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6-06-14 11:17 (일) 06.14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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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노동시장 딜레마] "나이 들면 소득절벽, 젊으면 취업절벽…

[기획-노동시장 딜레마] "나이 들면 소득절벽, 젊으면 취업절벽"…65세 정년 연장의 두 얼굴

연금 공백 메우는 중년의 안도 VS 바늘구멍 일자리 더 좁아지는 청년의 비명, 상생의 길은 없나

# 장면 1: 서울 마포구의 한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김진우 씨(57)의 하루는 매일이 살얼음판이다. 법정 정년인 60세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3년. 하지만 고등학생과 대학생인 두 자녀의 교육비, 그리고 여전히 남아 있는 주택담보대출 잔액을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온다. 김 씨는 "정년이 지나고 나면 당장 소득이 끊기는데, 국민연금은 65세가 되어야 나온다"며 "5년 동안 무엇을 먹고살아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다"고 토로했다.

# 장면 2: 취업 준비 3년 차에 접어든 이민지 씨(26)는 최근 정부의 정년 연장 논의 뉴스를 접하고 깊은 무력감에 빠졌다. 공공기관 입사를 목표로 준비 중인 이 씨는 "안 그래도 신규 채용 규모가 매년 줄어들고 있는데, 선배 세대들이 5년 더 자리를 지키면 우리 같은 신입들이 들어갈 자리는 아예 사라지는 것 아니냐"며 "기성세대의 고용 안정을 위해 청년세대의 기회가 희생되는 느낌"이라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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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간의 고용 균형과 갈등 은퇴불안과 취업불안이 교차하는 대한민국 노동시장의 세대 간 딜레마

대한민국 노동시장이 거대한 폭풍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법정 정년을 2037년까지 65세로 단계적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공식화하면서, 세대 간 고용 구조를 둘러싼 사회적 긴장이 임계점을 향해 치닫는 모양새다.

유력하게 검토되는 안은 현재 60세인 정년을 2029년 61세로 상향하는 것을 시작으로, 2년마다 1세씩 늘려 최종적으로 65세까지 안착시키는 시나리오다. 정년 연장과 함께 기업의 고령자 재고용 의무 연령도 함께 상향 조정되는 구조다.

표면적으로 이 정책은 급격한 고령화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고용 안정망'의 확충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중년층의 '은퇴불안'과 청년층의 '취업불안'이 쇠사슬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한국 노동시장의 고질적인 구조적 경직성이 자리 잡고 있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숫자를 60에서 65로 바꾸는 차원의 접근으로는 이 해묵은 딜레마를 결코 풀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1. 중년의 생존권: 연금 공백과 소득절벽의 공포

중년층이 정년 연장 뉴스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가장 큰 이유는 이른바 '연금 공백(Income Gap)'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출생 연도에 따라 단계적으로 늦춰져, 1969년생 이후부터는 만 65세가 되어야 첫 연금을 받는다. 반면 현행 법정 정년은 만 60세에 멈춰 서 있다. 퇴직하는 순간부터 연금을 받을 때까지 최대 5년 동안 소득이 완전히 사라지는 '소득 소생크(소득 절벽)' 구간이 발생하는 것이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한국 고령층(55~79세)이 가장 오래 근무한 주된 일자리를 그만두는 평균 연령은 만 49.4세에 불과하다. 법정 정년인 60세를 채우는 비율도 낮을뿐더러, 퇴직 후 재취업 시장에 뛰어들 경우 임금 수준은 기존의 50~60% 선으로 급락한다. 주된 일자리에서 물러난 고령층의 상당수가 경비, 청소, 단순 노무 등 비정규직이나 단기 계약직으로 전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에 초혼 연령이 늦어지면서 50대 후반, 60대 초반까지도 자녀 교육비나 주거비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 한국 특유의 사회적 가계 구조가 은퇴불안을 더욱 증폭시킨다. 경제학 전문가들은 "한국의 고령자 빈곤율은 38.1%(OECD 평균 13.1%)로 회원국 중 압도적 1위"라며 "정년 연장은 복지 재정의 파탄을 막고 고령층의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불가피한 제도적 보완책"이라고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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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공백기(연금 절벽) 법정 정년퇴직 이후 국민연금 수급까지 발생하는 소득 공백기의 위험한 소득절벽 구조

2. 청년의 구직권: 경직된 내부노동시장과 진입 장벽

반면 청년층의 시선은 싸늘하다. 그들이 느끼는 취업불안은 중년층의 생존 공포만큼이나 실존적이다.한국 노동시장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대기업·공공부문 중심의 강력한 '내부노동시장' 구조다. 한번 진입하면 높은 고용 안정성과 고임금을 보장받지만, 그 성벽 안으로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정년이 65세로 늘어난다는 것은 이 철밥통으로 비유되는 상위 직급의 자리가 5년 더 유지된다는 것을 뜻한다.

