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 총선 '학생 명단'의 도전: 14년 장기 집권 부치치 체제 흔드나
- 노비사드 참사에서 시작된 수평적 민주주의 실험, 과반 확보와 개표 분쟁 사이의 분수령
- 15만 대규모 집회와 전문가 무소속 연대, 헌법상 편법 권력 연장에 맞선 풀뿌리 저항
- 리튬 프로젝트·중국 자본 투명성 논란 속 여론조사 팽팽… 총리직 교체 노리는 부치치의 배수의 진
붕괴된 지붕 아래서 시작된 격랑:
노비사드 참사와 반부패 각성2024년 11월, 세르비아 제2의 도시 노비사드 철도역의 콘크리트 캐노피가 무너지며 16명의 소중한 목숨이 사라지는 비극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안전사고를 넘어 세르비아 사회 전체를 뒤흔든 '정치적 방아쇠'가 되었다. 해당 철도역은 중국 주도 철도 현대화 사업의 일환으로 수년간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거쳐 불과 몇 달 전 재개장한 시설이었기에, 시민들과 대학생들은 부실 공사의 배경으로 관료주의 부패와 깜깜이 계약을 강하게 의혹으로 제기했다.

참사 직후 대학생들은 거리로 나와 성역 없는 수사, 관련자 처벌, 시위 참가자 기소 철회를 촉구했다. 정치적 무관심층으로 여겨지던 청년 세대가 국가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묻는 저항의 중심에 선 것이다. 이들의 목소리는 단순한 분노 표출에 그치지 않고, 정부의 리튬 개발 사업을 둘러싼 환경오염 우려와 외국 자본 유치 과정의 불투명성 등 누적된 사회적 불만과 결합하며 전국적인 반부패 운동으로 확산했다.
거리의 구호에서 제도권 출정으로:
‘학생 명단’의 파격적 선거 전략2년여 간 대학 점거와 농성, 전국적 집회를 이어온 청년들은 기존 야당 세력이 제 역할을 못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정치적 대안이 되기로 결단했다. 이들이 결성한 선거 연합 '학생 명단-학생 승리(Studentska lista-Studenti pobeđuju)'는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주최 측 추산 16만 명(외신 추산 약 15만 명)이 모인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며 본격적인 총선 행보를 알렸다.

주목할 점은 이 정당의 구조적 특징이다. 학생 운동이 창당을 주도했으나, 정작 후보 명단에 학생 본인들의 이름은 올리지 않았다. 기성 정치권과의 차별화를 위해 심장내과 교수 일리야 스르다노비치를 비롯해 의사, 대학 교수, 농부, 배우, 전직 국립은행 총재 등 사회 각 분야의 전문성과 신망을 갖춘 무소속 인사 250명을 후보로 내세운 것이다. 이는 "정치 기술자가 아닌, 프로젝트와 지역사회를 실질적으로 이끌어본 전문가들이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명분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기 위함이었다.
14년 권력의 우회 전략:
부치치 대통령의 사임과 총리 출마이러한 도전에 맞서 2012년부터 집권여당 진보당(SNS)을 이끌며 장기 집권해 온 알렉산다르 부치치 대통령은 승부수를 던졌다. 헌법상 대통령 3선 연임이 불가능해지자, 2026년 9월 대통령직에서 사임하고 조기 총선을 통한 총리직 이전을 택한 것이다. 이는 사실상 권력의 축을 대통령실에서 총리실로 옮겨 장기 집권을 지속하려는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집권여당은 미디어 지배력과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행정 경험이 없는 주도 세력에게 국정을 맡길 수 없다"며 안정론을 강조했다. 반면 '학생 명단' 측은 "세르비아냐, 마피아냐"라는 강렬한 슬로건을 내걸고 기성 정치 엘리트의 이권 개입 및 사법부·언론 장악 문제를 집중 공격했다. 특히 민감한 외교·지정학적 논쟁 대신 생활 밀착형 반부패 개혁과 공정한 공공행정에 화력을 집중하며 풀뿌리 방문 운동을 전개했다.
여론조사 팽팽한 접전과 선거 후 위기 시나리오
10월 25일 총선을 앞두고 발표된 여론조사는 기관에 따라 크게 엇갈리며 안갯속 국면을 보여준다. 친정부 성향의 조사기관(Faktor Plus 등)은 여당 진영의 우세(약 48.6%)를 점치는 반면, 독립적 여론조사기관(NSPM, CRTA, BIRODI 등)은 '학생 명단'이 44.5% 대 42.7% 수준으로 여당을 근소하게 앞서거나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전체 조사 평균은 여당 45.0%, 학생 명단 42.5% 수준으로 오차범위 내 초박빙이다.

전문가들은 선거 결과 자체보다 투표 이후의 상황을 더 큰 리스크로 꼽는다. 승패가 수 퍼센트 차이로 갈릴 경우, 양측 모두 승리를 선언하거나 개표 부정 의혹을 제기하며 불복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어느 쪽도 단독 과반 의석(250석 중 126석)을 확실하게 점유하지 못할 경우 연정 구성 난항과 장기적인 정치적 불확실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시사점과 해법:
민주적 가치 복원과 제도적 신뢰 회복세르비아에서 펼쳐진 이번 사태는 권력의 장기 독점과 국가 기구의 부패가 어떻게 시민 사회의 직접적 저항을 불러일으키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정당 정치가 형해화된 구조에서 청년들이 주도해 전문가 중심의 연대를 구성한 것은 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도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대의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선거 과정의 철저한 공정성 확보, 언론의 자유 보장, 국가 주요 사업에 대한 투명성 제고가 선행되어야 한다. 향후 세르비아 사회가 정치적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표 과정에 대한 국제감시단의 엄격한 검증을 수용하고, 공공사업 검수 및 부패 척결을 위한 독립적 사법 절차를 마련하는 등 법치주의를 복원하는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