만으로 혼인 기간 형성된 가치까지 개인의 몫으로 볼 수는 없으며 동시에 기업의 경영권 역시 재산분할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
9년 동안 이어진 '세기의 이혼소송'은 거액의 재산분할을 넘어 한국 기업 오너가의 재산과 혼인, 그리고 경영권 사이의 경계를 다시 그은 판결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