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보다 빠를까?" 전기차 4분 30초 충전 시대 개막
- 지리·BYD 메가와트 충전 경쟁, 한국 운전자에게 의미하는 것
- 숫자 뒤에 숨은 전력망·배터리 수명의 진실
- 초급속 충전 경쟁의 빛과 그림자, 그리고 한국의 과제
충전 4분 30초 시대… 이젠 '속도'보다 '충전 경험'이 승부처
지리·BYD 메가와트급 충전 경쟁 본격화… 전력망 부담·배터리 수명 논란 속 한국은 '설치 대수'에서 '품질'로 방향 전환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계산을 마치는 시간과 전기차 충전 시간의 차이가 빠르게 줄고 있다. 중국 지리자동차는 9월 23일 닝보에서 새 충전 시스템을 공개했다. 링크앤코 10과 지커 001이 배터리 잔량 10%에서 70%까지 4분 30초, 97%까지 8분 40초 만에 충전됐다는 것이 회사 측 시험 결과다. 지난 3월 BYD가 내세운 ‘5분 충전'보다 30초 빠른 기록이다.

충전기는 2,250kW, 차량이 받은 출력은 그 절반
숫자를 읽을 때 주의할 대목이 있다. 지리의 5세대 충전소는 커넥터 하나로 최대 2,250kW를 내지만, 시험에 쓰인 링크앤코 10이 실제로 받아들인 최고 출력은 1,093kW였다. 설비 출력과 차량이 소화하는 출력은 별개라는 얘기다. 지리는 AI가 배터리 내부 온도 변화를 30초 앞서 예측해 충전 전력을 배분한다고 설명했다. 충전소는 항저우·상하이·닝보·자싱·시안 등 5개 도시에 먼저 들어섰다. 2027년 말까지 충전기 10만 기 이상을 깔고, 그중 절반 이상을 새 방식으로 채운다는 계획이다.
BYD도 물러서지 않는다. BYD는 3월 5일 2세대 블레이드 배터리와 플래시 충전 기술을 내놓으며 10%에서 70%까지 5분, 97%까지 9분이면 충분하다고 밝혔다. 영하 30도에서도 20%에서 97%까지 12분이 걸린다는 설명이다. 중국 내 플래시 충전소는 이미 1만 곳을 넘어 연말 2만 곳을 향하고 있고, 2027년 말까지 유럽 3,000곳을 포함해 해외에 6,000곳을 세울 예정이다. 다만 두 회사의 차종과 배터리, 시험 조건이 달라 30초 차이로 기술 우열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시장 성장 주춤하자 '충전'이 차별화 카드로
속도 경쟁의 배경에는 시장의 변화가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Global EV Outlook 2026’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전기차 판매는 20% 늘어 2,000만 대를 넘었고, 신차 4대 중 1대가 전기차였다. 그러나 올해 1분기 판매는 약 390만 대로 1년 전보다 8% 줄었고, 감소는 중국과 미국에 집중됐다. 미국은 연방 세액공제 종료 여파로 1분기 판매가 3분의 1가량 꺾였지만, 유럽은 같은 기간 30% 늘었다. IEA는 그래도 올해 연간 판매가 2,300만 대, 신차 비중 30% 안팎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성장 속도가 들쭉날쭉해지자 업체들은 소비자를 움직일 무기를 찾고 있다. 사양과 가격이 엇비슷한 전기차 사이에서 충전 속도와 충전망이 차별화 수단으로 떠올랐다는 분석이다.

"작은 공장 하나 돌리는 전력"… 엇갈리는 시선
중국 안에서도 회의론이 나온다. 치루이자동차 인퉁웨 회장은 BYD의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1,500kW는 소규모 공장에 맞먹는 부하여서 지역 전력망을 흔들 수 있고, 잦은 급속충전이 배터리 수명을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BYD는 수명 저하는 없다고 반박하며, 계통에는 160kW로만 연결되는 370kWh급 저장장치를 두고 심야에 채웠다가 피크 때 꺼내 쓴다고 설명했다.
저장장치 방식에도 한계는 있다. 저장 전력이 바닥나면 뒤이어 온 차량은 같은 속도를 누리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중국 일부 이용자들이 광고된 충전 속도를 실제로는 얻지 못하고 있다는 현지 보도도 나왔다. 지리의 장더왕 임원 스스로도 충전 속도가 물리적 한계에 가까워져 앞으로 개선 폭은 작아질 수 있다고 인정했다. 산술적으로 2,250kW급 충전기 4대가 동시에 최대 출력을 내면 9MW다. 변압기와 배전망 증설 없이는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다.

한국, '몇 대 깔았나'에서 '얼마나 잘 되나'로
국내 상황은 어떤가. 현대차·기아는 800V 고전압 플랫폼을 일찍 상용화했지만, 아이오닉 6가 350kW 충전기에서 10%에서 80%까지 채우는 데는 약 18분이 걸린다. 반응은 엇갈린다. 일부 매체는 BYD가 충전 경험의 우위까지 앞세워 국내 승용차 시장에 본격 진입하면 현대차가 큰 위협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800V 플랫폼과 350kW급 인프라를 이미 갖췄고 그 이상의 출력을 연구 중인 만큼 경쟁력은 여전하다는 평가도 있다.
정부 정책의 무게중심도 옮겨가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올해 5,457억 원을 들여 급속 4,450기, 중속 2,000기, 완속 6만5,000기 등 총 7만1,450기 설치를 지원한다. 최소 성능기준에 못 미치는 충전기는 지원에서 빼고, 핵심부품인 파워모듈 평가에서 기준 미달이면 보조금을 20% 깎는다. 고장과 출력 저하로 인한 불만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2030년까지 급속 14만5,000기를 포함해 123만 기 이상을 보급한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해법은 '속도'가 아닌 '경험'의 설계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꼽는 과제는 몇 가지로 모인다. 먼저 제조사 발표 수치와 실제 성능 사이의 간극을 메울 표준화된 실차 충전 시험이 필요하다. 소비자가 같은 잣대로 비교할 수 있어야 과장 경쟁도 줄어든다. 전력망 문제는 저장장치와 스마트 충전, 시간대별 요금을 묶어 풀어야 한다. 모든 곳에 초고출력 충전기를 깔기보다 고속도로 휴게소엔 고출력, 대형마트처럼 오래 머무는 곳엔 중속을 두는 수요 기반 배치가 비용 면에서도 현실적이다. 배터리 수명과 안전에 대해서는 제조사 자체 시험을 넘어 독립적인 장기 검증 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무엇보다 자동차·배터리 기업, 충전사업자, 전력회사가 따로 움직여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운전자에게 중요한 것은 기록이 아니라 충전소에 도착했을 때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기다리지 않고, 예측 가능한 시간 안에 다시 출발할 수 있느냐다. 전기차 충전의 진짜 혁신은 '몇 분'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충전을 더 이상 불편으로 느끼지 않는 일상에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