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6-11-02 03:54 (월) 11.0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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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재건 5,880억 달러, 한국의 몫은 어디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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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재건 5,880억 달러, 한국의 몫은 어디에 있나

3줄 요약
  • 포로 송환 갈등 속 EDCF 21억 달러가 실제 사업이 되려면
  • 전쟁보험, 현지 인력, 투명한 집행이 성패를 가른다
  • 외교와 경제협력을 분리해야 한국 기업이 버틴다

우크라이나 재건, 한국은 '얼마'보다 '어떻게'를 먼저 물어야 한다

어긋난 약속 하나가 남긴 것

지난 9월 23일 젤렌스키 대통령은 뉴욕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군 포로 2명이 한국으로 송환됐다고 밝혔다. 이 한마디가 양국 관계를 한 달 넘게 얼어붙게 할 거라고 내다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양측의 설명은 엇갈린다. 한국 정부는 포로와 북한에 남은 가족들의 신변 안전을 위해 송환 사실을 비공개하기로 합의했다고 주장했지만, 우크라이나 측은 그런 합의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항의의 뜻으로 박기창 주우크라이나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하고 현지 공관 인력 일부를 철수시켰다. 반면 시비하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포로 송환의 여러 단계에서 비밀유지 요건을 서로 다르게 해석한 데서 문제가 비롯됐다며 우크라이나는 모든 의무를 이행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양쪽 모두 수습에 나선 모양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한국과의 단교는 검토하지 않는다고 공식 입장을 냈고,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원칙대로 대처하되 문제가 길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출구를 찾기 위해 협의 중이라고 했다. 누구 말이 맞는지 가리려는 글은 아니다. 다만 이번 일은 재건 협력이 결국 정치적 신뢰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다시 보여줬다. 불과 넉 달 전 앙카라 정상회담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재건 과정에서 한국 정부와 기업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를 기대한다고 했었다.

1 우크라이나 재건 협력 현장과 588조 달러 청구서.png

5,880억 달러라는 청구서

재건 규모부터 보자. 우크라이나 정부와 세계은행,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유엔이 올해 2월 함께 내놓은 다섯 번째 피해·수요 평가(RDNA5)는 향후 10년간 복구·재건 수요를 5,880억 달러로 추산했다. 우크라이나의 2025년 예상 국내총생산(GDP)의 약 3배이고, 2024년 말 5,240억 달러에서 1년 만에 12% 늘어난 액수다. 직접 피해는 1,951억 달러, 경제·사회적 손실은 6,667억 달러에 이른다. 분야별로는 교통 960억 달러, 에너지 약 910억 달러, 주택 약 900억 달러 순으로 수요가 크고, 폭발물과 잔해를 치우는 데만 약 280억 달러가 들 것으로 봤다.

더 무거운 숫자도 있다. 지금까지 실제로 재원이 마련된 것은 최소 203억 달러로, 전체 수요의 3.5%에 불과하다. 당장 올해만 해도 우선 재건 수요 152억5천만 달러 가운데 국가 예산과 협력국 지원으로 확보된 것은 34%다. 겨울을 앞둔 난방 쪽은 더 심각하다. 올해 난방 공급에 16억 달러가 필요하지만 확보된 재원은 1%도 안 된다.

2 재건 자금을 둘러싼 국제회의.png

돈보다 앞서는 세 가지 벽

재건이 더딘 이유가 돈만은 아니다. 첫 번째 벽은 돈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체계다. 우크라이나는 공공투자관리 개혁을 서두르고 있다. 정부 집계로 2026년 단일 사업 포트폴리오에 131개 투자사업과 64개 프로그램, 총 2,565억 유로가 담겼다. 그러나 OECD는 민관협력(PPP)과 사업권 제도를 손봤는데도 재무적 마감에 이르는 사업은 드물다고 진단했다.

부패 문제도 피해 갈 수 없다. 지난해 11월 반부패국(NABU)이 밝혀낸 이른바 '미다스' 사건에서는 국영 원전기업 에네르고아톰의 납품업체들로부터 계약액의 10~15%를 뇌물로 받아 약 1억 달러를 세탁한 혐의가 드러났다. 다만 이 사건은 다르게 읽을 여지도 있다. 비리를 파헤친 것이 우크라이나 자체 반부패 기구였고, 이해충돌과 정치자금 규제에서 우크라이나가 OECD 공공청렴 지표 기준을 100% 충족한다는 평가도 있다. 제도는 갖췄지만 현장에서 지켜지는지는 여전히 검증해야 한다는 뜻이다.

두 번째 벽은 보험이다. 투자자가 먼저 묻는 것은 수익률이 아니라 시설이 미사일에 맞았을 때 누가 책임지느냐다. 세계은행 산하 다자투자보증기구(MIGA)는 2022년 이후 우크라이나에서 5억7,300만 달러 규모의 보증을 발행했지만, 우크라이나 경제장관은 민간투자를 끌어내려면 해마다 50억 유로 이상의 전쟁위험 보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현지 은행권에서도 자금 수요가 지금 쓸 수 있는 전쟁보험과 재보험 용량을 넘어선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 번째 벽은 사람이다. 올해 8월 발표된 건설인력 로드맵은 필요한 숙련 노동자의 절반가량만 확보된 상태라고 밝혔다. 미국 비영리기구 IREX는 건설업이 전쟁 전의 60%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구직자 1명당 일자리가 2.4개라고 분석했다. 현지 언론은 재건에 필요한 노동자가 최대 80만 명 부족하다고 전한다. 장비를 들여가도 몰 사람이 없으면 공사는 멈춘다.