국내 주요 경제연구소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정년 연장으로 인해 기존 근로자가 잔류할 경우 기업의 신규 채용 여력은 단기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노동경제학계 일부에서는 "고령 노동자와 청년 노동자는 대체 관계가 아니라 보완 관계"라며 정년 연장이 청년 고용을 직접적으로 잠식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높은 서구 사회의 이야기일 뿐, 정규직 보호 장벽이 높고 대기업-중소기업 간 이중구조가 극심한 한국 시장에서는 체감 효과가 완전히 다르게 나타난다.

청년들이 맞닥뜨린 진짜 문제는 전체 채용 규모의 수치적 감소보다, 양질의 일자리인 '좋은 일자리의 진입 문' 자체가 극단적으로 좁아진다는 점이다. 대기업과 공공기관이 고령층 인건비 부담을 이기지 못해 신규 채용을 동결하거나 인턴 등 단기직 위주로 채용 구조를 바꾸면, 청년 세대는 구직 기간이 장기화되면서 생애 소득 자체가 낮아지는 '이력 현상(Scarring Effect)'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2 정년 연장 시계를 사이에 둔 중년과 청년의 고용 갈림길.png
2 정년 연장 시계를 사이에 둔 중년과 청년의 고용 갈림길

3. 핵심 아킬레스건: 임금체계와 생산성의 심각한 괴리문제의 본질은 '정년'이라는 나이 그 자체가 아니다. 한국 기업 고유의 '연공서열형(호봉제) 임금체계'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근속연수가 30년 이상인 근로자의 임금은 신입 사원의 3배를 웃돈다. 이는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나이가 들고 근속이 쌓일수록 노동 생산성의 증가율보다 임금 상승률이 훨씬 가파르게 올라가는 구조인 셈이다.

이 같은 구조에서 정년만 65세로 늘리면 기업들은 꼼짝없이 세 가지 파괴적인 선택지에 직면하게 된다.

[기업이 마주할 세 가지 선택지]

1. 인건비 총액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신규 채용 극단적 축소'

2. 기존 고령 근로자의 임금을 강제로 깎는 '임금피크제 극대화' (법적 소송 리스크 동반)

3. 상시적 구조조정을 통한 '중장년층 조기 퇴직 압박 강화'

결국 임금 구조를 직무의 가치와 생산성에 연동되는 '직무급제'나 '성과급제'로 개편하지 않는 한, 정년 연장은 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세대 간의 밥그릇 싸움을 부추기는 도화선이 될 뿐이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현재의 호봉제를 그대로 둔 채 정년만 연장하는 것은 기업들더러 투자를 멈추고 고용 문을 닫으라는 소리와 같다"고 지적했다.

4. 사태의 본질과 사회적 반응

현재 이 사안을 둘러싼 사회적 전선은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다.

o 노동계(한노총·민노총 등): "65세 정년 연장은 초고령화 사회의 당면 과제이며 법제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기업들이 요구하는 임금 삭감이나 직무급제 도입에는 '우회적인 구조조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o 재계(경총·전경련 등): "법적 정년을 강제하기보다, 퇴직 후 계약직으로 다시 고용하는 '선택적 재고용' 제도를 먼저 확산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연공서열형 임금 체계 개편이 전제되지 않는 정년 연장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배수진을 쳤다.

o 정부·여당: 국민연금 고갈 시기를 늦추기 위한 연금개혁과 정년 연장을 동시에 맞물려 추진해야 하는 정치적 딜레마에 착착 빠져들고 있다. 자칫 청년 표심을 잃을까 극도로 조심스러워하면서도, 고령층 표심과 인구 구조적 위기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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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세에서 65세까지, 연금 공백과 정년 연장의 구조 분석도

5. 해외 사례가 주는 교훈: "단독 정책은 없다"

우리보다 훨씬 앞서 초고령 사회의 혹독한 터널을 통과한 해외 선진국들의 발자취는 한 가지 명확한 진리를 웅변하고 있다. 바로 세상에 ‘정년 연장 단독’으로 성공한 방정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나이의 숫자를 고치기 전, 고령층이 일할 수 있는 유연한 고용 영토를 먼저 개간하고 노동 생산성에 걸맞은 임금의 틀을 완전히 뜯어고쳤다.

가장 주목해야 할 모델은 이웃 나라 일본의 선택이다. 일본은 우리와 유사하게 급격한 고령화와 연금 재정 압박을 겪었지만, 한국처럼 법정 정년 자체를 일률적으로 단숨에 끌어올리는 무리수를 두지 않았다. 대신 이들이 선택한 카드는 이른바 ‘계속고용제도(재고용 방식)’였다.

