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6-10-12 12:44 (월) 10.1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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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볼 권리’ 어디까지 보장해야 하나…대법 판결 이후 남은 4가지 과제

장애인 문화접근권 확대와 영화산업 비용 부담, 해법은 접근성 생태계 구축

대법원 “영화관 자막·화면해설 미제공은 차별”…10년 소송이 바꾼 ‘영화 볼 권리’

‘300석 이상·상영 3%’ 제한한 항소심 파기환송…장애인 문화권과 극장 비용 부담 사이 새 기준 요구

시각·청각장애인도 원하는 영화를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관람할 수 있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단순히 ‘장애인 전용 상영회’를 늘리는 차원을 넘어 영화관이 제공하는 문화서비스 자체의 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2026년 9월 3일 시각장애인과 청각·언어장애인 등이 영화관 사업자를 상대로 낸 차별구제청구 사건(2022다203507)에서 원심 일부를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 공식 판결요지에 따르면 쟁점은 영화관이 화면해설·자막과 이를 이용하기 위한 수신기기 등을 제공하지 않은 행위가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차별에 해당하는지, 그리고 법원이 어느 범위까지 적극적인 구제조치를 명할 수 있는지였다.

소송 상대방은 CJ CGV, 롯데시네마 운영사 롯데컬처웍스, 메가박스 운영사 메가박스 중앙 등 국내 주요 멀티플렉스 사업자다.

2-1 대법원 판결, 모두의 영화관.png

핵심은 ‘3%가 충분한가’였다

1·2심은 기본적으로 영화관의 편의 미제공을 차별로 인정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편의 제공 범위를 ‘300석 이상 상영관’과 ‘전체 상영 횟수의 3%’라는 조건으로 제한했다. 문제는 두 기준이 동시에 적용될 경우 실제 장애인 관객에게 제공되는 선택지가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었다.

대법원은 이 부분에서 원심이 영화관 사업자의 재정적 부담을 과도하게 고려했다고 판단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른 적극적 구제조치의 범위를 정할 때 사업자의 비용과 경영상 이해뿐 아니라 장애인이 제한받는 권리의 내용과 정도, 차별을 줄일 수 있는 다른 방법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이 곧바로 ‘모든 영화의 모든 상영회에 반드시 자막과 화면해설을 제공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파기환송심이 구체적인 편의 제공 범위를 다시 정해야 한다. 따라서 향후 쟁점은 장애인의 실질적인 선택권을 보장하면서도 제작·배급·상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기술적 제약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배분하느냐에 모일 전망이다.

10년 넘게 걸린 ‘같은 시간에 영화를 볼 권리’

소송은 2015년 시작됐다. 장애인 관객들이 요구한 것은 특정 날짜에 마련되는 특별상영회만이 아니었다. 비장애인처럼 보고 싶은 작품을 선택하고 가까운 극장에서 자신에게 맞는 시간대를 고를 수 있는 실질적 선택권이었다.

문화 접근권의 국제적 기준도 같은 방향이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 제30조는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를 인정하고, 영화·공연 등 문화 콘텐츠를 접근 가능한 형태로 이용할 수 있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규정한다.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 역시 장애인이 영화·연극·박물관·도서관 등 문화 콘텐츠와 시설에 접근 가능한 형식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각국이 제도적 조치를 확대할 것을 권고해 왔다.

2-2 모두를 위한 배리어프리 영화관.png

미국은 ‘특별상영’보다 개인용 장비 방식

해외 사례는 향후 파기환송심과 제도 설계에서 참고할 만하다.

미국은 장애인법(ADA) 시행규칙을 통해 디지털 영화가 폐쇄형 자막과 화면해설 기능을 포함해 배급되는 경우 영화관이 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일정 규모에 따라 자막 수신기와 화면해설 장비의 최소 보유량도 규정한다. 예컨대 디지털 상영관이 2~7개인 영화관은 최소 6개의 자막 장치를 갖추도록 하고 있으며, 화면해설 장비 역시 일정 수량 이상 확보하도록 한다.

주목할 점은 장애인 관객을 특정 시간대의 별도 상영으로 몰아넣기보다는 개인용 수신장치를 활용해 일반 상영시간에도 같은 영화를 볼 수 있게 하는 방향이다. 미국 법무부도 접근 가능한 기능이 포함돼 배급된 디지털 영화라면 원칙적으로 모든 예정 상영에서 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영국의 2026년 평등법 관련 서비스 지침 역시 영화관 체인이 각 지점에서 자막 상영을 운영하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 장비를 갖추는 것을 합리적 조정의 사례로 제시한다.

