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6-07-03 22:33 (금) 07.0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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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력으로 기업은 움직이지 않는다"… 이재명 정부가 던진 산업…

"압력으로 기업은 움직이지 않는다"… 이재명 정부가 던진 산업정책의 새로운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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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서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를 진행하고 있다.(사진=청와대)
호남 반도체 투자 논란에 선을 그은 이재명 대통령은 산업을 '배분'하는 시대에서 경쟁력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시대로 정책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대한민국 산업정책은 오랫동안 하나의 질문 위에서 발전해 왔다. 국가는 산업을 어디에 배치해야 하는가. 산업화 시기 정부는 국가 성장전략에 따라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기업을 육성했다.

그리고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기 위해 공공기관 이전과 지방 산업단지 개발을 지속해 추진했다. 지역균형발전은 단순한 지역 정책이 아니라 국가 발전 전략의 핵심 축이었다.

그러나 인공지능(AI)과 반도체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에는 같은 질문에 다른 답이 요구되고 있다. 첨단산업은 행정구역 안에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연구개발과 인재, 공급망과 전력, 대학과 협력기업이 하나의 생태계를 형성할 때 경쟁력을 갖는다. 기업이 가장 효율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못하면 정치적 의지만으로는 첨단산업을 유지하기 어렵다.

이재명 대통령이 충남 아산에서 열린 충청권 첨단산업 보고회에서 "요즘 세상에 압력을 넣는다고 기업이 오겠느냐"고 말한 것도 이러한 현실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최근 호남 반도체 투자 이후 제기된 지역 형평성 논란과 '대기업 압박설'에 대해 직접 선을 그으면서 정부가 기업의 입지를 결정하는 방식보다 기업이 투자할 이유를 만드는 것이 산업정책의 핵심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특정 투자 논란에 대한 해명을 넘어 첨단산업 시대 국가와 기업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정책적 문제의식을 드러낸 발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역균형발전은 산업을 나누는 정책이 아니라 산업이 모일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정책

지역균형발전은 종종 산업을 지역별로 고르게 배분하는 정책으로 이해된다. 특정 지역에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지면 다른 지역에도 비슷한 규모의 산업을 유치해야 한다는 요구가 반복되는 것도 이러한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정치적으로는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문제지만, 첨단산업은 단순한 행정적 배분만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산업이기도 하다.

반도체 산업은 공장 하나를 건설한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설계기업과 소재·부품·장비 기업, 연구기관과 대학, 전문 인력, 안정적인 전력과 초순수, 국제 물류망이 하나의 생태계를 형성해야 지속적인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기반 없이 산업을 여러 지역으로 기계적으로 분산하면 기업의 비용은 증가하고 생산 효율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이 "광주에 반도체를 유치했으니 다른 지역에도 하나씩 나눠야 한다는 방식으로는 기업을 운영할 수 없다"고 언급한 것도 이러한 산업 구조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는 지역균형발전의 필요성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균형발전의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문제 제기에 가깝다.

앞으로의 균형발전은 산업을 나누는 경쟁보다 지역마다 차별화된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경쟁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역할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통제'에서 '설계'로 변화

이 대통령은 자신이 삼성전자의 투자를 압박했다는 시각을 "구태적 관치 생각"이라고 표현했다. 이 발언은 과거 산업정책과 현재 산업정책의 차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한국은 산업화 과정에서 정부가 금융과 세제, 인허가와 수출 정책을 적극 활용하며 산업 발전을 이끌었던 경험을 갖고 있다.

이른바 개발 국가 모델은 반도체와 조선, 자동차, 철강 산업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세계 시장이 개방되고 공급망이 글로벌화한 지금은 투자 결정의 기준이 크게 달라졌다.

첨단기업은 정부의 요청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연구개발 인력 확보 가능성과 공급망의 안정성, 에너지 인프라, 규제 환경, 지정학적 위험, 장기적인 수익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투자 지역을 선택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정부가 기업의 결정을 대신하기보다 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와 인프라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제공하느냐가 정책 경쟁력의 기준이 된다.

물론 이것이 정부 역할의 축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부는 전력망과 용수, 교통, 연구개발, 인재 양성, 규제 개선 등 민간이 해결하기 어려운 기반을 구축해야 하는 책임을 더 크게 안게 된다.

정부의 기능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직접 통제하는 역할에서 산업 생태계를 설계하는 역할로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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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삽화이다.(일러스트=박경식 작가)
AI 시대의 산업 경쟁은 공장이 아니라 생태계를 둘러싼 경쟁

이번 논란은 특정 지역의 반도체 투자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세계 산업 경쟁의 변화와 맞닿아 있다. 과거 제조업 경쟁은 얼마나 많은 공장을 유치하느냐가 핵심이었다.

그러나 AI 시대의 첨단산업은 생산시설 하나만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미국은 반도체 지원 정책을 통해 생산시설뿐 아니라 연구개발과 공급망까지 함께 육성하고 있다.

일본도 대학과 기업, 지방정부를 연결하는 첨단산업 클러스터 조성에 집중하고 있다. 유럽 역시 개별 기업 지원보다 반도체 생태계와 전략 산업의 자립 기반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지방정부의 역할도 바꾸고 있다. 지방정부는 더 이상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지원금을 제시하는 기관이 아니다.

기업이 장기간 안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정주 환경과 행정 서비스, 교육·연구 기반을 구축하는 전략적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앞으로 지역 경쟁력은 지원 규모보다 산업 생태계의 완성도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기업의 선택과 국가의 책임은 서로 대립하는 개념

기업의 자율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국가의 균형발전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첨단산업 시대일수록 정부는 기업이 수도권에만 집중하지 않도록 지방의 경쟁력을 높이는 정책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기업은 경제적 효율성을 우선하지만, 국가는 국가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앞으로의 산업정책은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하나는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최고의 투자 환경을 만드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그 경쟁력이 특정 지역에만 집중되지 않도록 전국의 산업 기반을 함께 성장시키는 일이다.

이 두 목표는 때로는 긴장 관계에 놓일 수 있지만, 어느 하나만 선택해서는 지속 가능한 산업정책을 만들기 어렵다.

이재명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이러한 균형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정부의 문제의식을 보여준 사례로 볼 수 있다.

산업정책의 성패는 기업을 얼마나 강하게 움직였는가가 아니 기업이 스스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환경을 얼마나 경쟁력 있게 만들었는가에 달려 있다는 인식이다.

AI 시대의 산업정책은 '배분'이 아니라 '경쟁력을 설계하는 능력'

이번 논란은 특정 지역의 투자 규모를 둘러싼 정치적 공방으로 끝날 사안이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산업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진화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이다.

산업화 시대에는 국가가 산업을 배치하는 능력이 성장의 원동력이었다면, AI 시대에는 기업과 인재, 기술이 스스로 모여드는 환경을 설계하는 능력이 국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지역균형발전의 중요성을 약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국가는 첨단산업의 효율성과 지역의 균형발전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더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됐다.

정부가 산업의 방향을 제시하되 시장의 판단을 존중하고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면서도 지역의 성장 기반을 함께 확충하는 정책 역량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결국 "압력으로 기업은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발언의 의미는 단순히 관치를 부정하는 데 있지 않다. 국가가 기업의 결정을 대신하는 시대에서 기업이 가장 경쟁력 있는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와 인프라, 인재와 생태계를 설계하는 국가가 경쟁력을 갖는 시대로 산업정책의 기준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데 있다.

앞으로 대한민국 산업정책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기업을 특정 지역으로 보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기업이 대한민국을 가장 먼저 투자하고 싶은 곳으로 만들었는가에 의해 평가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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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hyunse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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