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해상 봉쇄에 막힌 이란 무역, 카스피해 우회로는 돌파구가 될까
- 북부 항만의 낮아진 수심과 국경 통관 지연이 드러낸 한계
- 필수품 공급을 잇는 카스피해 항로, 늘어나는 물류 부담
- 해상 봉쇄 이후 달라진 무역로와 시민 생활의 부담
이란 무역, 남쪽 막히자 카스피해로…북부 항만과 국경에 쌓이는 화물
미국의 해상 봉쇄와 호르무즈해협의 항행 위기로 이란의 무역 지도가 바뀌고 있다. 남부 항만을 이용하기 어려워진 이란은 카스피해 연안 항구와 주변국 육상 국경으로 화물을 돌리고 있다. 식량과 원자재의 공급을 이어가기 위한 선택이다. 그러나 항구의 수심은 낮아지고 국경에는 트럭이 밀린다. 북부 항로가 남부 항만의 물량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전쟁은 2026년 2월 28일 시작됐다. 이후 선박 공격과 미국의 봉쇄가 해상 운송을 압박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민간 상선 공격을 규탄하며 안전한 항행 회복을 촉구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9월 24일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한 상품 운반 선박은 10척이었다. 전쟁 전에는 대형 상선이 하루 약 125척 지나갔다. 다만 이 수치는 선박자동식별장치를 끈 배를 포함하지 않는다. ‘해협이 완전히 폐쇄됐다’는 표현은 실제 운항 상황을 정확히 전하지 못한다.
이란 경제에 가장 큰 타격은 원유 수출에서 나타났다. 로이터가 인용한 선박 추적업체 자료에 따르면 미국이 7월 14일 봉쇄를 재개한 뒤 이란산 원유를 싣고 호르무즈해협을 지나 중국으로 간 선박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란의 원유 선적량은 3월 하루 약 200만 배럴에서 8월 22만~25만 5,000배럴 수준으로 줄었다. 카스피해나 육로로 옮기는 물량만으로 대형 유조선의 운송 규모를 메우기는 어렵다.

수입품의 행선지도 북쪽으로 바뀌고 있다. 카스피해 항구에서는 곡물과 사료, 식용유 같은 필수품을 받기 위한 작업이 늘었다. 튀르키예를 거치는 육로 운송도 확대됐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란이 인접국과의 육상 교역을 늘리고 있지만, 통관 지연과 운송비 상승이 소비자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새로운 길을 확보해도 화물이 제때 소비지에 도착하지 못하면 공급 불안은 가라앉기 어렵다.
국경의 정체는 이미 뚜렷하다. 알자지라가 인용한 현지 연구자에 따르면 아르메니아 접경 노르두즈 검문소에서는 이란으로 들어가려는 트럭이 최대 1,800대 대기했다. 다른 국경 터미널의 진입 대기 기간은 10~15일에 이르기도 한다. 원인을 전쟁에 따른 화물 증가 하나로 돌릴 수는 없다. 좁은 터미널, 통관 절차, 도로 공사와 육로 이용객 증가도 정체를 키운다. 따라서 트럭을 더 투입하는 조치만으로는 병목을 풀기 어렵다.

북부 항만에서는 물의 깊이가 운송 능력을 제한한다. 이란 해운업계 관계자는 과거 북부 항구에 접안하던 6,000톤급 선박 대신 현재는 4,000톤급 선박만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카스피해 수위가 1990년대 이후 약 2m 낮아졌다고 밝혔다. 수위 저하는 이란만의 문제가 아니다. 연안국의 항만 운영과 어업, 생태계가 함께 영향을 받는다. 준설이나 항만 확장은 필요할 수 있지만, 환경 영향과 유지 비용을 검토해야 한다.
봉쇄의 피해는 항만 도시의 일자리와 가계에도 번지고 있다. AP통신은 반다르아바스에서 항만 노동자와 상인, 운송업 종사자들이 거래 감소를 체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이란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해 전체 교역이 25~35% 줄었다고 보도했다. 수입이 지연되면 식품과 생산 원료의 가격이 오를 수 있다. 반대로 모든 물가 상승을 항만 봉쇄만으로 설명할 수도 없다. 환율 하락, 기존 제재, 금융 거래의 어려움도 함께 작용한다. 시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따질 때는 품목별 공급량과 가격을 지속해서 공개할 필요가 있다.

해법은 운송 경로와 통관 능력을 함께 손보는 데 있다. 단기적으로는 식량과 의약품 등 필수품의 통관 순서를 분명히 정하고, 국경별 대기 시간과 항만 처리량을 공개해야 한다. 인접국과 통관 서류를 간소화하고 철도·도로의 화물 배분을 조정하면 기존 시설에서도 지연을 줄일 수 있다. 세계은행은 카스피해를 잇는 교역로를 분석하며 항만 장비와 철도 투자뿐 아니라 공동 디지털 통관 체계, 국경 간 운영 협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란에도 적용을 검토할 만한 방향이다.
장기적으로는 카스피해 수위 변화에 맞춘 항만 투자와 주변국을 통한 운송 경로 분산이 필요하다. 그렇더라도 북부의 소형 선박과 육상 운송이 남부의 대형 항만을 온전히 대신하기는 어렵다. 해상 안전 회복과 무역 제약을 다루는 외교 협상도 병행돼야 한다. 카스피해 항로는 당장의 공급 충격을 줄일 수 있다. 물류난을 끝낼 수 있는지는 국경의 대기 행렬과 시민이 치르는 물가 부담에서 확인될 것이다.