2-3 세계 영화관 접근성 비교 인포그래픽.png

장애인 권리 확대와 영화산업 비용, 둘 다 현실이다

판결 취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과 별개로 영화산업의 부담도 현실적인 쟁점이다.

영화관 업계는 장애인 관람 편의를 확대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공감하면서도 제작사·배급사·상영관 사이의 비용 분담, 기술표준 마련, 장비 구축 등이 함께 해결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개방형 자막·화면해설 버전을 별도로 제작할 경우 콘텐츠 제작비가 추가되고, 폐쇄형 방식은 수신장비 설치와 유지·관리, 직원 교육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번 문제를 ‘장애인 권리 대 영화관의 비용’이라는 단순한 대립으로 접근해서는 해법을 찾기 어렵다. 영화 제작 단계에서 접근성 데이터를 함께 만들고, 배급 단계에서 표준화된 파일로 공급하며, 상영관에서는 개인용 장비나 모바일 연동 기술 등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비용을 산업 전체에서 분산할 필요가 있다.

2-4 모두를 위한 영화, 함께 여는 극장.png

해법은 ‘몇 % 상영’보다 접근 가능한 생태계

첫 번째 과제는 **접근성 콘텐츠의 제작 표준화**다. 영화가 완성된 뒤 별도의 배리어프리 버전을 추가 제작하는 방식만으로는 비용과 시간이 커질 수 있다. 제작·후반작업 단계부터 자막과 화면해설 데이터를 함께 만드는 체계를 확대하면 비용을 낮출 여지가 있다.

두 번째는 **폐쇄형 접근기술 확대**다. 자막이나 화면해설이 필요한 관객만 개인 수신기기나 호환 장치를 이용하게 하면 일반 관객의 관람 환경을 크게 바꾸지 않으면서 장애인에게 더 많은 시간 선택권을 제공할 수 있다. 미국 제도가 참고 사례다.

세 번째는 **비용 분담 구조의 명확화**다. 접근권 보장은 법적 의무의 문제인 동시에 문화정책의 영역이다. 제작사와 배급사, 영화관 가운데 어느 한쪽에 비용을 집중시키기보다는 정부 지원, 기술개발, 표준화 정책을 결합해 시장 전체의 비용을 낮추는 방식이 필요하다.

네 번째는 **정보 접근성**이다. 어떤 영화와 시간대에 자막·화면해설이 제공되는지를 예매 홈페이지와 앱에서 명확히 표시해야 한다. 미국 ADA 규정도 자막과 화면해설 제공 여부를 상영시간 안내와 웹사이트·모바일 앱 등에 알리도록 하고 있다.

2-5 모두가 함께 보는 영화관.png

대법원이 던진 질문…“영화관에 들어갈 수 있는가”에서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가”로

이번 판결에서 눈에 띄는 또 하나의 장면은 대법원이 처음으로 ‘이지리드(Easy-Read)’ 방식의 판결서를 제공하고 선고 과정에서 수어통역을 지원했다는 점이다. 복잡한 법률 문장을 쉬운 표현과 시각자료로 전달함으로써 사법정보 자체의 접근성을 높이려는 시도였다.

결국 이번 판결의 의미는 장애인이 영화관 건물에 물리적으로 들어갈 수 있느냐를 넘어선다. 같은 영화를 같은 사회 구성원들과 비슷한 시간에 선택해 볼 수 있는지가 문화 접근권의 새로운 기준으로 떠오른 것이다.

다만 대법원은 구체적인 상영 비율이나 장비 수량까지 확정하지 않았다. 이제 공은 파기환송심과 정책당국, 영화산업으로 넘어갔다. 장애인의 선택권을 실질적으로 넓히면서 영화산업이 감당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 그것이 10년 넘게 이어진 소송이 한국 사회에 남긴 다음 과제다.

주요 출처: 대법원 2026년 9월 3일 중요판결 요지(2022다203507),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제30조, 미국 법무부 ADA Title III 영화관 자막·화면해설 규정, 영국 Equality Act 2010 서비스 지침, 국내 주요 언론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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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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