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6-07-22 07:20 (수) 07.2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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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만의 가족여행…PV5 WAV가 ‘자동차’가 아니라 ‘움직이는 방…

23년 만의 가족여행…PV5 WAV가 ‘자동차’가 아니라 ‘움직이는 방’이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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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 PV5 WAV와 함께한 23년 만의 여행 이야기 '더 무빙 룸' 공개(사진=현대자동차)
병원과 집을 오가는 것조차 큰 준비가 필요한 사람에게 여행은 단순한 외출이 아니다. 호흡 보조 장치와 의료진, 보호자가 함께 움직여야 하고 이동 중 발생할 수 있는 위험까지 고려해야 한다. 차량에 오르는 순간부터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모든 과정이 하나의 의료행위에 가까워진다.

현대자동차그룹이 19일 공개한 영상 ‘더 무빙 룸(The Moving Room)’은 23년째 호흡 보조 장치와 함께 생활해 온 김온유 씨가 가족과 여행을 떠나는 과정을 담았다.

김씨의 여행에는 기아의 교통약자 특화 차량 ‘PV5 WAV’와 사회공헌 사업 ‘초록여행’, 의료진이 함께했다. 오랫동안 병원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생활해 온 한 사람이 가족과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는 실제 여정이다.

영상의 중심은 자동차 성능이나 첨단 기술이 아니다. 한 사람이 이동할 수 있게 되자 가족이 함께 움직이고 의료 공간 밖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생기며, 그동안 포기해야 했던 경험이 가능해지는 과정이다.

‘더 무빙 룸’이라는 제목도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이동이 어려운 사람에게 필요한 의료 환경과 익숙한 일상이 차량에 그대로 이어지고 그 공간 자체가 함께 움직인다는 뜻이다.

누군가에게 자동차 문턱은 계단보다 높다

비장애인에게 자동차는 목적지까지 빠르게 이동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나 휠체어 이용자와 중증 장애인, 호흡 보조 장치가 필요한 사람에게 자동차는 탑승부터 하나의 장벽이 될 수 있다.

휠체어에서 차량 좌석으로 몸을 옮겨야 하거나 보호자가 이용자를 직접 들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휠체어를 별도로 접어 실어야 하고 차량 내부에서 의료 장비를 안정적으로 고정할 공간도 필요하다.

승하차 과정에서 작은 충격이나 자세 변화가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에게는 차량의 바닥 높이와 출입구 위치, 경사로의 각도까지 안전과 직결된다.

기아의 첫 전용 목적기반차량인 PV5는 처음부터 용도에 따라 공간과 기능을 달리 구성하는 것을 전제로 개발됐다. 물류와 여객, 레저, 의료·복지 이동 등 사용 목적에 맞춰 차량 내부를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 기존 승용차를 개조하는 방식과의 차이다.

PV5 WAV에서 WAV는 ‘Wheelchair Accessible Vehicle’, 즉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차량을 뜻한다. 이 차량에는 국내 전기차 최초로 측면 출입 방식이 적용됐다.

휠체어 이용자가 차량 뒤쪽 도로로 진입하지 않고 인도와 가까운 측면에서 탑승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수동식 인플로어 2단 슬로프와 휠체어 고정장치, 안전벨트도 갖췄다.

측면 진입은 단순한 구조 변경처럼 보이지만 실제 이용자에게는 중요한 차이다. 후면 경사로 차량은 도로 위에서 승하차해야 하거나 차량 뒤쪽에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반면 측면 출입 방식은 인도 가까이에서 탑승할 수 있어 다른 차량과의 충돌 위험을 줄이고 보호자도 곁에서 이용자를 도울 수 있다.

기아는 개발 과정에서 휠체어 이용자와 보호자, 운전자의 의견을 반영했다고 설명한다. 보호자가 휠체어 이용자의 옆에서 승하차를 도울 수 있는 좌석 구조와 낮은 바닥, 완만한 경사로 역시 이러한 과정에서 설계됐다.

23년 만의 여행이 보여준 것은 기술보다 ‘선택권’이었다

영상 속 김씨의 여행이 특별한 이유는 목적지가 멀어서가 아니다. 그동안 이동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선택할 수 없었던 시간이 가능해졌다는 데 의미가 있다.

여행을 갈 것인지, 가족과 어디에서 시간을 보낼 것인지, 낯선 풍경을 바라볼 것인지 같은 결정은 대부분 사람에게 평범한 일상이다. 그러나 이동 수단이 충분하지 않은 교통약자에게는 이런 선택 자체가 제한된다.

장애인의 이동 문제는 흔히 차량 수나 교통비 문제로만 다뤄진다. 하지만 실제로는 교육과 취업, 의료, 문화생활, 가족관계 등 삶의 거의 모든 영역과 연결돼 있다.

이동하지 못하면 학교와 직장을 선택할 수 없고 병원을 정기적으로 이용하기 어려우며 가족 행사와 여행에도 참여하기 힘들어진다. 이동권이 다른 권리를 이용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불리는 이유다.

특히 의료 장비에 의존하는 중증 장애인의 이동에는 차량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조건이 따른다. 의료진 또는 숙련된 보호자가 동행해야 하고 장비에 전원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방법과 응급상황에 대응할 체계가 필요하다.

목적지에도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화장실과 숙박시설, 의료기관이 확보돼야 한다. 이번 여행도 PV5 WAV 한 대만으로 가능해진 것은 아니다.

