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도 뒤집힌 지방 권력…민심은 '국정 안정'에 손 들었다
3대 권력 거머쥔 민주당, '풀뿌리'까지 바꿨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4일 새벽까지 이어진 개표 결과,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대부분의 지역을 석권하며 압승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국회 과반과 행정부를 쥐고 있던 민주당은 이번 선거로 지방 권력까지 확보하며 입법·행정·지방을 아우르는 '3대 권력'을 모두 손에 넣게 됐다.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서 민주당은 16곳 중 11곳에서 우세를, 국민의힘은 경북 1곳에서 확실한 우위를 보였고 나머지는 경합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실제 개표가 진행되면서 민주당의 우세 지역은 더 늘었다. 4일 새벽 개표 중반 기준 민주당은 서울을 포함해 최대 14곳까지 앞섰고, 국민의힘이 확실히 지킨 곳은 이철우 후보가 약 67%를 득표한 경북에 사실상 국한됐다.

수도권에서는 경기에서 추미애 민주당 후보가 55% 안팎의 득표로 첫 여성 광역단체장 기록을 예약했고, 인천에서도 박찬대 후보가 안정적 우위를 지켰다. 다만 최대 승부처로 꼽힌 서울시장 선거는 정원오 민주당 후보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개표 막판까지 1%포인트 미만의 초박빙 승부를 벌였다. 개표 초반 30%포인트 가까이 벌어졌던 격차는 자정 무렵부터 빠르게 좁혀졌고, 일부 투표소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개표가 지연되며 당선 확정이 이례적으로 미뤄졌다.
충청권에서는 대전(허태정)·세종(조상호)·충남(박수현)·충북(신용한)에서 민주당 후보들이 일제히 우위를 보였다. 4년 전 모두 국민의힘에 내줬던 '중원'을 되찾은 셈이다. 강원에서도 우상호 민주당 후보가 김진태 국민의힘 후보를 꺾으며 탈환에 성공했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주목할 대목은 '보수의 아성' 영남의 균열이다. 부산에서는 전재수 민주당 후보가 박형준 국민의힘 후보를 앞섰고, 울산에서도 김상욱 민주당 후보가 우위를 점했다. '보수의 심장'으로 불려온 대구에서조차 김부겸 민주당 후보가 추경호 국민의힘 후보와 끝까지 초접전을 벌였다. 경남 역시 김경수 민주당 후보와 박완수 국민의힘 후보가 막판까지 엎치락뒤치락하며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견고했던 지역주의 구도가 시대 흐름에 따라 점차 약화되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지방선거와 함께 전국 14개 지역구에서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는 민주당이 9곳, 국민의힘이 4곳, 무소속이 1곳에서 앞섰다. 기존 14곳 중 13곳이 민주당 지역구였던 점을 감안하면 국민의힘이 상대적으로 선전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대 관심 지역이던 부산 북갑에서는 한동훈 무소속 후보와 하정우 민주당 후보가 오차범위 안 초접전을 벌였다. 한 후보가 당을 떠나 3자 구도라는 핸디캡을 안고 출마했다는 점에서, 결과와 무관하게 그 행보 자체가 보수 진영 재편의 변수로 거론된다. 경기 평택을에서는 유의동 국민의힘 후보가 김용남 민주당 후보와 조국 조국혁신당 후보를 앞서며 당선됐고, 당의 명운을 걸었던 조국 대표는 고배를 마셨다.
전국 16개 시도 교육감 선거에서도 진보 성향 후보들이 다수 지역에서 우세했고, 227곳의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민주당이 과반을 크게 웃도는 우위를 보였다. 이번 지방선거 투표율은 60%대 초반으로, 1995년 첫 지방선거(68.4%)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높았다. 양 진영 지지층이 결집한 가운데 중도층이 대거 투표장으로 향한 결과로 풀이된다.
정치권은 이번 결과를 이재명 정부 출범 1년에 대한 **'중간 평가'**로 받아들이고 있다. 민주당은 유권자들이 '정권 안정론'에 손을 들어줬다고 자평한다. 60% 안팎을 유지해온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지방선거까지 그대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반면 국민의힘이 내세운 '독주 견제·정권 심판론'은 충분한 동력을 얻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강원택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은 이번 결과를 두고 집권 1년 차 정부에 힘을 실어준 의미라며, 국민의힘은 계엄·탄핵 국면을 거치고도 반성과 혁신이 부족했던 점이 패인이라고 진단했다. 탄핵과 정권 교체 직후 치러졌고 집권당이 영남 일부를 제외하고 전국에서 고른 우위를 보였다는 점에서, 2018년 지방선거와 닮은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의힘은 2024년 총선, 2025년 대선에 이어 이번 지방선거까지 전국 단위 선거 3연패에 빠졌다. 제1야당 기능 약화는 물론, 2028년 총선을 대비할 지역 조직 기반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당 안팎에서 제기된다. 당장 지도부 책임론과 노선 갈등이 불가피해 보인다. 다만 이는 거꾸로 보수 진영 내부의 쇄신 동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어, 향후 리더십 재편 방향이 정국의 또 다른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번 선거의 파장은 의석 변동을 넘어선다. 국정·입법 차원에서 3대 권력을 모두 쥔 여당은 미뤄온 개혁 입법에 속도를 낼 동력을 얻었지만, 견제가 약해진 만큼 책임의 무게도 커졌다. 경제 차원에서는 반도체 특수에 힘입어 경기 상승세가 뚜렷하고 코스피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흐름이지만, 이른바 'K형 양극화'와 소득·자산 격차, 부동산·물가 불안은 정부가 성과로 입증해야 할 과제다. 정당 정치 차원에서는 양당 구도의 한쪽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야권 재편 논의가 가속화될 수 있다. 시민 사회 차원에서 역대급 투표율은 정치적 효능감의 회복인 동시에, 유권자가 감시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승자에게는 권력의 크기만큼 책임의 무게가, 패자에게는 패배의 깊이만큼 성찰의 시간이 주어졌다. 풀뿌리 민심이 한 방향으로 크게 기울었지만, 4년 뒤 같은 민심이 어디로 향할지는 결국 지금부터의 성과와 태도에 달려 있다. 선거는 끝났고, 평가는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