3 전쟁 위험 속 우크라이나 투자 고민.png

한국의 지원, 약속과 현실 사이

한국의 지원 행보 자체는 가볍지 않았다. 2023년 9월 국토교통부가 이끈 민관 '원팀코리아'는 키이우에서 키이우 교통 마스터플랜, 우만시 스마트시티, 보리스필 공항 현대화, 부차시 하수처리시설, 카호우카 댐 재건, 키이우~폴란드 철도 고속화 등 6대 선도사업을 골랐다. 당시 정부가 발표한 23억 달러 패키지 가운데 20억 달러는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몫으로, 평소 지원 규모의 두 배에 이르렀다. 이듬해에는 21억 달러 규모의 기본약정이 맺어졌고, 자금은 5년에 걸쳐 나눠 집행된다. 올해 7월에는 1억 달러 규모의 포괄적 지원을 약속하면서도 살상무기는 지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여기서 짚어둘 점이 있다. EDCF는 무상원조가 아니라 장기 저리 차관이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정부나 정부 보증을 받은 현지 법인이 빌려 쓰는 구조다. 숫자는 크지만 사업이 하나하나 구체화되고 보증이 붙어야 돈이 움직인다. 2023년에 이미 전쟁이 끝나지 않았고 사업이 구체화되지 않은 만큼 국제 정세를 보며 대응해야 한다는 신중론이 나왔던 이유다.

민간에서는 조금 다른 길을 찾는 움직임이 보인다. HD건설기계는 올해 5월 미콜라이우 주정부와 협약을 맺고 장비 공급에 더해 현지 트레이닝센터 구축, 정비 지원, 금융 지원 체계, 에너지 인프라 복구로 협력 범위를 넓혔다. 전쟁 전 HD현대 계열 두 회사의 현지 굴착기 시장 점유율은 30%로 1위였다. 장비를 파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운전과 정비 인력을 함께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앞서 말한 '사람의 벽'에 정확히 맞닿은 접근이다.

참고할 만한 사례는 일본이다. 일본은 국제협력기구(JICA)라는 하나의 창구로 지원을 모았다. 2022년 이후 예산 지원 87억 달러 중 9억5,500만 달러를 무상으로 제공했고, 러시아 동결자산 수익으로 갚는 4,719억 엔 규모 차관의 첫 회분 5억4,400만 달러를 올해 2월 집행했다. 액수보다 눈여겨볼 것은 방식이다. 일본은 전쟁 중에도 작은 무상 사업을 끊지 않고 이어가며 현장의 신뢰를 쌓았다.

7 우크라이나 재건을 설계하다.png

해법은 '설계'에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하나. 첫째, 재건 실무 채널을 외교 현안과 떼어놓아야 한다. 포로 문제 같은 정치적 갈등이 생길 때마다 사업 협의가 멈춘다면 기업은 위험을 가늠할 수 없다. 장관급 공동위원회나 상설 실무협의체처럼 정치 상황과 상관없이 돌아가는 통로가 필요하다.

둘째, 한국 단독 사업보다 다자 금융과 묶는 편이 낫다. 미국 국제개발금융공사(DFC)와 MIGA는 올해 6월 그단스크 재건회의에서 정치·전쟁 위험을 함께 보험하는 협약을 맺었다. 한국의 공적 보험·금융기관도 이런 공동보증 틀에 들어갈 길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대금 회수 위험을 줄이고 감사 체계도 국제 기준에 맞출 수 있다.

셋째, 지급은 단계별로, 성과를 확인하며 해야 한다. 설계, 착공, 준공, 사후평가마다 점검하고 자금을 푸는 방식은 우크라이나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지키기 위한 장치다. 우크라이나가 올해부터 모든 공공사업을 전자 관리 시스템에 등록하게 한 만큼 이와 연동하면 된다.

넷째, 우선순위를 다시 매겨야 한다. 철도 고속화나 공항 현대화는 상징성은 크지만 투자금이 돌아오는 데 오래 걸린다. 반면 수처리, 난방, 전력망과 에너지저장장치(ESS), 모듈러 주택은 시민의 겨울을 바로 바꾼다. 난방 재원이 1%도 확보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어느 쪽이 급한지는 분명하다.

다섯째, 국내에서도 합의가 필요하다. 한쪽에서는 '전쟁 중인 나라에 퍼주기'라고 우려하고, 다른 쪽에서는 '국제사회의 책임이자 산업 기회'라고 본다. 둘 다 근거가 있다. 그렇다면 지원 규모를 놓고 다툴 것이 아니라 어떤 조건으로 집행하고 어떻게 검증할지를 국회와 정부가 투명하게 공개하고 따지는 편이 생산적이다.

선의만으로는 부족하다

재건은 한 나라를 다시 세우는 일이자, 그 나라와 수십 년을 함께 갈 관계를 만드는 일이다. 한국이 우크라이나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공사 몇 건보다 크다. 유럽 시장으로 가는 교두보가 될 수도 있고, 전후 복구를 주도하는 나라라는 평판을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기회는 손실을 막을 장치를 먼저 갖춘 나라의 몫이다. 이번 외교 갈등이 남긴 교훈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약속은 크게 하되 계약은 꼼꼼하게, 그리고 신뢰는 문서로 남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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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록 기자
parkroc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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