김씨의 건강 상태를 이해하는 의료진과 가족, 차량을 제공하고 여행 일정을 지원한 초록여행의 협력이 함께 이뤄졌다.

모빌리티 기술이 실제 이동권으로 이어지려면 차량과 돌봄, 의료, 관광 인프라가 하나의 체계로 연결돼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동차가 사람을 실을 수 있다고 해서 곧바로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이동권은 차량에 탑승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목적지에서 머물고 경험하고 다시 안전하게 돌아오는 과정 전체가 가능할 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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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삽화이다.(일러스트=박경식 작가)
11만 명과 함께한 초록여행…사회공헌을 넘어 공공 이동망이 될 수 있을까

이번 영상 제작에 참여한 초록여행은 기아가 2012년 시작한 교통약자 여행 지원사업이다. 기아에 따르면 그동안 약 11만 명이 사업에 참여했다.

현재 PV5 WAV와 PV5 패신저, 카니발 등 특수 개조 차량 30대를 무상으로 빌려주고 여행을 지원하고 있다. 교통약자에게 차량을 빌려주는 사업은 단순한 자동차 제공 이상의 의미가 있다.

장애인 콜택시나 특별교통수단은 주로 병원 진료와 출퇴근 등 필수 이동에 집중된다. 지역을 넘어 장시간 움직여야 하는 가족여행이나 여가 활동에는 이용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초록여행은 이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약 11만 명이 이용했다는 성과는 동시에 교통약자의 여행 수요가 그만큼 크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전국적인 수요를 고려하면 차량 30대만으로는 필요한 이동을 충분히 감당하기 어렵다. 기업의 사회공헌 사업은 의미가 있지만 교통약자의 이동권이 기업의 선의에만 의존해서도 안 된다.

지방자치단체의 특별교통수단을 지역 경계와 이용 목적과 관계없이 쓸 수 있도록 개선하고 휠체어 탑승 차량을 대중교통과 택시 시장에 더 많이 보급해야 한다. 관광지와 숙박시설의 접근성을 높이는 정책도 함께 추진돼야 한다.

기아는 서울시와 협력해 PV5 WAV 구매 지원과 친환경 교통약자 이동 수단 확대를 추진하고 있으며 한국지체장애인협회와도 차량 보급 및 이동권 향상을 위한 협력에 나서고 있다.

PV5 WAV가 일부 복지기관이나 사회공헌 차량에 머물지 않고 장애인 택시와 의료기관, 복지시설, 가족의 자가용으로 확산할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과제다.

차량 가격과 유지비, 충전 환경, 개조 비용도 보급을 좌우한다. 전기차 특성상 장거리 이동 때 충전소의 휠체어 접근성과 충전기 조작 편의도 고려해야 한다.

접근 가능 차량을 개발하는 것과 실제로 이용 가능 가격에 보급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PBV의 가치는 얼마나 많은 짐을 싣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태우느냐에 있다

PBV는 물류와 배송 효율을 높일 미래형 상용차로 주목받아 왔다. 하나의 전용 플랫폼을 바탕으로 화물차와 승합차, 캠핑카, 의료 차량 등 다양한 형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에서는 목적에 맞춰 차량을 생산하고 운영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더 무빙 룸’은 PBV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공간을 바꿀 수 있다는 기술이 물류 효율뿐 아니라 기존 자동차가 배제했던 사람을 다시 이동의 주체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휠체어 탑승 차량은 완성된 승합차를 외부 업체가 사후 개조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이 경우 경사로 설치를 위해 바닥을 변경하고 좌석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구조적 제약이 발생할 수 있다.

PV5 WAV는 전용 전기차 플랫폼 단계부터 낮은 바닥과 넓은 실내, 휠체어 진입을 고려했다. 기아는 이를 통해 기존 외부 특장 방식보다 탑승 편의성과 안전성을 강화했다고 설명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설계가 특정한 소수를 위한 특별한 배려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낮은 바닥과 넓은 출입구는 휠체어 이용자뿐 아니라 고령자와 부상자, 유아차를 이용하는 가족에게도 편리하다.

한 사람의 접근성을 높이는 설계가 결국 더 많은 사람이 이용하기 쉬운 차량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다만 한 편의 감동적인 영상이 장애인의 이동 현실을 대신 설명할 수는 없다.

교통약자의 삶을 기업 브랜드의 이미지로만 소비하지 않으려면 차량 개발 이후의 책임이 더 중요하다. 실제 이용자의 의견을 반영하고 사고와 고장 상황에서의 구조 체계를 마련하며 접근 가능 정비·충전 인프라까지 확대해야 한다.

영상에서 김씨는 23년 만에 병원 밖 새로운 풍경을 마주했다. 그 장면이 특별한 감동으로 남는 동시에 질문도 던진다. 한 사람이 가족과 여행을 떠나는 일이 왜 23년을 기다려야 할 만큼 어려웠는가.

모빌리티 기술의 진정한 진보는 자동차가 얼마나 빠르게 달리고 얼마나 많은 기능을 갖췄는지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이동에서 배제돼 온 사람이 자신의 의지로 목적지를 정하고 가족과 같은 풍경을 바라볼 수 있게 됐는지가 더 중요한 기준이다.

PV5 WAV가 ‘움직이는 방’이라고 불린 이유는 넓은 실내 때문만이 아니다. 병원과 집에 머물러야 했던 한 사람의 일상이 처음으로 세상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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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아름 기자
sesfounta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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