만 60세 정년이 도래하면 근로자를 일단 퇴직시킨 뒤, 65세(현재는 70세까지 확대)까지 계약직 형태로 다시 고용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핵심은 기업의 숨통을 터준 '임금의 유연성'에 있었다. 재고용된 고령 근로자는 기존에 받던 정성적인 호봉제 임금의 60~70% 수준으로 보수를 과감하게 조정했다.

이는 고령층에게는 급격한 소득 절벽을 막아주는 안전망이 되었고, 기업에게는 인건비 폭탄을 피해 신규 청년 채용을 정상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었다. 철저하게 실리를 택한 사회적 타협의 결과물이다.

반면 독일은 노동 시장의 본질적인 생태계를 바꾸어 정년 연장의 충격을 흡수했다. 독일은 법정 정년을 만 65세에서 67세로 단계적으로 상향하는 과정에서, 수십 년간 다져온 ‘직무급 임금 체계’를 백분 활용했다. 독일의 노동 시장에서는 나이나 근속연수가 많다고 해서 월급이 자동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철저하게 '지금 어떤 가치의 일을 하고 있는가'와 '개인의 생산성이 어느 정도인가'로 몸값이 결정된다.

따라서 정년이 늘어나 고령층이 일터에 오래 머물더라도 기업이 짊어져야 할 추가적인 인건비 리스크가 거의 없다. 나이가 든 만큼 생산성에 부합하는 보수를 받기 때문에, 청년 세대의 일자리를 빼앗는 ‘세대 간 약탈’의 프레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고용 구조를 완성한 것이다.

이들과 반대로, 벼랑 끝 전술과 정교한 합의 없는 탑다운(Top-down)식 밀어붙이기가 어떤 비극을 낳는지는 프랑스의 사례가 극명하게 보여준다. 프랑스는 최근 정부가 연금 고갈을 막기 위해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상향하는 법안을 강행했다가 나라 전체가 거대한 불바다로 변하는 사회적 홍역을 치렀다.

구조적인 임금 체계 개편이나 노사정 간의 치열한 이해관계 조정 과정 없이, 진영 논리와 정치적 계산으로 정년(연금) 문제를 다루었을 때 맞이하게 되는 파국이다. 프랑스가 지불한 대규모 소요 사태와 국론 분열, 장기 파업이라는 사회적 비용은 오늘날 대한민국 노동 시장이 가장 뼈아프게 새겨야 할 반면교사(反面敎師)다.

결국 이 세 나라의 역사가 한국 시장에 던지는 메시지는 간결하고도 무겁다. 정년 연장이란 단순히 법 조문의 숫자 하나를 바꾸는 시혜성 정책이 아니라, 연금 수급 시기와의 정교한 톱니바퀴 결합, 그리고 ‘연공성을 배제한 유연한 임금 체계로의 대전환’이 동시에 우직하게 추진되어야만 성공할 수 있는 종합 예술이라는 점이다.

6. 세대 상생을 위한 대책과 출구전략

정년 65세 연장은 대한민국이 인구 절벽과 초고령화라는 미증유의 재앙을 넘기 위해 반드시 건너야 할 강이다. 그러나 정교한 교량 없이 무작정 강으로 뛰어들면 모두가 익사할 수 있다. 갈등을 넘어 상생으로 가기 위한 세 가지 대책을 제안한다.

첫째,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과 정년 연장의 법적 연계다. 정년을 늘려주는 대신, 일정 연령 이상의 근로자에 대해서는 호봉제를 폐지하고 직무의 난이도와 생산성에 맞추어 임금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도록 법적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이 고령층을 유지하면서도 청년을 뽑을 여력을 가질 수 있다.

둘째, 정부의 정교한 패키지 지원책이다. 고령자를 정년 이후에도 계속 고용하거나 청년 신규 채용을 동시에 유지하는 기업에 대해 과감한 세제 혜택과 '고용 상생 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 정부 재정을 단순 현금 복지가 아닌, 세대 간 고용 영토를 넓히는 마중물로 써야 한다.

셋째, 다양한 형태의 고용 형태 인정이다. 일본식 '재고용 제도'처럼 정년 자체를 일률적으로 늘리기보다, 근로 시간 단축, 자문·고문역 전환, 직무 공유(Job Sharing) 등 고령층이 연착륙할 수 있는 다양한 고용 모델을 선택할 수 있도록 노동법적 유연성을 열어주어야 한다.

결국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이번 정년 연장이 단순히 ‘기존 일자리의 체류 시간 연장’에 그쳐 세대 간의 약탈전이 될 것인가, 아니면 노동시장 전체의 체질을 바꾸는 ‘고용 총량 확대’의 마중물이 될 것인가. 이번 개편은 단순한 나이 조정이 아니라, 대한민국 고용 생태계를 재설계하는 마지막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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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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