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6-06-27 16:23 (토) 06.2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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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강진이 드러낸 또 하나의 재난…국가의 취약한 시스…

베네수엘라 강진이 드러낸 또 하나의 재난…국가의 취약한 시스템이 피해를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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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진 베네주엘라의 모습이다.(사진=SNS)
베네수엘라를 강타한 규모 7.2와 7.5의 연속 강진은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 국가의 사회·경제적 취약성이 얼마나 큰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두 차례의 강진은 40초도 채 되지 않는 시간 간격으로 발생했고, 이후에도 30차례가 넘는 여진이 이어지면서 구조 작업은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지 주민들은 무너진 건물보다 계속되는 여진에 대한 공포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거리와 공터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카라카스 시민들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했지만, 구조 작업이 본격화될수록 피해 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는 수백 명 수준이지만 부상자는 이미 천 명을 넘어섰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이번 지진이 최악의 경우 수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낳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실제 피해는 앞으로 며칠간 진행될 구조 작업을 통해 조금씩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참사는 단순히 규모 7.5라는 숫자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왜 같은 규모의 지진이 어떤 나라에서는 수십 명의 희생으로 끝나고, 다른 나라에서는 수천 명, 수만 명의 피해로 이어지는지 그 배경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40초 사이 이어진 두 차례 강진은 구조 골든타임을 무너뜨렸다

이번 지진의 가장 큰 특징은 하나의 강진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첫 번째 규모 7.2의 지진이 발생한 직후 더 강한 규모 7.5의 지진이 이어졌고, 이후에도 수십 차례의 여진이 계속됐다.

연속 지진은 이미 균열이 생긴 건물을 추가로 붕괴시키는 것은 물론 구조대의 접근 자체를 어렵게 만든다.

건물이 한 번 무너지면 잔해 속 빈 공간이 생존자의 생명을 지키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여진이 반복되면 그 공간마저 붕괴될 가능성이 커진다.

구조대 역시 언제 건물이 다시 무너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신속한 수색과 안전 확보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한다.

이번 지진이 야간에 발생한 것도 피해를 키운 요인이다. 많은 주민이 잠든 상태에서 강진이 발생했고, 정전과 통신 장애까지 겹치면서 초기 대피가 늦어졌다.

구조 장비와 의료 인력도 어둠 속에서 이동해야 했고, 일부 지역은 도로가 끊기면서 중장비 접근이 지연됐다.

재난 전문가들이 지진 발생 후 72시간을 '골든타임'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기간 생존자를 구조할 가능성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구조 속도가 늦어질 수밖에 없어 인명 피해가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베네수엘라는 지진 위험 지역이지만 재난 대비는 경제난 속에 멈춰 있었다

베네수엘라는 원래 지진이 드문 나라가 아니다. 국토는 카리브판과 남아메리카판이 만나는 활성 단층대 위에 놓여 있다. 두 지각판이 서로 밀고 비틀리는 힘이 오랜 기간 축적되면서 대형 지진이 반복적으로 발생해 왔다.

1812년 카라카스 대지진으로 최대 3만 명이 숨졌고, 1900년에는 규모 7.7의 강진이 도시를 초토화했다. 1967년과 1997년에도 각각 수백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문제는 이러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내진 보강과 도시 재정비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베네수엘라는 오랜 경제 침체와 초인플레이션, 국제 제재를 겪으면서 공공 인프라 유지·보수에 필요한 투자 여력이 크게 감소했다.

병원과 도로, 전력망뿐 아니라 건축물 안전관리 역시 장기간 방치됐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피해가 집중된 지역에는 철근콘크리트 구조보다 벽돌이나 흙벽돌을 쌓아 만든 주택이 여전히 적지 않다. 이러한 건물은 수직 하중에는 강하지만 지진처럼 좌우로 흔들리는 힘에는 매우 취약하다.

결국 이번 참사는 자연의 힘뿐 아니라 오랜 기간 누적된 사회적 취약성이 동시에 드러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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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으로 완파된 건물의 모습이다.(사진=SNS)
빈민가와 노후 인프라가 피해를 더욱 키웠다

이번 강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 가운데 하나는 경사지와 해안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저소득층 주거지역이다.

베네수엘라 주요 도시에서는 산비탈에 주택이 밀집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지역은 기반 공사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택이 들어선 경우가 적지 않아 지진이 발생하면 붕괴 위험이 훨씬 높다.

유엔에 따르면 피해가 집중된 라과이라주에서는 이미 100채가 넘는 건물이 완전히 파괴됐다. 상당수 건물은 현대식 내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노후 건축물이었다.

도로와 교량 파손도 구조 활동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일부 지역은 차량 진입 자체가 불가능해 중장비 대신 인력에 의존한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병원 역시 환자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응급의료 체계가 한계에 이르고 있다는 현지 보도가 나오고 있다.

재난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규모로 닥치지만 피해는 사회적 조건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이번 강진은 경제적 취약계층이 자연재해에도 가장 큰 위험을 떠안는 현실을 다시 보여주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구조를 넘어 국가 시스템의 복원이다

국제사회는 이미 긴급 지원에 착수했다. 유엔은 구조 장비와 의료 지원뿐 아니라 식수와 식량, 임시 거주시설 확보를 위한 국제 공조를 요청했다.

톰 플레처 유엔 인도주의·긴급구호 부사무총장은 "앞으로 몇 달 동안은 베네수엘라 정부를 지원하기 위한 대규모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진정한 과제는 구조 이후에 시작된다. 주택을 잃은 이재민의 장기 거주 문제, 학교와 병원의 복구, 전력과 통신망 정상화, 도로와 항만 복원 등 국가 기능을 회복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경제 기반이 약한 국가일수록 재난 이후 복구 속도가 늦어질 가능성이 높다. 국제사회의 지원 역시 단기 구호에 그치지 않고 중장기적인 재건 프로그램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이번 강진은 자연의 위력보다 국가의 회복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줬다

지진은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지진이 대형 참사로 이어질지는 국가의 준비 수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내진 설계 기준, 노후 건축물 관리, 응급의료 체계, 구조 인력과 장비, 전력과 통신망, 국제 공조 시스템은 모두 재난 피해를 줄이는 핵심 요소다.

베네수엘라는 이번 강진을 통해 자연재해 자체보다 사회 시스템의 취약성이 얼마나 큰 피해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다시 확인하고 있다.

무너진 건물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세울 수 있다. 그러나 국가의 대응 체계와 사회적 신뢰가 무너지면 복구에는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이번 강진은 단순한 지질학적 사건이 아니라, 국가가 얼마나 재난에 대비하고 사회를 보호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복합 재난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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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hyunse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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