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6-06-27 20:07 (토) 06.2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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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경쟁의 시작이다…미국·이란 협정이 …

평화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경쟁의 시작이다…미국·이란 협정이 다시 쓰는 21세기 중동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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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삽화이다.(일러스트=박경식 작가)
미국과 이란이 스위스에서 열린 첫 고위급 평화 회담에서 최종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단계별 로드맵 마련에 합의하면서 중동 정세가 예상보다 빠르게 안정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미국은 즉각 이란산 원유 수출을 허용하는 60일짜리 제재 유예 조치를 발표했고 이란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와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한 항행 보장에 협력하기로 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양국의 군사 충돌 가능성이 거론됐던 상황으로 보면 상당한 변화다. 국제유가 역시 즉각 반응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가 완화되면서 유가는 하락세로 돌아섰고 해상 물류 시장 역시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단순한 중동의 긴장 완화나 외교적 성과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게 좁은 시각일 수 있다. 우리는 지금 미국과 이란의 관계 정상화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21세기 국제 질서의 핵심 축 가운데 하나인 에너지 공급망과 해상 운영 체계가 새롭게 재설계되는 역사적 전환점을 목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쟁의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의 전쟁은 영토를 점령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군대를 이동시키고 국경선을 바꾸는 국가가 승자가 됐다. 그러나 21세기의 패권 경쟁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

에너지와 물류, 데이터와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국가가 새로운 영향력을 확보하는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총성이 멈췄다고 해서 경쟁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짜 경쟁은 이제부터 시작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전쟁은 끝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번 미국과 이란의 협상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협상의 핵심 의제가 핵무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양측은 핵 프로그램보다 호르무즈 해협의 운영 방식과 제재 완화, 동결 자산 처리, 휴전 감시 체계 구축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이는 매우 상징적인 변화다.

과거 국제정치의 중심은 군사력이었다. 누가 더 강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는지가 국가 경쟁력의 기준이 됐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국제 사회는 누가 더 안정적인 공급망을 유지할 수 있는가를 더 중요하게 평가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같은 흐름을 보여줬다.

전쟁 자체보다 에너지 공급 차질이 세계 경제에 더 큰 충격을 줬다. 코로나19 팬데믹 역시 의료 위기가 아니라 공급망 위기로 확산하면서 각국의 산업 시스템을 흔들었다.

이번 중동 사태도 다르지 않다. 전쟁은 군사적 승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와 물류 시스템이 정상화되는 순간 비로소 종료되기 시작한다.

현대 국제정치에서 평화는 더 이상 전쟁의 반대말이 아니다. 평화는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새로운 기술이 되고 있다.

이번 60일 로드맵은 단순한 외교 일정표가 아니다. 전쟁 이후의 질서를 설계하는 첫 번째 운영 계획서에 가깝다. 21세기의 경쟁은 영토를 차지하는 경쟁에서 시스템을 관리하는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중동의 바닷길이 아니라 세계 경제의 심장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 자산 가운데 하나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약 20~25%, 액화천연가스(LNG)의 약 20%가 이 해협을 통과한다.

폭 수십 킬로미터에 불과한 좁은 바닷길이지만 사실상 세계 경제의 심장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한국과 일본, 중국과 인도는 물론 유럽의 주요 산업 국가들 역시 이 해협의 안정성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

이곳의 불안정성은 곧바로 국제유가와 물류비용 상승, 환율 변동성 확대라는 연쇄 반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란의 전략 변화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해협 봉쇄 자체가 군사적 억제 수단이었다면 이제는 관리 권한과 안전 보장을 협상 자산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변화다.

21세기의 지정학은 영토보다 통로의 가치가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와 희토류, 원유와 데이터, 해저 케이블까지 모든 것이 연결망을 통해 움직인다.

결국 미래의 패권은 더 많은 영토를 보유한 국가가 아니라 더 많은 연결망을 관리하는 국가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단순한 바닷길이 아니다. 세계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운영 시스템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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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삽화이다.(일러스트=박경식 작가)
미국의 진짜 경쟁 상대는 이란이 아니라 중국이다

이번 협상을 미국과 이란의 양자 관계로만 해석하면 국제 질서의 핵심 흐름을 놓칠 수 있다. 미국의 진짜 경쟁 상대는 중국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 에너지 수입국 가운데 하나이며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매우 높다. 호르무즈 해협의 안정성은 중국 제조업 경쟁력과 직결되고, 이는 다시 미국과의 패권 경쟁으로 이어진다.

미국의 중동 전략도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중동 자체를 통제하는 데 집중했다면 지금은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최근 미국의 주요 싱크 탱크들은 에너지 공급망을 미·중 경쟁의 핵심 변수 가운데 하나로 분석하고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변화다.

평화는 목표가 아니라 공급망 안정을 위한 수단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동에서 승리하려는 것이 아니다. 중동이 세계 경제의 불안 요소가 되지 않도록 관리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21세기 패권 경쟁은 군사력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경제와 기술, 공급망과 에너지 운영 능력이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으로 연결되고 있다.

앞으로의 승부는 누가 더 많은 무기를 보유했느냐보다 누가 더 안정적인 운영 체계를 구축할 수 있느냐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도 더 이상 혼자 중동 질서를 설계할 수 없는 시대에 들어섰다

이번 협상은 미국의 영향력 약화보다 더 중요한 사실을 보여준다. 질서를 설계하는 행위자가 지나치게 많아졌다는 점이다.

미국과 이란, 이스라엘과 레바논, 걸프 국가들, 유럽의 에너지 수입국들, 중국과 인도 같은 거대 소비국들이 모두 하나의 시스템 안에 연결돼 있다.

과거처럼 한 국가가 단독으로 질서를 설계할 수 있는 시대는 사실상 끝나가고 있다. 우리는 단극 체제에서 다극 체제로 이동하고 있다. 현대의 전쟁도 달라지고 있다.

군사적 승리가 곧 전쟁의 종료를 의미하지 않는다. 에너지 시장과 금융 시스템, 해상 운송과 공급망이 모두 정상화돼야 비로소 전쟁이 끝났다고 말할 수 있다.

총성이 멈추는 것보다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더 중요해지는 것이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상당 부분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호르무즈 해협의 안정성은 국내 물가와 산업 경쟁력, 환율과 기업 수익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번 협상은 먼 나라의 외교 뉴스가 아니다. 대한민국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적 변수라고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평화협정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번 미국과 이란의 합의는 하나의 평화협정이라기보다 새로운 국제 질서를 설계하기 위한 임시 계약서에 가깝다.

향후 60일 동안 진행될 핵 협상과 제재 해제, 동결 자산 관리와 호르무즈 해협 운영 체계 협상은 중동의 미래뿐 아니라 세계 경제의 방향까지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20세기의 패권 국가가 가장 강한 군대를 보유한 국가였다면 21세기의 패권 국가는 가장 안정적인 연결망을 운영할 수 있는 국가가 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리고 그 연결망은 더 이상 육지 위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호르무즈 해협과 해저 케이블, 반도체 공급망과 데이터센터, 인공지능 인프라와 우주 통신망까지 모두 하나의 거대한 운영 시스템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지금 미국과 이란의 평화 회담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시대가 저물고 운영의 시대가 시작되는 역사적 전환점을 목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후대의 국제정치학자들은 지금 이 시기를 단순한 중동 휴전이 아니라 세계 패권 경쟁의 중심축이 군사력에서 공급망 운영 능력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출발점으로 기록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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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hyunse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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